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ra Z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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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재개 메시지 기록 (上)
제34장 이주 - 대화기록(10)
시간 : 1948년 21일
장소 : 광동 산두(汕頭)
말씀 : 윗트니스 리 형제님
기도 : 주여, 우리로 흑암 가운데서 더듬지 않게 하시고, 빛을 주소서. 또한 우리의 빛으로 돋는 햇빛같이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게 하소서. 주여,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당신께 들리고 열납될 것을 믿습니다. 주여, 우리 안팎을 강건케 하소서. 오늘 저녁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당신을 향한 형제 자매의 사라을 봄으로써 다른이들로 당신의 긍휼을 입게 하소서. 주여, 우리의 앞길을 분명하게 하사 흑암 중에서 광명을 보게 하소서. 우리가 당신의 길을 제한한 것을 용서하소서.
이주에 관하여
질문 : 하나님은 오늘날 중국에서 무엇을 하시기를 원하시는지요? 우리는 무엇을 주의해야 합니까? 우리는 어떤 단계를 취해야 합니까? 이 문제들이 아직 우리에게 분명치 않습니다.
윗트니스 리 형제님의 대답 : 과거에 우리는 사역의 기초를 이미 닦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는 참으로 문제이다. 먼저 이주의 문제를 말해보자.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서 나그네임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서 끊임없이 활동하고 이동하는 한 무리의 사람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도 바로 이렇게 했는데, 그들은 한 곳에 안착하지 않고 계속 이동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지(히 3:1)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고, 땅에서 우리는 나그네일 뿐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늘에 속한 백성이며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한다(빌 3:20).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이었다. 그는 한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옮겼으며, 이 땅에서 그는 다만 나그네였다(히 11:8-9). 나그네는 마음이 머무르려 하지 않고 계속 가려고 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마치 동역자가 사역하러 각 지방에 다닐 때, 비록 음식이 좋고 거처가 편하고 접대가 따뜻할지라도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떠나야 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이은 바로 이와 같아야 하며 이스라엘 백성과 같아야 한다.
교회의 부르심 받음과 시작과 부흥은 모두 각처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 있음
교회의 원문은 에클레시아(ekklesia)로서 소회(召會)로 번역되어야 한다. 소회는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며, 그들은 땅 위에서 단지 나그네일 뿐이다. 당시 사도와 성도는 모두 유동(流動)하는 사람들이었다. 사도행전에서 그 흩어진 성도들은 각처에서 널리 복음을 전했는데, 동역자만 전도하러 나간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나갔다(행 8:4). 복음의 출로는 사도의 나감과 성도의 나감으로 이루어졌다. 사도행전 13장 전에는 성도의 나감이 있고 13장 후에는 사도의 나감이 있으나 나중에 이 두 길은 모두 중단되었다. 이백 년 전 보헤미아(Bohemia)에 모라비안 대부흥(Moravian Revival)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일으켜져 미주(美州)와 태평양 지역과 대서양 지역 등으로 흩어졌다. 이러한 움직임을 교회가 타락하게 되면서 잃어버렸던 것이었다. 교회가 부흥될 때 복음이 나가면서 많은 동역자들 또한 따라 나갔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가는 것>임
그러난 오늘날 얼마나 많은 성도가 나가고 있는가?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로 이전에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하게 하려 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이주이다. 사람들이 이주하는 것은 전쟁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과의 전쟁 동안 많은 사람들이 곤명(昆明)으로 이주했는데, 일본이 망하자 그들은 원래 지역으로 다시 돌아갔다. 복음을 위해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은혜를 입으러 <오고> 봉사를하러 <가라>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에는 <오라>는 단어가 아주 많은데, 우리는 대부분 이러한 <오라>라는 단에는 붉은 줄을 그을 것이다. 그러나 성겨에는 또한 <가라>라는 단어가 있는데, 마태복음 마지막 장에서도 <가라>고 말하고, 사도행전에서도 <가라>고 말한다. 사도행전 28장에서는 단지 로마까지 이르렀으며, 아직<가라>가 완성되지 않았다. 사도행전은 끝이 없는 책이다. 하늘에서 사도행전은 이미 200장 이상 기록되었을지 모른다. 후에 로마에서부터 유럽에 이르고, 태평양을 건너서 중국 동부에까지 이르렀다. 비록 복음이 동부에 이르렀지만, 사양 사람이 복음을 중국 내륙까지 가져오기는 아주 어렵다. 중국 사람들이 움직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은 중국 동부에서 멈추었다.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언제나 한 곳에 머무르고 싶어한다. 어떠 집안은 산두(汕頭)에서 이미 백 년 이상 살아 왔고, 의식주가 모두 여기에 있으며, 여기서 아이들을 낳고 여기서 죽고 여기서 묻히는 등 모든 것이 이미 굳어져 버렸다. 우리는 얼마의 사람들이 주님을 위하여 티벳으로 가서 죽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올 때>에는 땅을 떨쳐버리고 <갈 때>에는 하늘을 가져가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연대에서의 이주 간증
연대에서의 일차 부흥에서 팔백여 형제 자매 중 거의 구십 퍼센트가 전체를 드렸다. 그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모두가 빛 ㅂ췸 받아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으며, 다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묶어두기를 원치 않았다. 형제 자매들은 가정과 사업 모두를 주님께 드렸다. 모두가 집회에 오자마자 주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그 기간 동안 어떤 사람도 말씀을 많이 전하지 않았으며, 집회의 분위기는 형용하기 어려웠고 사람들은 들어오자마자 거기에 주님이 계심을 느꼈다. 형제 자매들은 모든 것을 드렸는데, 어떤 형제는 심지어 집에 돌아가서 감히 상자를 열어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상자를 열자마자 의복이나 물건을 보이면 마음 속에 '헌물하라'는 한 음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관을 지냈던 한 형제는 형제 자매들이 헌물하는 상황을 보고서 이것은 오순절 때보다 더하다고 말했다. 이 말이 지나친 것이었을지라도 이 형제는 임의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그러한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오십여 세 되었던 한 형제는, 한 번은 주님이 친히 강당에 서 계신 것을 보았는데, 형제가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그부분이 바로 곁에 계셨다고 했다. 그가 본 것은 어떤 실지이지 거짓이 아니었다.
한 집회에서 나는 손을 들고 기도했는데, 약 30분이 지났어도 말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으며,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생각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오늘 여러분이 만일 나에게 기도를 반복해보라 한다면, 나는 할 수 없다. 기도가 끝날 무렵에 나는 두 손을 들었는데, 내 앞에 한 형제가 두 손을 들어 나의 팔을 붙들어 주었다. 이후로 두 무리의 형제 자매들이 이주하게 되었다. 첫 무리는 칠십여 명으로 그 중에 육십여 명에게 교회가 여비를 대주었다. 후에 또 삼십여 명이 동북쪽으로 갔는데, 오늘날까지 주님은 끊임없이 그들을 축복하고 계신다.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자신도 어떤 능력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은 사마로(四馬路) 집회를 화제 삼았으며, 우리에게 금이 든 마대 자루가 있다고 헛소문을 퍼뜨렸다. 일본인이 온 후로, 그들은 두달 반 동안 나를 조사했다.
첫 무리가 이주한 후에 두번째 이주가 있었다. 두번째 무리는 의사나 상인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졌는데, 얼마 안 되어서 일본인이 나를 체포해갔다. 나는 일 개월간 감옥에 있다가 나온 후, 중병에 걸렸으며, 일 년 후에 연대를 떠나서 지금까지도 돌아가지 못했다. 당시에 이주했던 사람들은 내몽고와 신강(新彊)과 영하(寧夏)로 갔다.
이주는 복음을 위하여 사는 것임
한 곳에서 너무 오래 살면 거기에 문제가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이 본래는 빈궁했는데, 후에 주님을 믿고서 장사가 아주 잘 되어 많은 이윤을 남겼으며, 그 결과 헌금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윤이 많을수록 헌금 액수는 많아졌지만 헌금의 비율은 전보다 줄어들었다. 만일 첫해에 천을 벌었다면 자물쇠를 열어서 반을 드렸다. 장사가 잘 되어 수만 심지어 수억을 벌기에 이르면 자신의 소용을 위해 남겨놓은 액수는 더 증가하고 헌금의 비율은 전보다 훨씬 줄어들게 된다. 비록 기도할 때에는 분명하지만, 실행할 때에는 모호해진다. 어떤 사람이 한번 부추기면 부동산을 사서 합자 회사를 차린다. 기회가 되어 회사가 다른 지역으로 옮기게 되면, 살 만한 집이 있을 때, 그는 또 그것을 산다. 이런 식으로 그는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된다. 하늘에 속한 백성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 위에서 성장하는 것은 식민지(殖民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식지민(植地民)이 되는 것이다. 각지 교회는 점점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말씀을 전할 때에는 모두들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행할 때에는 그렇지가 않다. 물질이 풍부하면 교회 중에 자연히 헌금이 많아지고 형제 자매들 가운데 누림 또한 많아지지만, 그럴 때 세상이 언제 들어오는지 모르게 들어온다. 이주는 뿌리를 뽑는 것이며, 일체를 팔고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다.
오씨 성을 가진 한 의사가 있었는데,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가 만일 모든 것을 팔아서 어떤 곳에 가서 평일에는 의술을 실시하고, 주일 오전에는 복음을 전하며, 오후에는 성경을 연구하고, 그의 자매는 여전도자가 될 수 있다면, 일 년 안에 백명을 구원받게 할 수 있다. 몇년이 지나서 다시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일 년 동안 또 이렇게 했는데, 만일 백 명이 구원받지 않았다면 나를 찾아와도 좋다. 만일 당신이 모든 것을 팔아서 돈을 만드는데, 오십억의 가치가 있는 땅을 단지 삼십억에 팔았다면 이십억을 손해본 것 같지만, 사실상 당신은 당신의 혼을 얻은 것이다. 사도행전 1장에서 주님이 부활하신 후, 사도들은 천국의 문제를 연구하기만 좋아하고 나가기를 원치 않았다. 결국 주님은 예루살렘에 한 차례 화를 일으키심으로 그들 모두를 나가게 하셨다(행 8:1-4). 주님은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부흥되는 생활이 필요함
하나님의 자녀는 마땅히 <유랑하는> 사람이어야지 <머무르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마땅히 변방 황무지까지 이르러야 한다. 사람들은 인정 때문에 가기를 원치 않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가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중국에서 일찍이 좋은 그릇들을 얻으셨는데, 오늘날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위하여 나가지 않는다면 누가 이 일을 하겠는가? 이 일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복음이 회복되어야 하고, 부흥의 생활이 있어야 하며, 그런 후에 이주할 수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일본인은 패했지만 여전히 뭔가가 다시 올 수 있다. 연대는 사람을 내보냄으로써 축복을 얻었다. 현재 수원(綏遠)에는 이미 삼십여 곳에 주님의 상이 있는데, 이 형제들은 장가구(張家口)로부터 이주했으며, 어떤이는 연대로부터 수원으로 이주했다.
이주는 릴레이 경주와 같음
현재 상해에서도 이미 일백여 형제 자매가 서명했는데, 만일 인도가 있어서 기회를 갖게 되면 그들 또한 이주하고자 할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한 무리의 선봉대가 필요하다. 사람은 나갈 때 비로소 모든 것을 실지로 내려놓게 된다. 상해에는 약 천 명의 형제 자매가 있으므로, 재물로 말한다면 매월 응당 오천만원의 헌금이 나와야 한다. 연대에서 성도들이 이민을 가면 갈수록 교회 인수는 더 많아졌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릴레이 경주와 같아서 정거장이 필요하다. 서양 사람이 복음을 중국 연안에 전해주었으므로, 오늘날 우리는 복음을 연안에서 내륙으로 가져가야 한다. 서양 사람들은 내륙의 복음의 문을 열 수 없었으나,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그것을 열고자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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