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집 제61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1) 제10장 내맡김과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과의 관계
W.N.전집 / 재물
Ezra Zion , 2013-04-05 , 조회 (117)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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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내맡김과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과의 관계

 

 

 

 


시간 : 1950년 2월 4일 저녁
장소 : 홍콩 구룡 좌돈도

내맡김으로 영광스런 교회를 건축하고
주님의 재림을 가져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계속 주의하는 한 가지 일은 바로 주님이 다시 오기 전에 교회는 반드시 영광스런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교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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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런 단계에 이르지 않는다면 주님의 다시 오심이 언제까지 더 지연될지 모른다. 계시록 5장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인봉된 책을 한 권 보았다. 요한은 이것을 보고 그 책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두루마리를 뗄 사람이 없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성취될 수 없다. 이때 한 천사가 누가 그 책을 펴며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고 물었는데, 그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요한이 울었다고 말했다(1-4절). 우리는 성경을 상당히 많이 읽고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는데, 여러분은 울었는지 모르겠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조급해하는가?
성경 전체의 모든 예언 가운데, 내가 염려스럽게 느끼는 두 장의 예언이 있다. 여러분도 이것을 염려하는지 모르겠다. 그 두 장은 바로 에베소서 4장과 5장이다. 이 두 장은 성취되지 않을 것같이 보인다. 에베소서 4장은 이 땅에서 교회가 건축되고, 장성한 사람으로 자라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한다(13절). 이것은 아주 어려운 것 같고, 교회가 이런 단계에 이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이것만이 아니라 에베소서 5장도 있다. 이것은 4장과 같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 장에서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교회가 아무 흠이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본질적인 면이다. 교회는 티가 없어야 하는데, 이것은 바로 몸에 치료되지 않은 병으로 인해 남은 흔적이 없어야 함을 가리킨다. 또한 교회가 흠이 없다는 것은 사람들이 비평하고 공개적으로 사람들의 심판을 받을지라도, 아무런 허점을 찾아낼 수 없다는 뜻이다(27절). 교회는 아무런 흠이 없을 정도로 예비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의 이러한 말을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 오늘 우리는 눈을 감고 교회를 볼 수 있을 뿐, 만일 눈을 뜨고 본다면, 교회 안에 지적할 곳이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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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음을 느낀다. 많아야 점수를 오십 점밖에 주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오십 점도 줄 수 없다고 느낄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라 교회는 또한 주름 잡힌 것이 없어야 한다. 주름은 노화 현상이다. 과거에는 당신의 얼굴이 빛났으나 이제는 주름이 잡혀 있다면, 이것은 노화 현상이다. 이천 년을 지내왔는데, 교회가 노화되지 않고 주름 잡힌 것이 없단 말인가?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큰 난제이다.
지난 오백 년 동안, 교회는 점차적으로 회복되었다. 본래 교회는 우상 숭배하는 데에 떨어져 심지어 하나님의 모양을 만들고 그리기까지 했다. 주님의 화상이 있을 뿐 아니라 마리아의 화상이 있고, 하나님의 화상도 있다. 교회가 우상을 숭배한 것은 죄를 용인한 것으로, 그 결과는 바로 타락이다. 나는 약 사오 년 정도 시간을 들여 에베소서 4장과 5장을 읽어 왔다. 읽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나 자신이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내 마음이 믿기 어렵다는 것을 시인한다. 교회가 초기에는 참으로 좋고 큰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황폐해진 것 같다. 그러나 지난 이천 년 동안 교회는 실지로 계속 진보해 왔다. 천주교 이후에 개신교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뚜렷하게 회복되어 왔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과 믿음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신 것과 성령의 부어짐 등이 모두 회복되었다. 또한 믿음의 말씀과 기도도 회복되었다. 또한 각양 은사의 회복이 있다.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몰아내는 것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1923년 이전에는 아직 교회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전도사들은 교회를 그다지 주의하지 않고 다만 부흥회를 주의했다. 한 번의 부흥회에서 이천오백 명을 구원시켰지만, 침례 받고자 하는 사람은 육십육 명밖에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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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으로 충분하고 천당에 갈 수 있는 것으로 족하다고 하면서 침례를 꼭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 제멋대로 하려고 하며, 왕국에 들어가는 문제를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께 감사드린다. 오늘 교회 문제를 관심하는 사람들이 있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계속 회복의 길을 가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럼 우리는 무엇 때문에 자신을 내맡겨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를 완전히 헌신해야 하는가? 이는 교회가 완전한 단계에 이르러야 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하나님 편에 먼저 서서 하나님의 풍성을 받을 수 있도록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만이 에베소서 4장과 5장이 실현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위해 형통한 길을 예비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바꾸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를 낮추지 않음

우리가 주님의 종으로 그분을 섬기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간직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없고,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낮출 수 없다. 어느 교파에 있는 사람이 “성경에는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분명한 말씀이 없으니, 믿는 이도 담배를 피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목사도 피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묻겠다. 이방인들까지도 담배 피우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데, 그리스도인이 담배 피우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어떻게 느끼겠는가? 어쨌든 담배를 피우는 그리스도인은 이방인만 못하다. 이것은 타락이다. 예를 들어, 오늘 진 형제가 담배를 피우고 주 형제도 피운다 하자. 또한 집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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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담배를 피운다 하자. 그럴 때 한 무리의 형제자매들은 여러분과 교통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혹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자기가 다른 면에서는 남보다 낫다고 느낄지 모른다. 형제자매들 중에 담배 피우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 하자. 당신이 그들과 왕래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일 당신이 그들과 왕래하고 교통해야 한다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리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물에 잠기는 침례를 약세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명령을 좇아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누가 그렇게 하는 것은 곧 형제자매들이 온전케 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임을 느낀다. 담배를 피우는 것과 약세를 받는 것은 하나의 비유에 불과하다. 많은 죄나 가르침을 용납하는 것은 죄를 짓는 육체에 속한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저지가 된다. 기적과 기사에 대해 두려워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또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이것들은 다 지나간 것들이고, 사도들과 함께 끝났다고 말한다면, 믿음이 없는 한 무리를 위로할 수는 있겠지만 이 세상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당신의 말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온전케 되는 길을 막아 버리게 된다. 바꾸어 말해서, 성경 안에서 성령이 정하신 것 가운데 한 가지도 임의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그분의 말씀 안에서 주님이 정하신 길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지난 백여 년 동안, 오늘날의 ‘예수 가정’ 외에 모든 소유를 팔고 주님을 따른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오늘 복음을 전할 때, 당신은 듣는 사람에게 그가 돈을 벌면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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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가? 그런데 과거에 온전한 데 이르기를 추구하고, 많은 일에서 이미 주님께 순종한 여러분이 무엇 때문에 이 한 가지를 하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많은 일들에서 승리하고 유독 이 한 가지 일에서 실패할 수 있는가?
수년 전 상해에 있을 때, 어느 교파의 한 교우가 말씀에 대해 논하려고 나를 찾아왔다. 침례에 대해 논의했는데, 그가 많은 이유를 말하면서 끝으로 많은 면의 불편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는 “이것은 주님의 정하심입니다. 우리는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로 그분께 답변해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또 발을 씻는 것에 대해 논했는데, 그는 “그럼, 여러분은 발을 씻습니까? 주일마다 떡을 떼며 주님을 기념합니까?”라고 하며 내게 답변을 요구했다. 나는 발을 씻는 실행을 하고 있고, 주일마다 떡을 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강조하여, “그렇다면 당신은 모든 소유를 팔았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물론 그렇게 했다고 대답했다. 나는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어떤 항목을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일 어떤 것을 할 수 없다면, 주님을 위해 선한 간증을 할 수 없다. 오늘 하나님은 중국에서 회복의 길을 가고 계시며, 그분의 눈은 에베소서 4장과 5장을 보고 계신다.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조금이라도 말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오늘 만일 하나님의 뜻을 모두 다 행했다면,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길을 얻으실 것이다. 나는 이상수 형제의 말을 다시 반복하겠다. “어쨌든 도랑을 깊게 파야만 물이 새 나가지 않는다. 가장 깊게 판 도랑에 물이 고인다. 물은 높은 곳으로 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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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불순종하고 느슨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고, 오직 가장 순종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대가를 지불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고려하며, 오늘날 주님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안배가 갈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 명칭을 청년회로 바꾸는 것이 낫지, 무엇 때문에 교회라는 이름을 붙이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름을 갖는다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어떤 것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만일 오늘 어떤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다면, 아마 하나님은 우리를 한쪽에 제쳐 놓으실 것이다. 우리의 실패는 작은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지연시킨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일으키기란 아주 쉬운 일이지만, 아마 몇십 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길을 열어 드려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면, 모든 것을 드려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분의 명령을 바꿀 자격이 없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재물에서 벗어나 그것으로부터 구원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셨으면, 우리는 따라야 한다. 나는 그분의 종으로서 그분의 뜻을 바꿀 만큼 담대하지 않다. 나는 그분의 종으로서, 내게는 그분의 뜻을 바꿀 자격이 없다. 그분이 어떻게 말씀하셨든지 종은 그대로 행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재물과 그분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물을 하늘로 보내야 한다.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면서 그 마음이 땅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종 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마음속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또한 아무런 에누리없이 하나님의 뜻에 이르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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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재림에 대한 교회의 예비

성숙이 요구됨

교회의 예비와 주님의 재림은 크나큰 관계를 갖고 있다. 우리가 깊이 믿는 것은, 지금은 교회가 예비할 때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수확되려면 반드시 먼저 성숙해야 한다(막 4:29). 팬톤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수확(harvest)으로 비유했다. 수확의 날은 농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밀의 상태로 결정된다. 농부는 밀이 어떤가에 상관없이 수확의 날을 정할 수 없다. 밀이 익어야만 수확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휴거의 날은 주님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교회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정한 그날은 매우 확실한데, 교회가 성숙되지 않고서는 결코 수확이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요구에 응함

교회의 성숙을 위해, 오늘 여기 있는 우리는 아주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다. 수년 동안 우리는 완전한 길로 전진하기 위해 계속 진력해 왔다. 만일 오늘 우리가 이 책임을 소홀히 한다면, 주님의 오심을 얼마나 지연시킬지 모른다. 내가 한마디 중한 말을 하겠다. “당신이 주님을 따르려면, 주님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르기 원한다고 말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약간이라도 보류한다면, 당신은 기쁨과 능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초기에 교회의 능력은 사도들의 가난함에 있었다. 오늘 교회가 타락한 이유는 그 안에 재물이 많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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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하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것을 온전히 버리고 오늘날 주님의 요구를 따른다면, 과거에 당신이 보지 못했던 영광스런 교회를 더욱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또한 어떤 것에 대하여도 의문을 갖거나 보류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그분의 복음과 그분의 뜻과 죄인의 영혼을 위해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상수 형제는 언제든지 재물이 교회에서 나갈 때만이 영혼이 세상에서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도 또한 한 차례 모든 것을 버린 것으로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계속적으로 버려야 한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류하지 않고 다 버렸다고 말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당신은 아직 많은 것을 보류하고 있을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빛이 그 부분을 비추지 않았을 따름이다. 만일 당신이 기꺼이 주님의 빛 비춤을 받아들인다면, 혹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당신을 다시 비추실 것이며, 그럼으로써 당신은 다시 버려야 할 것이다. 새로운 빛을 볼 때마다 신속하게 따라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는 성숙한 요구에 응할 수 있다.
지난 이 년 동안 내 마음이 아주 기쁜 것은, 에베소서 4, 5장의 상태가 우리에게 아주 가깝고 멀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담당하기에 어려운 멍에가 아니라 아주 쉬운 짐이다. 오늘 주님은 그 영광스런 교회를 얻고자 하신다. 단지 그 영광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고, 약간 고려함으로 인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문제이다. 만일 우리가 다 따라갈 수 있다면, 이 일은 하나님께 용이한 것이다. 오늘 이곳에 모인 모든 이가 이것을 따라갈 수 있고, 이것을 위해 필사적으로 드려지기 원한다. 우리 모두가 주님께 이렇게 간구하기 바란다.
 “나를 지나쳐 가지 마옵시고, 나를 남겨 놓지 마옵소서. 당신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참예케 하신다면, 나에게도 분깃을 남겨 두옵소서. 당신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나를 잊지 않으시기 원합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이 따라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듯이, 저도 은혜로 대하소서.”


모든 것을 내맡기고 동역하여 하나님을 섬김

우리가 말한 모든 것을 내맡김은 당신을 가난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가난과 다르다. 내맡기는 것은 우리의 재물이 하나님을 위할 뿐 아니라 시간과 장래도 하나님을 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철저하고 가장 값싼 헌신은 바로 마음의 헌신이다. 갈망만 있는 헌신은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당신의 시간과 몸과 장래를 드리지 않았다면, 당신이 모든 것을 드렸다고 말할지라도, 사실상 모든 것은 여전히 당신 수중에 있는 것이다. 여러분 젊은이들에 대하여, 과거 여러분의 헌신은 여러분의 학업이나 직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당신이 모든 것을 내맡겼다면, 한 학교에 주님을 믿는 사람이 없을 경우, 교회는 다섯이나 열 명의 형제자매들을 당신과 함께 그 학교로 보낼 수 있다. 여러분은 단지 거기서 공부를 잘할 뿐 아니라 더욱이 사람의 영혼을 교회 안으로 인도해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한다면, 학기말에 아마 열다섯 명이 증가할 것이고, 심지어 백 명까지도 구원을 받을 것이다. 상해 교회를 예로 든다면, 자신을 내놓은 많은 형제자매들 가운데 남경 중앙 대학에 공부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다. 앞으로 모든 헌신한 사람은 앞으로의 길과 직업을 바꾸어야 한다. 당신이 학교를 다니는 목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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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공부하는 것은 겸해서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 외에, 우리가 자신을 맡기고 하나님을 섬길 때, 동역 가운데서 하고 단독적으로 행하지 않기를 배워야 한다. 특히 직업에 있어서는 안배가 필요하다. 혹, 한 사람밖에 없는 회사에는 다른 사람을 더 추가할 수도 있다. 당신은 그 회사에서 돈을 얼마만큼 벌 수 있느냐를 물을 것이 아니라 복음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당신은 회사 전 직원을 복음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고, 두 사람이 동역하여 전파해야 한다. 자신을 내맡긴 사람이 직장을 갖는 목적은 가정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우리의 참된 직업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열 살부터 여든 살까지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주님 섬기는 것을 중심 삼아야 한다. 나는 교회 전체가 이렇게 동원된다면, 복음이 분명 홍콩 전역, 심지어 중국 각지에 널리 전파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자신을 내맡기는 데 있어서, 당신이 주일에 얼마를 헌금함에 넣고 당신의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우리의 앞길과 직업과 동역에 모두 관련된다.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7장 이후로 교회에 큰 핍박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당시 교회는 성령의 부어짐으로 갓 산출되었었다. 원래 큰 핍박이 일어날 때, 믿는 이들이 흩어진다면 모든 사람이 다 흩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흩어지지 않고 오직 제자들만이 흩어졌으며, 또한 그들은 흩어지면서 복음을 전했다(8:1-4). 이것은 교회의 안배가 있는 것과 사도가 남아 있는 것과 제자들이 흩어진 것이 모두 복음을 위한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사도행전 7장 이전에는 내맡기는 것이 있고, 8장에는 안배된 복음 전파가 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1장에 올 때, 예루살렘의 믿는 이의 수는 몇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것이 바로 교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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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위에서 교회는 바로 복음을 위해 있다. 그러므로 어떤 형제자매도 제멋대로 생활할 수 없고, 제멋대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앞으로 우리 모든 사람은 자신을 내맡겨야 하고, 동역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 형제는 본래 신의(信誼) 염색 공장에서 공장장이었는데, 어느 날 형제들이 그에게 “우리 모두는 당신이 이 직위에 계속 있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그도 기도한 후에 마땅히 직위를 내놓아야 한다고 느꼈다. 과거에 공장장으로 있을 때에는, 대우가 아주 좋았었다. 지금 월급은 과거의 오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복음에 아주 유익하다. 그는 형제자매들에게 아주 좋은 간증이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공장을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내맡기려면 다음의 기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즉, 앞으로 당신은 단독적으로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고 형제들과 함께 동역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당신의 모든 것을 처리하고 내놓아야 할 뿐 아니라, 복음이 당신에게서 들고 나갈 수 있도록 당신의 장래와 앞길 등도 처리받고 내놓기를 원해야 한다. 과거에 당신은 기쁠 때는 사람을 보기만 해도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냉담할 때는 심지어 형제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당신은 봉사를 할 때나 안 할 때나 다 개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이 자신을 내맡겼으므로 결코 단독적으로 행동할 수 없고, 동역 가운데서 봉사하기를 자원해야 한다.
어떤 형제자매는 천주교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내가 주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권하겠는데, 부정한 것에 더럽혀지지 않도록(고후 6:17) 거기서 나오라(계 18:4). 그러나 만일 적지 않은 형제자매들이 함께 있고, 영 안에서 모두 강하며, 그 안에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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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시킬 부담을 갖는 것에 대해 나는 달리 의견이 없다. 그러나 언젠가 여러분은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공부만 잘하면 되고, 성경 읽고 기도하며 집회를 가질 수 있으면 되지, 무슨 전학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지 말라. 여러분이 자신을 내맡겼다면, 여러분은 단지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할 것이 아니라 계획성 있게 하나님의 뜻과 안배를 알아야 하고, 또한 형제자매들과 동역 가운데서 봉사해야 한다.

온 교회가 복음을 전파함

만일 자신을 내맡기고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사용한다면, 교회는 대를 이어갈 수 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결코 당신은 당신의 말을, 나는 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을 내놓고 마음을 같이하여 동역 가운데서 기도하며 일을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모든 문제는 쉬워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먼저 우리는 대우가 어떠냐고 물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복음 전할 기회는 어떠냐고 묻기 바란다. 여러분 모두가 복음을 위해 드리고, 이 일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교회 전체가 장엄하고 정중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와 우리가 과거에 사람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음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 일에 대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고 계획성 있게 처리하면서, 복음에 대해서는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옳지 않다. 과거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는 것만을 돌보았으나, 앞으로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복음의 유익을 누리게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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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전에 중국에서는 외국 선교사들만이 복음을 전했었다. 그러나 십 년 전에 우리는 이미 교회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필요성과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내내 일부 사람들이 나왔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다. 오늘 우리 모두가 모든 것을 바치고 복음을 위해 나올 필요가 있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교회 전체가 복음 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서너 사람이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온 교회가 전도하는 것이다. 그럴 때 복음은 중국 전역에 전파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의 영혼을 얻을 수 있다면, 모든 지출은 손해가 아니다. 왜냐하면 온 세상도 한 영혼의 가치와 비길 수 없기 때문이다(마 16:26).
앞으로 우리의 모든 직업과 사역의 안배는 모두 복음과 교회를 중심 삼아야 한다. 복음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대가도 가치 있는 것이다. 한(韓) 자매님은 본래 높은 지위에 있는 간호원이었는데, 이번에 익양으로 갔다. 또한 내과 의사 유 형제도 익양으로 갔다. 사람이 볼 때, 익양에 간 것은 이렇게 좋은 간호사와 의사를 낭비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조금도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복음을 위하고 영혼을 구하는 사람이 좋은 간호사요 좋은 의사이다. 그렇지 않고 사람들의 몸은 잘 치료하였지만, 그들의 영혼이 멸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무엇이 좋다는 말인가?
우리는 여러분에게 먼저 모든 물건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앞길과 직업과 일을 다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여러분은 나에게 내놓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나도 이 책임을 질 수 없다. 당신은 복음을 위해 내놓아야 한다. 어쩌면 십 년이나 이십 년 후에 책임 형제님이 당신에게 와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홍콩을 떠나 다른 지방으로 가라고 말할 것이다. 당신은 ‘아멘’ 하며, “교회 전체의 느낌이 그렇다면 가기 원합니다.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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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찾아와서 제가 그곳에 가기를 원한다 해도 가기 원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많은 일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교회는 결코 느슨할 수 없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분이 이곳에서 홍콩을 위할 때, 나중에 타지를 위할 수 있게 된다. 어느 날 여러분은 한 면으로 사람들을 내륙으로 보낼 수 있고, 또 한 면으로는 동남 아시아 전체가 여러분 앞에 놓여 있다. 하나님이 상해에서 이 길로 통행하실 수 있었으므로, 홍콩에서도 통행되어야 한다. 항주에서 내맡기는 일이 있었기에 익양이 일어났는데, 홍콩에서 자신을 내맡기는 일이 있다면, 동남 아시아 전체에 어떤 효과가 있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 가장 실제적인 것은 대집회 장소의 필요이다. 여러분은 주일 집회를 두 번으로 나누면 집회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분량과 관계 있다. 만일 이곳 집회소가 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사람들을 붙여 주셔서 집회소가 가득 차게 될 것임을 믿어야 한다. 여러분 가운데 한 집회소가 생기면, 잇따라 다섯 개, 아홉 개의 집회가 생길 것이다. 자신을 내맡길 때 당신은 하나님이 어떠한 축복을 주실 것인지를 보게 될 것이다. 아마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얼마나 큰 제한이 되는지를 모를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흘러나올 때, 축복이 교회 가운데 흐르게 되고 모든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교회 전체가 섬길 수 있도록 우리는 직업에 사용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보류한다면, 교회의 기도가 철저하지 못하고 영혼이 들어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필사적이라면, 하나님은 길을 얻으실 것이다.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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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뚫고 나가야 한다.
여러분이 나를 용서해 주기 바라고, 이러한 말이 여러분에게 상처받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바란다. 여러분은 함께 많이 기도해야 한다. 주님이 여러분 개개인을 불안하게 하고 그냥 지나쳐 가시지 않기 바란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제멋대로 행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이것을 하고 어느 단계에까지 행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 우리 전 존재와 모든 것을 복음을 위해 바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격려해 주시기를 구한다. 나는 어느 날 교회가 당시 사도들의 상태에 이르고, 어느 날 주님의 오심이 가까웠다는 것을 보여 주게 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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