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 양식 소신언서 1주3일
오늘의 양식
주님의 노예 2012-09-12 , 조회 (22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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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31:3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요 3:29-30 신부를 얻는 사람은 신랑이지만, 곁에 서서 듣는 신랑의 친구도 신랑의 음성을 듣고 크게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분은 증가하셔야 하고, 나는 감소되어야 합니다.

[각주]

아침의 누림

역대로 하나님은 사람과의 로맨스에 빠지셨다. … 성경 전체가 하나의 신성한 로맨스이다. 이것은 성경이 매우 로맨틱한 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특히 아가에서 그러하다. 어떤 현대주의자들은 아가가 성경에 포함되어야 하는지를 의심한다. 심지어 몇몇 합당한 그리스도인 교사조차도 이 책에 관해 의심을 가졌다. 나는 젊었을 때 한 남녀의 로맨스와 관련된 그러한 책이 왜 성경에 포함되었는지를 이상하게 여겼었다. 이 책은 우리와 그리스도의 사랑의 관계를 묘사한다. … 성경은 신성한 로맨스이다. 그러므로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더욱더 로맨틱하게 되어야만 한다. (출애굽기 라이프 스타디, 55장, 680, 684쪽)

오늘의 읽을 말씀

신성한 로맨스인 성경은 하나님의 구애, 심지어 하나님과 사람이 교제하는 것에 대한 완전한 기록이다. 성경에서 거듭거듭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에게 나타나신다. 이것에 대한 두 가지 사례는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처음으로 야곱에게 오신 것(창 28:10-22)과 또 한 차례 벧엘에서 야곱에게 오신 것이다(35:9-15). 또 한 가지 사례는 하나님께서 호렙 산에서 모세에게 오신 것이다. … 성경은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구애하신 것으로 가득하다. 한 청년이 어느 여자에게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는 결국 그녀에게 구애하게 될 것이고, 그녀를 괴롭힐 정도까지 구애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에게 구애하심으로 우리를 ‘괴롭히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구애하신 것을 기록한다. 신약에서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에게 구애하고 계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주 예수님은 반복해서 이러한 구애의 방식으로 베드로를 괴롭히셨다. 베드로가 주님께 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오셨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이여, 이 사람들보다 그대가 나를 더 사랑하십니까?”(15절)라고 물으셨다. 주님은 두 번 더 그에게 “그대가 나를 사랑하십니까?”(16, 17절)라고 물으셨다. 베드로에게 이 같은 질문을 하심으로 주 예수님은 그에게 구애를 하고 계셨다. 주님은 자녀가 부모님을 공경하거나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관심하거나 어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는 것처럼 베드로가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베드로가 애정 어린 사랑으로, 즉 한 젊은 여인이 자신에게 사랑에 빠진 젊은 청년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하셨다.

우리는 요한복음 21장을 3장과 분리해서 읽어서는 안 된다. 베드로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던 그분이 바로 신부를 취하러 오신 신랑이셨다.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신랑이신 주 예수님에 대한 계시에 근거할 때, 우리는 21장에서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가 구애의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안으로 들어갈 때, 하와가 아담의 생명을 받은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게 된다. 만약 하와가 아담의 생명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담과 하나 될 수 없었을 것이다. … 의심할 바 없이 아담과 하와는 서로 사랑했다. 왜냐하면 하와가 아담에게서 생명을 받았고 심지어 아담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와와 아담은 한 생명과 한 본성을 가졌다. 하와의 모든 섬유 조직과 세포 하나하나는 그 근원이 아담 안에 있었고, 아담의 일부분이었다. 에베소서 5장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묘사한다. 하와가 아담에게서 나왔고 아담의 생명과 본성을 소유했듯이, 교회도 그리스도에게서 나와 그리스도의 생명과 본성을 소유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와 주님 사이에 그러한 달콤하고 친근하며 애정 어린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는 마치 여자가 남편을 사랑하듯이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청년이건 노인이건 똑같이 이러한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사랑할수록 그분의 생명에 더 참여할 것이며 자연히 그분의 본성에 따라 그분을 살아낼 것이다. 그럴 때 자동적으로 우리의 생활은 그분의 율법을 지키는 생활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 나타내는 것은 그분의 설명이자 정의이자 표현인 율법과 일치하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 라이프 스타디, 55장, 684-685쪽, 54장, 673-674, 679쪽)

 



추가로 읽을 말씀:  출애굽기 라이프 스타디, 5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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