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땅으로 이주한 지 십여 년 만에
수원에서 함께 믿음의 생활을 했었던 옛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바닷가를 그렇게 가보고 싶어하던 형제님은
영광교회 형제자매들과의 좋은 만남에 바닷가 여행은 뒷전이고
뜻밖에 많은 교제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옛 선착장인지? 녹슬고 낡은 철교처럼 오랜 친구의 그리운 추억은 있지만
왠지 낡고 녹슬은 듯한 우리의 변하지 않은 모습도 여전했습니다.
건너지 못할 낡은 다리처럼
분열된 종파 대신에 이번에는 그분의 피가 우리를 가로막고 서 있었습니다.
마치 신구원파를 접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정직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택한 길이 완전한 것 같지만 어쩌면 장래가 불투명한 낡은 구원의 길이 아닌지를..
그리스도의 피의 효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인간의 전적인 부패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속죄하심은 사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중간에 개입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갈망은 사람이 타락하기 전의 생명나무를 다시 취하는 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스스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 되기를 자처하며
참된 회개와 제법 사람들에게 솔직하기를 강조하는 무리들..
그러나 그 회개의 기준을 사람들이 정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찬사를 보낼 수 없습니다.
참으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주님처럼 아무도 정죄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바벨론의 벨사살에게 나타나 벽에 글을 쓰는 손처럼
주님께서 모든 사람 앞에서 땅 바닥에 뭔가를 쓰신 것은
그 모든 사람이 자기만 알고 있는 숨은 죄들을 들추어내셨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지금도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