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 양식 현충일 6주 3일
오늘의 양식
주님의 노예 2012-09-02 , 조회 (19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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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계 19:7 우리가 기뻐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립시다. 왜냐하면 어린양의 결혼 날이 다가왔고, 그분의 아내도 자신을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21:9 … “이리 오십시오.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각주]

아침의 누림

오늘날 주님의 움직임의 방향은 둘째로 구속하시는 하나님과 그분께서 구속하신 사람들의(계22:17, 21:1-2, 9하-10) 영원한 결혼(계 19:7-8), 곧 우주적인 결혼을 위해 그분(신랑)의 배필(요 3:29-30)인 신부, 곧 교회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 우주적인 결혼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연합에 의해 예표되었고(사 54:5, 호 2:19), 신약에서 분명하게 계시된다(엡 5:25-27, 32). (장로 훈련 10, 장로 직분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2), 44쪽)

오늘의 읽을 말씀

어린양의 혼인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이 완성된 결과이다. … 하나님의 신약 경륜은 그리스도의 법리적인 구속을 통해, 그리고 신성한 생명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구원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위해 신부, 곧 교회를 얻는 것이다. 수세기에 걸친 성령의 끊임없는 운행하심에 의해 이 목표는 이 시대 끝에 달성될 것이다. 그런 다음 이기는 믿는 이들로 구성된 신부가 준비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사랑 안에서의 만족과 안식의 문제이다. … 우리가 교회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서 안식을 얻으셨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이것은 엄숙한 문제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든지 자신들이 교회라고 그렇게 빨리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라는 것은 사랑 안에서 충분한 만족과 안식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배필이 필요하시다. 교회는 단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이들의 모임만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는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께 만족과 안식이 된다.

하나님의 의도는 교회가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것이다. 열두 사도로 대표되는(계 21:14) 거듭나고 온전하게 된 모든 믿는 이들은 교회의 지체들로서 새 예루살렘의 구성 요소들이 될 것이다. 은혜 시대 이후에 왕국 시대가 있게 될 것이다. 이 시대 동안 구약의 이기는 이들과 신약의 이기는 이들을 포함한 온전하게 된 모든 이들은 이기는 이들의 총체로서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그들은 첫째 단계, 곧 천년왕국의 단계에 있는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이 단계 동안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신부일 것이다. (신약의 결론, 교회, 409, 256, 529-530쪽)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새 예루살렘이며, 새 예루살렘은 이기는 이들의 어떠함의 총체일 것이다. 결국 모든 이기는 이들은 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초기의 신선한 단계에 있는 새 예루살렘일 것이다. 이러한 천 년은 하루로(벧후 3:8), 곧 결혼 날로 계산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의 초기의 신선한 단계일 것이다.

결국 모든 믿는 이들은 그 이기는 이들과 합쳐져, 새 예루살렘을 천년왕국 때보다 더욱 확대되게 할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장막이자 그리스도의 아내인 새 예루살렘은 영원토록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히 완결되고 완성될 것이다. (이기는 자들, 116-117쪽)

요한계시록 19장 8절과 9절에 따르면, 7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신부, 곧 아내는 오직 천년왕국 동안의 이기는 믿는 이들로만 구성되는 반면, 요한계시록 21장 2절에 있는 신부, 곧 아내는 천년왕국 이후에 영원토록 있으며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로 구성된다. 요한계시록 19장 7절에 있는 신부가 준비되는 것은 이기는 이들이 생명 안에서 성숙하는 것에 달려 있다. (신약의 결론, 교회, 409쪽)

헬라어에서 ‘성숙한’에 해당하는 단어는 ‘종점에 있는’을 의미한다. 그 단어가 유기체를 묘사하는 데 사용될 때는 … 완성과 완전히 자람과 성숙을 가리킨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여러 차례 사용되는데, 그것은 믿는 이들이 거듭날 때 얻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충분히 성장하고 온전하게 된 것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거듭났을 때 이미 하나님의 생명을 얻었지만, 거듭난 후에도 여전히 이 생명 안에서 완전함에 이르도록 자라고 성숙할 필요가 있음을 가리킨다. (생명 공과, 365쪽)

추가로 읽을 말씀: 이기는 자들, 6장

신약의 결론, 교회, 38-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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