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대만으로 왔을 때,
니 형제님이 '지역' 이라고 부른 것과 같은 의미의 '집회소'에서만 모이지 않았다.
우리는 각 집회소를,
우리가 지역이라고 부른 더 작은 그룹으로 나누었다.
우리의 인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더해지고 있는 그 새신자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할지를 고려해야만 했다.
주님은 그분께서 떡을 나누어 주실 때 광야에서 하신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셨다.
그분은 사람들을 한 무리씩 자리 잡아 앉게 하셨다(막6:39-40).
이러한 원칙을 근거로 하여 우리는 지역을 그룹들로 더 나누기 시작했고,
집회소와 지역과 그룹에서 모였다.
그 칠 년 동안 우리의 인수는 오백 명에서 오만 명으로 증가했다.
그것은 백배의 증가였다.
한번은 우리가 갓 구원받은 이들을 위한 침례 집회를
토요일 저녁6시부터 시작한 적이 있다.
우리는 세 군데의 집회소에서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지만,
그 날 밤에 침례를 다 마치지 못하고 주일 아침까지 계속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다.
그때 우리는 칠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다.
우리가 스팍스 형제를 초청한 것은 영적인 도움을 받기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방문한 결과 우리의 실행은 희석되고 말았다.
1958년 우리는 지역 집회에 주의를 기울이던 것을 중단했고,
지역 집회난 그룹 집회를 더 이상 세우지 않았다.
이러한 실행은 폭풍이 있었던 동안 씻겨 내려가 버렸다.
1957년 후 거의 28년이 지난 오늘(1985년),
우리의 인수는 그때의 인수보다도 적다.
우리는 증가하지 않고 감소했다.
이러한 지난 28년 동안,
어떤 형제자매들은 죽었고, 어떤 이들은 냉담해졌으며,
어떤 이들은 뒤로 물러갔고, 또 다른 사람들은 해외로 갔으며,
또 우리와의 접촉이 끊어진 이들도 있다.
새로운 사람들의 숫자가 잃어버린 형제 자매들의 수와 같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 그 이유를 안다.
우리는 대만에서 우리가 처음 칠 년 동안 가졌던 실행을 버리고,
복음을 전하거나 메시지를 듣기 위해 모이는
전통적인 길로 돌아간 것이다.
[주님의 회복의 장래와 유기적인 봉사의 건축, 1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