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노예 2013-03-12 , 조회 (29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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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
계 2:13 나는 네가 거하는 곳을 안다. 그곳은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다. 너는 나의 이름을 굳게 붙잡고, 심지어 나의 신실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거하는 곳에서 죽음을 당하던 때에도, 나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시대를 전환하기 위해 다니엘을 어떻게 사용하셨는가? 사무엘 뿐 아니라 다니엘에게도 중요한 원칙이 있다. 그것은 자원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사무엘은 나실인이었다. 나실인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헌신한 사람이다. 우리는 다니엘에게서도 동일한 원칙을 볼 수 있다. 분명히 다니엘은 나실인이 아니었으나 실지로 그는 나실인이었다. 왜냐하면 나실인은 어떤 포도주나 독주도 마시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쾌락도 즐기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다니엘에게서 찾을 수 있는 원칙이다.
왜 다니엘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고 왕의 진미에 참여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그 모든 것이 우상들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바빌론 왕의 고기와 곡식 뿐 아니라 음료도 모두 우상에게 드려진 것임이 틀림없다. 적어도 그러한 음식들은 레위기 11장의 규례에 따르면 모두 정결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럽혀진 음식이었다. 다니엘은 “나는 그 음식으로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젊은이들은 그것에 참여하지만, 나는 그것에 조금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다니엘은 사람들이 즐기고 자랑하는 모든 것을 거절했다. 그는 세상에서 그에게 지위를 주는 모든 것을 거절했다. 그는 자원하여 헌신한 사람이었다. …영적인 것을 약간 추구하고 주님 앞에서 조금 경건한 삶을 사는 것으로 이 시대를 전환하기 위해 주님께 쓰임받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시대를 전환하기 위해 주님께 쓰임을 받는 모든 사람은 나실인이어야 한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헌신한 이들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모두 자원하여 헌신하는 것이 무슨의미인지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것은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세상을 추구하고 세상을 즐기고 있을 때 스스로 그것에서 분별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별이 자원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성경은 그 당시 바빌론 왕이 여러 종족에서 왕 앞에 세울 만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선택받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왕은 선택받은 이들이 왕 앞에 설 때에 용모가 아름답고 윤택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삼 년 동안 최상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회를 동경했지만 선택받지 못했다. 그러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버렸다. 우리는 이곳의 음식과 음료를 즐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을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위치에 서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을 위하지 않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있다.”라고 말하며 서원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비록 매우 어렸을지라도, 반대 증거가 되기 위해 일어섰다. 이러한 반대 증거는 일종의 분별이다. 그들이 일어서자마자 세상으로부터 분명한 분별이 있게 되었다. …우리는 다니엘서 1장을 읽을 때 그 그림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바빌론의 흐름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분별된 이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을 수 없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마실 수 있는 것을 마실 수 없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든 것에서 다른 이들과 분명히 달랐다.
헬라어로 ‘안디바’는 ‘모든 것에 반대함’을 의미한다. 주님의 신실한 증인인 안디바는 세상적인 교회가 끌어들여서 실행했던 모든 것에 반대하여 대항하였다. 이것 때문에 그는 주님의 순교자가 되었다. 헬라어로 ‘순교자’는 ‘증인’이라는 단어와 동일하다. 안디바는 반대 증인으로서 반대 증거, 즉 예수님의 증거에서 빗나간 모든 것에 반대하는 증거를 지니고 있었다. 안디바가 살던 시대에 버가모 교회가 여전히 주님의 이름을 굳게 붙잡고서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부인하지 않은 것은 바로 안디바의 반대 증거로 말미암은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