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첫번째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애플은 광고 비용으로 단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수많은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입소문을 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2011년까지 미국에서 애플이 아이폰 광고비로 쓴 누적 금액은 무려 6억 4,700만 달러(한화 약 7,300억 원). 이제 아이폰의 입지는 옛날만큼 확고하지 않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 소송에서 애플의 비밀들이 연일 공개되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필 쉴러(Phil Schiller) 마케팅 부사장이 밝힌 애플의 마케팅 전략 변화가 흥미롭다. 초기에는 언론들의 ‘공짜’ 보도로 톡톡히 재미를 봤지만, 이제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광고까지 집행하고 있다는 것.
쉴러에 따르면, 애플은 2007년 1월 아이폰을 처음 공개했을 때부터 실제로 제품을 판매할 때까지 마케팅 비용을 전혀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실 굳이 할 필요도 없었다. 쉴러는 아이폰을 극찬하는 언론사 리뷰 몇 개를 읽었고, 이러한 입소문이 광고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아이폰과 연관된 기사라면 무엇이든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던 시대였다.
또한 PPL(영화나 드라마에 제품을 노출시키는 방식의 간접광고)도 효과적이었다. 애플은 할리웃에 아이폰 협찬을 적극 타진했고, 수많은 영화와 TV쇼에서 아이폰을 사용했다. 쉴러는 재판정에서 “우리는 인기 스타들이 아이폰을 쓰는 모습을 좋아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애플의 ‘날로 먹는’ 마케팅도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2008년 HTC의 ‘G1’은 6개월 동안 100만 대 가량 팔리며 눈도장을 찍었으며, 2009년 모토로라의 ‘드로이드(한국명 모토쿼티)’는 출시 74일만에 105만 대 팔리며 안드로이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2010년에는 삼성전자의 ‘갤럭시S’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아이폰은 여전히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경쟁 제품도 이 못지 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이폰의 독주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와 함께 애플의 광고비는 눈에 띄게 증가세를 보였다. 애플이 미국에서 아이폰 광고로 쓴 비용은 2008년 9,750만 달러, 2009년 1억 4,950만 달러, 2010년 1억 7,330만 달러로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쟁사들이 공격적인 광고 마케팅을 펼치다 보니, 애플도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애플 입장에서는 경쟁사들의 약진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낸 이유도 삼성전자가 애플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쉴러는 “삼성전자는 애플 제품과 매우 유사한 제품을 만듦으로써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라며, “특히 마케팅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라고 주장했다. 소비자들이 삼성전자 제품을 애플 제품으로 착각하고 구매하는 일이 잦아진다는 것. 쉴러는 “(삼성전자가) 소비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미있는 것은, 삼성전자의 제품 역시 애플에 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변호인은 2011년 아이튠즈 담당 부사장인 에디 큐(Eddy Cue)가 iOS 담당 부사장 스캇 포스털(Scott Forstall)에게 보낸 이메일에 이와 같은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큐가 “7인치 태블릿PC 시장은 분명히 존재하며, 우리도 이와 같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스티브 잡스에게 건의했다는 것.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하던 잡스를 계속 설득했더니 결국 관심을 보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2010년 잡스가 “7인치 태블릿PC는 출시하자마자 사망할 것(dead on arrival)”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던 것과 상반된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소송에서 드러나는 각종 비밀들은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얼마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만일 이번 소송에서 애플이 승리한다고 해도, 이전과 같은 ‘아이폰의 전성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제품 개발에서나 마케팅에서나 애플은 좀 더 치열해져야 한다. 영원한 1인자는 없기 때문이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