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집 제14권(60) 고령 훈련 기록 (2) / 제61장 모든 것을 팖―부록
W.N.전집 / 재물
Ezra Zion , 2013-03-21 , 조회 (123)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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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만 니 전집 제3집 제60권

고령 훈련 기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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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장
문답집회 대화 기록(2)

 

 

 

 


시간 : 1948년 7월 2일, 오전
장소 : 고령



제61장
모든 것을 팖―부록

 

 

 

 


(주(註) : 이 메시지는 니 형제님이 고령 훈련 중에 해방하신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것에 관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로서, 1949년 고령 서실에서 출판된 초신 공과 단편 메시지 시리즈 가운데 제3편이다. 후에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 안에 들어가지 못하여 오늘 특별히 원래의 단행본 내용을 따라 여기에 수록하였다.)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 18:18-30).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10).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 2:44-45).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4:32-35).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들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19-24).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

초신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모든 것을 팔아 주님의 길을 가는 것에 관하여 첫 번째 중시해야 할 것은 바로 교회가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유용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말을 해도 공허한 말일 뿐이다. 초신자가 앞으로 이 길을 장래 잘 갈 수 있고 없고는 교회가 어떠한 상황인가에 있다. 만일 교회가 헌신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헌신하라고 하지 말라. 만일 교회와 세상이 분리되지 않았다면, 당신이 그들에게 침례를 말하고 세상과의 분별을 말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만일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모든 것을 팔지 않으면, 당신이 그들에게 모든 것을 팔라고 하는 것은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반드시 어떤 위치에 서 있어야만 갓 믿은 형제자매들을 이끌어 주기에 유용하다. 나는 하나님이 특별한 형제자매들을 선택하여 일으키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모두에게 이 길을 가라고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반드시 누군가가 그 위치에 서 있어야만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모든 사람이 다 필사적인 사람일 때 비로소 갓 들어온 사람에게 필사적일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필사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필사적이 되라고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 지방의 형제자매들이 상당히 강해야만 이 길을 통쾌하게 갈 수 있다. 한 지방의 형제자매들이 충분히 강하지 못하면 이 길을 잘 갈 수 있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젊은 관원에 대한 주님의 요구

이제 나는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젊은 관원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겠다. 이 젊은 관원은 행위에 있어서 아주 좋은 사람이었고, 하나님 앞에서의 상태 또한 나쁘지 않았으며,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 또한 그는 주 예수님에 대해 상당한 공경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주님을 ‘선한 선생’이라고 불렀다. 동시에 주 예수님도 그를 나쁘게 대하지 않으셨다. 주 예수님은 그를 보자마자 사랑하셨다(막 10:21). 주님은 이러한 사람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아셨다.

사람이 주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완전해야 함

그러나 주님은 여기서 하나의 요구를 하셨는데, 그것은 사람이 그분을 섬기고 따르고자 한다면 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이 하신 말씀에서, 네가 완전하게 되고자 한다면 여전히 한 가지가 부족하다(마 19:21참조)고 하신 것을 주의하라. 바꾸어 말해서, 주님의 말씀은 사람이 그분을 따르고자 한다면 완전하게 그분을 따라야 하며, 한 가지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아흔아홉 가지의 문제가 다 해결되었어도 한 가지를 자신을 위하여 남겨 둘 수 없다. 이런 사람은 그분을 따를 수 없다. 주님은 당신의 전존재가 오기를 요구하시고, 당신이 완전히 준비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며, 사람이 완전하게 그분을 따르기를 원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 젊은 사람은 어릴 때부터 계명을 지켜 왔고,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이었음에도 주님은 여전히 그에게 한 가지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이 한 가지가 없으면 안 된다. 이 한 가지는 바로 그의 모든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런 후에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길을 갈 수 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팔아야 함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모든 것을 팔지 않고서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팔지 않으면, 그는 주님을 따를 수 없고 이 길을 갈 수 없다. 여러분은 이 점의 엄중함을 철저하게 보아야 한다.


재물을 남겨 두는 것은 근심을 남겨 두는 것임

성경은 이 젊은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기록한다. 이처럼 주님과 가까이 있던 사람이고 주님을 상당히 분명하게 본 사람이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재물을 아까워했고 남겨 두려 했다. 그러나 그의 재물을 남겨 두는 것은 그의 근심도 남겨 두는 것이다. 왜냐하면 재물은 사람으로 하여금 근심으로 자신을 찌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재물을 축적하면서 동시에 기쁨도 축적할 수 없다. 사람이 재물을 쌓는 것은 바로 골칫거리를 쌓는 것이다. 사람이 재물을 쌓는 것은 바로 근심을 쌓는 것이다. 사람이 재물을 쌓는 것은 어려움을 쌓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재물을 붙들고 있으면서 주님을 따르고자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당신이 재물을 원한다면 주님을 따를 필요가 없다.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당신의 재물을 그대로 둘 수 있고, 그럴 때 당신의 근심도 그대로 있게 된다. 금전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근심도 따라간다. 당신은 금전을 잡았다면 근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재물을 다 내맡긴 사람이라야 비로소 기쁨이 있다. 반대로 아까워하는 사람들은 다 근심하는 사람들이다. 이 점에 관하여 나는 어떤 부분을 너무나 분명히 보았다. 무릇 재물을 아까워하는 형제는, 내가 예언하건대, 바로 근심 안에 거하는 사람이다. 물질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속에 괴로움이 있다. 이 한 가지 일은 아주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초신자들에게 만일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구원받은 것과 영생을 얻는 것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그 젊은 관원은 재물을 아까워함으로 근심하며 갔다. 주님은 그가 갈 때 한마디를 덧붙이셨다―”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여기서 여러분은 첫 번째 문제가 바로 사람이 어떻게 영생을 상속받는가 임을 보아야 한다. 이어서 언급할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제이다. 그때 베드로가,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여기서 구원을 얻는 것과 영생을 얻는 것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함께 언급되었다. 만일 당신이 영생을 상속받고자 한다면, 역시 당신은 모든 재물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이 영생을 상속받는 것을 저지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역시 당신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방법이 없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만일 당신이 구원받고자 한다면, 더욱이 주님이 당신을 구원하실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주님이 당신을 구원하셨다면, 당신의 재물은 버려질 것이다. 당신이 재물을 버린 것을 의지하여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재물을 버리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여러분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며,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역시 절대 불가능한 일임을 볼 수 있다. 우리 가운데 이렇게 많은 형제자매들이 있는데, 개개의 그리스도인들은 다 낙타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큰 낙타이고, 그저 먹고 살만한 사람은 작은 낙타이며 개개인이 다 낙타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부자도 역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주님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면, 어떤 부자도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팔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음

베드로는 이 말을 듣고서 즉시 염려하며 나서서, “그런즉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여기서 베드로는 잘못 알았다. 주 예수님은 이 젊은 사람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젊은 사람이 주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으므로, 주님이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답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팔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조금 있다가 주님은 다시 그에게,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이것은 바로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당신은 이 두 마디의 말을 함께 연결하여 읽어 보라.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모든 것을 팔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
베드로는 성경 교사인데, 이 두 마디를 듣고서 그는 큰일 났다고 느꼈다. 영생을 상속받는 것은 행위에 달려 있으며, 더욱이 부자가 되지 말아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팔아야 들어갈 수 있다. 만일 이러하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누가 먼저 모든 것을 판 다음 영생을 상속받을 수 있겠는가? 누가 먼저 가난한 사람이 되어 구원을 받겠는가?

모든 것을 파는 문제의 중심

이때 주 예수님은 한마디로 대답하셨다. 이 말씀은 이 단락의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마디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주님의 대답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분명히 초신자들에게, “이 사람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라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해 주라. 주님은 먼저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심

그러므로 이 젊은이의 잘못은 그가 모든 것을 팔지 않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근심하며 돌아간 데 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시며, 주님도 이것이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계신다. 그가 할 수 없다는 것이 무슨 기이한 일이겠는가? 주님은 사람이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계셨다. 그러나 그는 근심하며 돌아갔다. 그것은 그가 할 수 없다고 여길 뿐 아니라, 하나님도 하실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재물을 아까워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이 재물을 아까워한다는 것을 아시는데, 어떻게 그것을 나에게 시키시겠는가? 그러나 주 예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어떻게 낙타를 바늘귀로 들어가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동일하게 온 세상 사람들 모두가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팔라고 한다면, 이것은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당신이 할 수 없다고 해서 이렇게 근심하며 돌아가 버린다면, 그것도 크게 틀린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근심하며 돌아간다면, 당신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사람의 잘못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 있음

당신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바꿔 말해서, 주님은 여기서 그 젊은 사람에게 은혜를 주실 준비가 다 되었지만, 단지 그 젊은 사람이 원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멈추고서, “주님! 저는 제 돈이 아깝습니다. 제게 은혜를 주소서. 제가 할 수 없는 것을 당신은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지만 당신은 저로 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저의 돈이 아깝습니다. 저는 그것을 팔고서 당신을 따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에게 은혜를 주소서!”라고 말하면 된다. 기도하지 않고, 믿지 않고, 구하지 않은 것이 그의 잘못이며, 근심하며 돌아간 것 또한 그의 잘못이다. 사람의 잘못은 그의 연약함에 있지 않고,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 있다. 사람의 잘못은 그의 능력 없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그를 대신하여 하시게 하지 않는 데 있다. 사람의 잘못은 자신에게 행위가 없는 데 있지 않고, 그가 하나님으로 그를 구원하여 그로 이 행위를 갖게 하시도록 하지 않은 데 있다. 이것이 주 예수님이 중시하시는 점이다. 이 사례의 중점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이다. 주 예수님은 그 젊은 관원에게, 너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신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 주고자 하셨지만, 이 젊은 관원은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만 보고서 근심하며 돌아갔다.

 

버릴 수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길이 있음

그러므로 초신자들이 보아야 할 것은 만일 하나님이 당신에게 즉시 기꺼이 버리라고 하셨다면, 당신은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하기가 어렵다면, 젊은 관원과 같이 역시 길이 있다. 열두 사도처럼 통쾌해도 길이 있고, 젊은 관원처럼 아까워해도 역시 길이 있다. 당신이 다만 머리를 숙이고 주님께, “주여,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제게 은혜를 주소서.”라고 한다면, 역시 길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고 그 젊은 관원처럼 주님을 떠나 근심하며 돌아가 버린다면, 이것은 그의 잘못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철저해야 함

주님이 그가 떠나가는 것을 보고서 그에게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씀을 하실 때, 베드로는 주님께,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님은 베드로에게, “너희가 모든 것을 버린 것은 잘한 것이다.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집과 처자와 형제와 부모와 자녀를 버리고 나를 좇는 사람은 금세에 백 배를 얻을 뿐 아니라 내세에 영생을 상속받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주님은 여기서 제자들에게, 주님이 사람들에게 그분을 따르라고 하신 것은 바로 그분과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는 것임을 보여 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주님을 좇아야 한다.


주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떨쳐 버려야 함

젊은 사람들은 만일 주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팔며, 던져 버린 다음에야 비로소 주님을 따를 수 있음을 보아야 한다. 여기의 열두 사도들은 주님이 그들을 불러 그분을 따르게 하실 때, 그들은 즐거워하며 통쾌하게, 조금도 연연해하는 마음이 없이 배와 그물과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주님을 좇았다. 초기에 이러한 사람들이 있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중국에도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같이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서 통쾌하게 주님을 좇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젊은 관원과 같이 주님이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그분을 따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서 이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역시 그에게도 길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길은 바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따르기를 두려워했던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음

이곳은 우리에게 하나의 정확한 성분을 보여 주는데, 주님이 부르신 사람들 가운데 여기 열세 명이 있다. 그중 열 한 명은 통쾌하게 모든 것을 팔았으며, 한 명은 가짜였으며, 다른 한 명은 곤란에 처한 사람이었다. 열세 명 중에서 열 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고, 한 명은 가짜로서 유다였으며, 또 한 명은 바로 열세 번째의 사람인 젊은 관원이었다.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을 전할 때,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오직 한 명뿐이었다고 여기지 말라.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바에 따르면, 주님을 따르기를 두려워했던 사람이 오직 한 명뿐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견고하게 서야 함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견고하게 서 있고,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견고하게 서 있다면 결코 젊은 관원이 너무 많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런 사람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온 교회가 다 유다는 아니며, 온 교회가 다 젊은 관원도 아니다. 열세 명 중에 열한 명은 철저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일단 열리면, 그 지방이 옳을 때 얻는 사람도 다 옳을 것이요 철저하게 주님을 따르지 않은 사람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삭개오가 구원받은 것의 교훈

이제 우리는 다시 삭개오의 이야기를 보기로 하자. 삭개오는 유대인이지만 로마 정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볼 때, 그는 유대의 매국노이다. 그것은 그가 로마 제국에 협력하여 동족인 유대인들을 착취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볼 때, 그는 로마 제국이 세운 세리이며, 유대 땅의 유대인이며 로마 제국을 도와서 본국인의 세금을 거두고 그것을 그들의 나라를 멸망시킨 로마 제국에게 주는 사람이었다.

 

삭개오는 세리였을 뿐 아니라 죄인이었음

그러므로 삭개오 개인의 도덕성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며 그는 그 젊은 관원과 비할 수 없었다. 그 젊은 관원은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지켰지만, 이 세리는 세금을 거두어 외국인에게 주는 사람이었다. 당시의 세리는 후대의 세리와 마찬가지로 다 재물을 탐했으며, 늘 기회만 있으면 더 많은 돈을 빼앗았다. 그러므로 그때 유대인 중에 두 부류가 가장 나빴는데, 한 부류는 죄인이었고 다른 한 부류는 세리였다. 오늘날로 본다면 한 부류는 깡패들과 같이 악명을 떨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날 주 예수님이 오셨고, 더욱이 그곳을 지나가셨다. 여기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신, 사람을 끌 수 있는 분이 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삭개오를 이끄셨으므로 그가 자신을 주님께 드린 것이다.


주님이 그를 만나셨을 때 아무 말씀도 전하지 않으셨음

삭개오는 이끌려 왔으며, 예수를 한번 보고자 했다. 그러나 키가 작았던 연고로 그분을 보기 위하여 뽕나무로 올라갔다. 뜻밖에도 그는 주님을 보지 못했지만, 주님이 먼저 그를 보셨다. 우리 주님은 그를 쳐다보았을 때 먼저 그에게 아무런 말씀도 전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그에게, 너는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너는 토색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죄를 범하거나 재물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으며, 너의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또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주님은 그에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다만 그에게,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겠다”고 말씀하셨을 뿐, 그에게 어떤 권고의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당신은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주님은 마태복음 5, 6, 7장의 행위에 관한 말씀을 전하지 않으셨고, 요한복음 3장에 있는 거듭남의 말씀을 전하지도 않으셨으며, 4장에 있는 생수의 말씀, 8장에 있는 빛의 말씀, 12장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에 관한 말씀도 전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삭개오에게 근본적으로 아무런 말씀도 전하지 않으셨고, 한마디도 권고하지 않으셨다. 개인적인 접촉이었으며, 개인적인 만남이었다. 여기에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고, 여기에 주님이 선택하고자 하는 한 사람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진리 방면에서 삭개오는 한 가지도 아는 것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옆에서 불공평하다고 느꼈음

주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으며, 다만 간단하게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겠다”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삭개오는 이것을 듣고서 기뻐하며 주님을 영접했다. 그러나 옆에 섰던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것을 듣자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어떻게 나사렛 사람 예수가 누구 집에도 가지 않더니 뜻밖에 이러한 사람의 집으로 가는가? 주님은 모른다손 치더라도, 너희 제자들은 한번 알아보면 삭개오란 사람의 행위가 옳지 않으며 명성도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지 않겠는가? 어떻게 너희 선생을 권하지 않는가? 모든 사람들이 다 삭개오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알고 있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자 마음속에서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주님이 이르신 곳에는 금전이 나감

여기서 우리가 주의하는 점은 바로 이것이다. 주님은 삭개오에게 아무런 말씀도 전하지 않으셨고, 다만 내가 너의 집으로 가겠다는 한마디만 하셨다. 단지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주님이 이르시지 않았지만 오시겠다는 말만으로도 충분하다. 주님이 이르시는 곳에는 금전이 나간다. 주님이 이르시는 곳에는 재물이 나간다. 주님이 이르시는 곳에는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간다. 주님은 마치 “내가 이 집으로 가면 문제는 해결된다. 내가 이 집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집에 이른 것과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 말은 곧 효력을 발생했다. “내가 가리라”고 하자 즉시 효력이 발생했다. “내가 가리라”고 하자 일은 즉시 이루어졌다.

한마디에 삭개오가 재산을 다 내놓음

어떻게 증명하는가? 삭개오가 이 말을 듣자 즉시 일어나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한 것은 그의 전 재산을 다 쏟아 버리는 것이다. 단지 주 예수님의 한마디만 듣고서 삭개오는 가산을 다 쏟았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심

주님이 젊은 관원을 권하셨지만, 젊은 관원은 할 수 없었다. 주님은 삭개오에게 권하지 않으셨지만, 삭개오는 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다 부자였다. 누가복음 18장의 부자는 젊었고, 19장의 부자는 나이가 많았다. 일반적인 상황으로 본다면, 나이 많은 부자가 돈을 더 사랑하고 젊은 부자는 비교적 통쾌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기본적으로 다른 것은 하나는 사람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대표하고, 하나는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이 일을 가벼이 볼 수 없다. 모든 것을 팔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가 기꺼이 가산을 다 떨쳐 버리길 원하겠는가? 사람이 바보가 아닌 이상 어찌 모든 것을 다 마다하셨는가? 그러나 삭개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당신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삭개오는 교리를 듣지 않고 행했다. 주님은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그는 행했다. 이것은 다만 하나의 원칙일 뿐이며, 우리에게 그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보여 줄 뿐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함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건대, 하나님이 하시기만 하면 낙타는 즉시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당신은 초신자들에게, 누가복음 18장에서는 한 마리의 낙타가 바늘구멍 주위를 배회하다가 한 바퀴 돌고 통과하지 못한 채 가버렸지만, 19장에서는 한 마리의 낙타가 바늘구멍 앞에서 통과했다는 것을 말해 주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18장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19장은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들이여, 만일 여러분이 주님을 앙망한다면, 내가 말하건대 이렇게 통쾌하다. 이 문제가 이렇게 통쾌하게 해결되었다. 모든 것을 파는 것은 사람이 볼 때 미친 짓 같지만, 이렇게 통쾌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구원이 이 집에 이름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하는가? 임의로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고 말하지 말라. 주님은 여기서 다시 두 가지 이유가 있음을 말씀하셨다. 첫째는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며, 둘째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삭개오가 이렇게 한 것은 사실상 그 자신이 한 것이 아니다. 삭개오가 주님의 명령을 듣고서 몇 차례 울고, 여러 차례 기도하고서, 자기의 마음과 여러 번 상의하고서 마지막에 방법이 없어서 이를 악물고 한 것이 아니다. 오늘 약간 내놓고, 내일 조금 더하고, 그 다음날 다시 조금 더하고서, 어느 날에 이르러서는 방법이 없자 완전히 다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다. 주님은 여기서 그의 결정이 아니고, 그의 몸부림과 고려가 아니며,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무슨 이유로 이 집이 이렇게 가산을 쏟았는가? 이것은 수십 년을 들여 축적한 것이며, 얼마나 많은 모험을 했는지 모르며, 얼마나 많은 명예를 잃고서야 이러한 재산을 쌓았는지 모른다. 어떻게 한 순간에 쏟아 버릴 수 있는가? 이것은 구원이 이 집에 임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을 구원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를 구원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건대, 구원이 이 집에 임하고 주님의 능력이 이 집에 이르면 이렇게 통쾌해진다. 나는 당신이 이 두 ‘집’을 연결하여 읽기를 바란다. 주님은 5절에서 “내가 오늘 네 집에서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고, 뒤에 9절에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확실히 주님 자신이 바로 삭개오의 집에 임한 구원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 집에 이를 때 구원도 우리 집에 이른다. 주님이 오시는 것은 구원이 오는 것이다. 주님이 오시면 할 수 있다. 이 젊은 관원은 하나님이 하실 수 없다고 말했지만, 삭개오는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은 재물에서 나올 길이 없으며, 사람은 근심하며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주님이 그를 긍휼히 여겨 구원하시면, 어떤 어려움도 없게 된다.

주님은 오셔서 재물 안으로 잃어버린 바 된 사람을 찾으심

마지막으로, 주님은 결론을 내리시면서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기독교의 성경에서 상당히 유명한 구절이다. 인자가 온 것은 한 가지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한 것인데 바로 금전 안으로 잃어버린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잃어버린 바 된 사람들이다. 돈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길을 잃은 사람이요 버려진 사람들이다. 오늘 주님은 여기서 찾고 계신다. 삭개오가 주님께 찾은 바 되었듯이, 주님은 여러분도 찾으셨다. 여러분도 본래 잃어버린 바 되었고, 재물 안에서 길을 잃었던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이 여러분도 찾으셨고 그러므로 여러분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돈이 당신에게서 나올 때 모든 문제가 끝나게 된다.

오늘날 하나님이 가고자 하시는 길

여러분은 이 두 장―누가복음 18장과 19장-을 주의해야 한다. 주님은 젊은 관원에게 모든 것을 팔라고 하셨지만, 젊은 관원은 근심하며 가버렸다. 그러나 삭개오는 주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이렇게 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주님은 사람이 이렇게 하기를 원하셨다. 이 년이 지난 후, 오순절에 교회가 정식으로 세워졌을 때, 이 일은 여전히 이렇게 행해졌다. 교회가 정식으로 세워졌을 때, 모든 일은 이렇게 간단했다.

 

 

모든 것을 파는 것은 주님의 명령임

주의할 점은, 사도행전 2장과 4장에서 교회가 시작될 때 유무상통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어떤 물건을 자기의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바꾸어 말해서, 주님의 주권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 안에 있었다. 사람이 일단 영생을 얻게 되면, 생명을 가진 모든 사람들 안에서 당신은 당신의 물건의 범위 또한 확산됨을 볼 것이며, 물건들이 당신에게서 흘러 나가게 될 것이다. 다음 단계에서 당신은 자연히 사람이 모든 전지와 집을 파는 것을 보게 된다. 4장에서 믿는 이들은 또한 밭과 집을 다 팔았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가기를 원하시는 길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파는 것은 바로 주님의 명령이다.

일반적인 물건들은 서로 통용함

오늘의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주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동산, 필수품 등 그가 가지고 있는 몸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주님 앞에 올 때 주님께 만져짐으로 말미암아 이것들은 모든 사람의 물건이 된다. 누구도 이것이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당신은 누가 이것을 취했으며, 이것은 누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고, 이 물건은 내가 사용해도 되고 당신이 사용해도 된다고 말해야 한다. 이 돈은 내 주머니 속에 있어도 되고 당신 주머니 속에 있어도 되며, 이 옷은 내가 입을 수도 있고 당신이 입을 수도 있다고 말해야 한다. 반드시 이러한 맛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물건들에 대한 것이다.


밭과 집, 그리고 귀중품은 다 팔아야 함

당신의 밭과 집은 다 팔아야 한다. 만일 어떤 특별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역시 응당 팔아야 한다. 밭과 재산 그리고 기타 도자기나 골동품, 서화 등은 다 팔지 않으면 안 된다. 판 후에는 돈을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어떤 물건도 자기를 위해 사용하지 않음

나머지 당신이 소유한 것과 당신이 쓸 것은 다 팔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는 한 가지 태도가 있어야 하는데, 무릇 모든 물건을 당신이 사용해도 되고, 그에게 주어 사용하게 해도 되며,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에게 주어도 좋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농담 같지만, 내 자신의 일을 여러분에게 들려 주겠다. 나는 이십 년에 걸쳐 하나의 습관을 가졌는데, 즉 무슨 물건을 사든지 한번 사면 반 다스를 사거나 한 다스를 산다. 어떤 형제는 그것을 이상하게 느끼고 내가 왜 그렇게 많이 사는지를 모른다. 예를 들어, 내가 보안경을 하나 사려고 한다면, 내 마음은 ‘내’가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 만일 당신이 나에게 하나를 주시려 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나에게 여섯 개를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 평강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형제가 오면 그에게 하나를 주고, 다른 형제가 오면 다시 그에게 하나를 준다. 다섯 개를 주고 나서 자신이 하나를 낄 때 비로소 내게 평안이 있다. 예를 들어, 면도기를 살 때, 나는 한번 사면 한 다스를 사는데, 칼날을 살 때도 한 곽(열두 다스)을 산다. 왜 내가 그렇게 하는가? 그것은 만일 하나만 산다면, 그 맛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올 때 하나를 주고, 그가 올 때 또 그에게 하나를 준다면, 그 맛이 좋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천 명 만 명에게 하나씩 줄 수는 없지만, 그러나 몇 사람에게 나누어 줄 때 상황이 달라진다. 만일 내가 한 다스의 면도기를 사서 열한 명의 형제가 올 때 한 사람에게 하나씩 주고 나 자신도 하나를 사용한다면, 아마 하나님은 내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양해해 주실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래도 그 물건은 단지 네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와 오랫동안 같이 있어 온 형제자매들은 다 이것을 알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물건을 살 때 언제든지 한 다스를 산다는 말은 한 다스를 내가 다 쓴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내보낼 때 그 맛은 아주 좋다.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원칙을 고수해야 함

우리는 반드시 많은 물건을 그렇게 꽉 잡고 있지 않기를 배워야 한다. 나는 주님이 한 벌의 큰 저고리를 줄곧 내게 남겨 놓게 하지 않으실 거라고 믿는다. 아마 내일이면 내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옷을 만들 때 남에게 주기 위해 두세 벌의 옷을 더 만들어 두는 것이 낫다. 반드시 그 맛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물건을 살 때마다 당신 자신만을 위하여 계획하지 말고 반드시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물건을 사야 하며, 사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맛은 반드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맛이어야 한다. 나는 그 행위의 어떠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결코 자신만을 위하여 생각지 말고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이 땅에 뿌리를 박지 말고 인색하지 않기를 배움

그러므로 갓 믿은 형제자매들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한 가지를 배워야 한다. 만일 당신에게 특별한 재산이 있고 특별한 물건이 있다면, 반드시 팔아야 한다. 우리는 재산이 있고 금과 은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다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믿는 이들이 많은 금과 은, 밭, 집 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것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 뿌리를 박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밭을 팔았지만 그에게서 만년필 한 자루 빌리는 것도 쉽지 않다. 세상에서 구원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인색하며, 거의 다 인색한 사람들이다. 큰 물건에서 인색할 뿐 아니라 어떤 작은 물건에조차 인색하며 어떤 작은 일에서조차도 인색하다.

물건을 붙잡지 말고 반드시 손을 풀어놓아야 함

나 개인은 여러 번 사도행전 2장과 4장을 읽을 때, 항상 소위 산업, 밭, 집과 같은 것을 팔아야 한다고 느꼈다. 교회는 당시에 그렇게 했다. 그러나 다른 물건들은 언급하지 않고 다만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에 대하여 늘 손을 풀어놓고 있어야 한다. 당신이 가진 물건을 팔아도 좋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도 좋다. 그 느낌은 언제나 사람들이 나의 물건을 사용하기 원하며 한 자루의 칼이나 연필 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 물건들이 가져가지기를 원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렇게 한다면, 하나님도 당신이 부족하지 않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에게 많게 하실 수도 있다.

초대 교회의 본

그러므로 갓 믿은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이 원칙을 보아야 한다. 초대 교회는 다 이렇게 했다. 처음 열두 제자들도 주님께,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당신을 좇았나이다”라고 말했다. 얼마 안 가서 오순절이 되어 첫 번째 부흥의 때에 그 삼천 명과 오천 명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팔았으며, 그들의 구원은 마치 삭개오의 구원과 같이, 아무런 교리도 듣지 않았지만 그렇게 했다.

말씀을 듣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팖

열두 제자가 모든 것을 팔고 주님을 따른 것은 말씀을 듣고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주님은 가서 모든 것을 팔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다만 나를 따르라고만 말씀하셨다(마 4:19, 21). 주님이 그들을 불러 따르게 하실 때, 그들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떨쳐 버렸다. 동일하게, 사도들은 첫 번째 구원받은 삼천 명에게 모든 소유를 팔라고 말한 적이 없지만, 그들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팔았다. 사도들은 오천 명에게도 모든 소유를 팔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다 팔았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도 이렇게 해야 한다. 여러분은 비록 갓 믿고 갓 들었지만, 초기에 그 삼천 명, 오천 명이 한 것과 같이 해야 한다. 그들은 처음 주님을 믿었지만 이렇게 했었다. 교회는 이렇게 계속 나아가야 한다. 만일 이 가풍이 당신에게서 끊어진다면, 이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우리는 반드시 교회를 정통의 길로 이끌어 전진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고 또 재물을 섬길 수 없음

이제 우리는 마태복음 6장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여기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만일 당신이 주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한 주인밖에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섬기고 또 재물을 섬길 수 없다.

재물은 하나의 우상임

재물은 하나의 우상이다. 여러분은 그를 섬긴 지 이미 수년이 되었다. 재물이 당신의 마음을 붙잡고 있은 지도 이미 수년이 되었다. 오늘 당신이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당신은 이 둘 가운데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당신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또한 재물을 섬길 수 없다.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다. 어떤 형제가, “내 재물은 땅에 있지만, 내 마음은 하늘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확실히 박물관 안에 있는 물건이다. 런던 박물관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박물관이다. 주님이 말씀하신 적이 없는 것을 당신은 발명해 내었다. 이것은 기적보다 더 기묘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님은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마음은 언제나 재물을 따라가며, 당신은 도망갈 길이 없다. 어떻게 말하든지 당신의 재물이 있는 곳에 당신의 마음도 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배움

만일 당신이 재물을 땅에 쌓아 둔다면, 당신은 재물을 섬기는 것이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떤 사업은 할 수 있으며, 생산하는 일을 여전히 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을 위하여 가져와야 한다. 여러분은 반드시 최저의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당신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재물을 섬길 수 없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택하겠는가, 재물을 택하는가?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밖에 택할 수 없다. 여기서 주님은 우리에게, 만일 우리가 재물을 택했다면, 그것은 수지에 맞지 않은 것인데, 이는 재물은 동록이 해할 수 있으며 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물론 은행에 지폐로 저금해 두면 이자가 조금씩 더해질 수 있지만, 역시 도적이 들어 도적질해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전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기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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