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8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으나,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그분께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
14: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빌립이여,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여러분과 함께 있었는데도, 그대가 나를 알지 못하십니까? …”
오늘의 누림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인간 생활에서 하신 일의 또 다른 방면은 하나님을 선포하시는 것이었다.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으나,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그분께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요 1:18) 그리스도는 그분의 인간 생활에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18절까지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말씀(1, 14절), 생명(4절), 빛(4-5절), 은혜(14, 16-17절) 및 실재(14, 17절)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 말씀은 표현되신 하나님이고, 생명은 분배되신 하나님이며, 빛은 비추시는 하나님이고, 은혜는 누림이 되신 하나님이며, 실재는 인식되신, 즉 실재화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이 다섯 가지를 통해 아들 안에서 온전히 나타내 보이신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인간 생활 속에서 말씀과 생명과 빛과 은혜와 실재가 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 우리가 말씀을 더 받아들이고 신성한 생명을 더 소유하고 생명의 빛이 우리 속을 더 비추도록 허락해 드리며, 더욱더 하나님을 은혜로 누리고, 그분을 실재로 이해할수록, 그분은 우리에게 더욱더 나타나 보이신다.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 528-529쪽)
아침에 읽을 말씀
그리스도는 그분의 인간 생활에서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는 일을 수행하셨다. 그리스도는 목수로서 생활하고 일하시는 삼십 년 동안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형태를 세우기 위해 생활하고 계시는 동안,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자매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들은 그분에게 단지 인성의 표현보다 더 높은 어떤 것, 즉 뛰어나고도 특별한 어떤 것이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들이 주 예수님의 인간 생활에서 보았던 것은 그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나타나심이었다. 그분은 그분의 인간 생활에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
만일 여러분이 주님을 섬기기 원한다면, 여러분의 봉사의 시작이 주님을 위한 큰일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신성한 원칙에 위배된다. 여러분은 단지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은 뛰어난 어떤 것, 신성한 어떤 것을 여러분 안에서 볼 것이다. 이것은 여러분의 일상생활에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주 예수님은 사역하러 나오셨을 때 가장하거나 연기할 필요가 없으셨다. 그분은 하나님-사람처럼, 즉 자신 안에 하나님을 가진 사람처럼 의도적으로 행동하려고 할 필요가 없으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참된 사람이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발견되셨기 때문이다. 참된 사람이신 그분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인간 생활에서 하신 일은 또한 아버지를 표현하시는 것을 포함한다(요 14:9). 요한복음에 따르면, 아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오셨고(5:43),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일하셨으며(10:25),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고(6:38), 아버지의 말씀을 하셨으며(3:34상, 14:24, 7:16-17, 12:47-50),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셨다(7:18). 그분은 아버지와 하나이셨다(요 10:30). 그분은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뜻도, 말도, 영광도, 야심도 없으셨다. 그러한 분으로서 그리스도는 아버지만을 표현하셨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표현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아들이셨지만 여전히 아버지를 표현하셨다.
누가복음 2장 43절부터 48절까지에 따르면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으며 그분의 부모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분께서 무리와 함께 있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분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왔다. 그들이 그분을 발견했을 때, 그분의 어머니는 “얘야, 왜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아버지와 내가 너를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모른다.”(눅 2:48)라고 말했다. 그때 주님은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마땅히 내 아버지의 일 가운데 있어야 하는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눅 2:49)라고 대답하셨다. 이것은 소년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익을 관심하고 계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누가복음 2장 49절에 있는 ‘내 아버지’라는 말은 예수님의 신성을 지적해 준다(요 5:18). 인성 안에서 그분은 인간 부모의 아들이셨고, 신성 안에서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의 이중 신분, 즉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신 그분의 신분을 본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인성 안에서 아버지의 일들, 곧 하나님의 권익을 관심하셨다.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 5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