요 14:2 나의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습니다. … 내가 가서 여러분을 위하여 한 곳을 예비하겠습니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들입니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떠나서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6:21 여자가 해산할 때가 되면, 그때가 왔으므로 근심하지만, 어린아이를 낳으면,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더 이상 그 고통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아침의 누림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 주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에는 이 영광에 대한 세 가지 구체적인 표현이 있는데, 첫째는 14장 2절에 있는 아버지의 집(교회)이고, 둘째는 15장 1절부터 5절까지에 있는 포도나무의 가지들(그리스도의 몸의 구성 성분들)이며, 셋째는 16장 21절에 있는 새로 태어난 단체적인 사람(새사람)이다. 이 세 가지 모두가 교회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산출하신 그분의 영광스러운 증가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증가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되시고,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 또한 그리스도의 영광스럽게 됨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신다. 즉 교회를 통해 완전히 표현되신다(엡 3:19-21). 이러한 표현은 삼일 하나님의 하나 안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은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결론을 맺는 그분의 기도에서 특별히 이 문제를 위해 기도하셨다(요 17:20-23). 그리스도의 이 영광스러운 증가는 요한복음에서 계시된 비밀의 고봉이며, 그 최종 완결은 … 요한계시록에 있는 새 예루살렘이다. 이 새롭고 거룩한 성은 모든 세대에 걸친 그리스도의 증가의 집대성일 것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성한 영광이 극도로 표현될 것이다. 아들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영원하고도 비할 데 없는 영광을 얻으실 것인데, 그 영광은 영원 안에 있는 그분의 충만한 표현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분의 영원한 경륜이 이루어져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요 12:24 각주 2)
오늘의 읽을 말씀
이 하나는 주님의 갈망 안에 있던 것이었다. 주님의 이 갈망은 그분의 열망이 되었고, 이 열망은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께서 하신 기도로 표현되었다(요 17:2, 6, 11, 14-24).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의 기도의 주제는 하나이다. 주님은 신성한 열망으로부터 이런 기도를 하셨다. 그때에 이 하나는 아직 실재가 아니었지만, 이 하나의 본, 곧 신성한 삼일성의 셋 가운데 있는 하나는 그곳에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시며(요 17:11, 21), 이 하나는 그 영을 함축하거나 포함한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은 삼일 하나님을 나타내시기 위해 복수 대명사 ‘우리’(11, 21절)를 사용하셨다. 삼일 하나님은 하나이시며, 이 하나는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의 본이다. 몸의 하나는 삼일성의 셋 가운데 있는 하나를 본으로 갖기 때문에, 요한복음 17장은 이 하나가 전적으로 삼일 하나님과 연관됨을 말해 준다(21절).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는 다만 신성한 삼일성의 확장된 하나이다. 본은 주님께서 기도하시던 때에 그곳에 있었지만, 확장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 확장된 하나는 오순절날에 왔다. 그 영의 쏟아 부어짐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산출되었다(고전 12:13). 몸은 견고한 하나였다. (장로 훈련 10, 장로 직분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2), 54-55쪽)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일은 하나를 지키는 것이다. … 우리가 신격의 셋 가운데 있는 하나인 신성한 하나를 복사하고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삼일 하나님을 누리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우리는 신성한 신격의 셋이 표현될 수 있을 정도까지 그분을 누려야 한다. 그럴 때에 우리 가운데 하나가 있게 된다. 이렇게 재생산된 하나는 우리가 삼일 하나님을 누린 결과이다. …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삼일 하나님 밖에 있는 그 어떤 것도 거절하고 포기하며 부인해야 한다. … 삼일 하나님 자신 이외의 것들은 무엇이든지 분열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신성한 삼일성을 가짐으로써 온전하게 되어 하나가 된다.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신성한 삼일성과 함께 삶, 190-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