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 2012 현충일 3주 1일
오늘의 양식
주님의 노예 2012-08-12 , 조회 (29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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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8:19 다시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두 사람이 땅에서 무엇을 구하든지 마음을 같이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다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행 1:14 …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를 꾸준히 계속하였다.

[각주]

아침의 누림

이제 우리는 하나(oneness)의 실행을 생각해 볼 것이다. 하나는 한마음 한뜻을 통해 실행된다. … 마태복음 18장 19절에서 ‘마음을 같이하면’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 따르면 음악 소리가 화음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하나(oneness)의 실행이다. 사도행전 1장에 이를 때, 한마음 한뜻으로 꾸준히 기도하는 백이십 명의 성도들이 있었다(행 1:14-15상). 그들 모두는 한 가지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높은 데서 오는 능력을 얻어, 그들이 사랑하고 따르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증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위해서 그들은 한 생각을 가졌으며, 이처럼 그들은 한마음 한뜻 안에 있었다.

에베소서 4장 4절부터 6절까지에서 우리는 하나를 실행하는 것은 교회의 하나라는 속성, 곧 한 영과 한 주님과 한 하나님과 한 몸과 한 소망과 한 믿음과 한 침례에 근거한 것임을 볼 수 있다. 이것에 의해 우리는 하나가 교회의 속성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의 하나라는 이 속성에 근거하여 우리는 한마음 한뜻 안에 있을 수 있고 하나를 실행할 수 있다. (몸의 하나와 생활과 봉사, 16-18쪽)

오늘의 읽을 말씀

몸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필요하다. 그리고 교회들 안에서와 교회들 가운데서 우리는 한마음 한뜻이 필요하다. 한마음 한뜻은 우리의 실행을 위한 것이며, 하나는 주로 실재, 사실을 위한 것이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주 예수님은 그러한 사실을 위해서 기도하셨고, 오순절날에 완결되신 영이신 그분 자신을 부어주심으로써 그분의 기도를 성취하셨다. 그것은 하나(oneness)의 사실이었다. 하나(oneness)의 사실이 성취된 후에는, 그 하나(oneness)를 실행할 필요가 있다. 하나가 실행될 때 그것은 한마음 한뜻이 된다. 이 한마음 한뜻은 하나(oneness)의 실행이다.

우리에게 사실로서만 하나가 있고 현재적이고 실지적인 한마음 한뜻이 없다면, 우리가 갖는 하나는 객관적이고 추상적일 것이다. 즉 그것은 우리에게 실지적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부어짐으로 성취된 하나를 적용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한마음 한뜻을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 기도 집회에서 우리 각자가 한마음 한뜻이 되지 않고 우리 자신의 방식으로 기도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를 실행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가운데 차이가 존재한다면 하나가 적용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차이를 삼켜버려야 한다. 그럴 때 하나가 실지로 존재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 합당한 한마음 한뜻의 실행은 하나를 적용하는 것이다. 하나와 한마음 한뜻이 유사하게 보일지라도 이 둘은 서로 차이가 있다. 주님은 하나에 관해서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은 하나를 위해 기도하셨지만, 마태복음 18장에서 주님은 우리를 인도하시어 한마음 한뜻을 실행하게 하셨다. 마태복음 18장 19절에서 주님은 땅에서 두 사람이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한마음 한뜻 안에서 기도하도록 하는 주님의 인도이자 훈련이자 지침이었다. (장로 훈련 10, 장로 직분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2), 74-75쪽)

한마음 한뜻이 없이 가정 집회들을 갖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방문하고 소책자들을 나누어주기 위해서는 한마음 한뜻이 필요하다. 한마음 한뜻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행함이 공허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실행들이 다른 이들이 모방하기 위한 것들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여러분에게는 반드시 생명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에게 생명이 필요하다. 여러분은 사도행전에서 백이십 명의 어떠한 점이 경계표가 되었는지를 보아야 한다.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을 나누는 경계표는 성령 안의 침례가 아니었다. 경계표는 백이십 명의 성도들의 한마음 한뜻이었다. 여러분이 성령 안의 침례를 체험하기 원한다면, 반드시 한마음 한뜻을 가져야 한다. (장로 훈련 7, 주님의 움직임을 위한 한마음 한뜻, 26-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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