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 양식 2012겨울 훈련 2주 3일
오늘의 양식
주님의 노예 2013-03-12 , 조회 (25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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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4:14-16 …레위 자손인 너의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나는 그가 말을 잘 하는 줄 안다. 지금 그가 마침 너를 만나러 오고 있다. 그는 너를 볼 때에 마음으로 기뻐할 것이다. 너는 그에게 말하여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어라. 내가 너의 입과 그의 입에 함께하며, 너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겠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다. 그는 너의 입이 되고,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될 것이다.





나는 주님께서 그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아론이 모세의 짝이 되기를 원하셨다고 믿는다. 주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어보내셨을 때 둘씩 내어보내셨다. 다시 말해 이것은 증거를 의미하는 둘의 원칙에 따라 내어보내셨다는 것이다. 홀로 있는 것은 개인주의적으로 있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심을 받은 것은 몸의 원칙을 따라 보내심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와 짝이 되는 아론이 있는 것은 신성한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칙에 따른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저, “네게는 너와 짝이 될 아론이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이 단락을 주의하여 읽어본다면 우리는 이것이 이미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은 모세가 자신과 짝을 이룰 어떤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셨다. 주님은 이렇게 하실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모세가 자신의 필요를 감지할 때까지 이것을 지적해 주지 않으셨다. 주님은 매우 지혜로우시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깨닫기 전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교회생활 안에 있는 우리 가운데 적용된다. 여러분은 내게 어떤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여러분이 내게 그것을 말하지 않고, 대신에 내가 나의 필요를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주님은 신성한 원칙을 지키셨기 때문에, 그분의 종이 개인주의적으로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모세에게는 아론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아론의 등장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모세와 짝을 이루도록 아론을 예비하셨다.

이렇게 짝을 이루는 원칙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여러분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자신과 짝을 이룰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섬기려고 나왔을 때 그는 개인주의적으로 처신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항상 그와 짝을 이룰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고린도전서를 시작하는 구절이 이것을 입증한다. “하나님의 뜻ㅇㄹ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과 그리고 형제 소스데네는”, 바울이 이 서신을 썼을 때에는 디모데도 바나바도 없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소스데네를 짝으로 취했다. 그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형제를 짝으로 취했다.

주님을 섬길 때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신성한 원칙에 따른 것이 아니다. 오늘날 신약 경륜 안에서 개인주의적으로 되는 것은 몸의 원칙을 범하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주의적으로 행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단체의 원칙을 따라 움직이고 행하여, 항상 우리와 짝을 이룰 다른 지체들 최소한 한 명은 가져야 한다. 우리와 짝을 이룰 지체들이 더 많을수록 더 좋은 것이다. 몸은 개인적으로 대표될 수 없다. 신성한 원칙에 따르면, 몸을 합당하게 대표하는 것은 항상 다른 이들과 짝이 되는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우리와 짝을 이루는 사람은 우리를 묶고 제한한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이들과 짝을 이루기가 어려운 것이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아론은 틀림없이 말하는데 있어서 모세보다 더 능력이 있었다. 아론은 모세보다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론은 이 기회를 틈타 교만해지지 않았다. 그는 단지 정해진 분량밖에 할 수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위치에 관련해서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사실 출애굽기 4장 16절은 모세가 아론에게 하나님 같았다고 말한다. 모세와 아론이 짝을 이루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모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짝을 이룰 때 우리가 어느 위치에 있게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주님의 안배에 달려 있다. 주님은 모세를 부르셨으며, 모세와 짝이 될 아론을 예비하셨다. 인위적인 조정을 위한 여지가 없었다. 모든 것은 신성한 경륜, 곧 신성한 안배에 따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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