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누림
요 14:2 나의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해 주었을 것입니다. 내가 가서 여러분을 위하여 한 곳을 예비하겠습니다.
계 21:2-3 또 내가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하나님에게서 내려오는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또 나는 보좌에서 나오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장막을 치실 것이다. …”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재생산이다. 이것에 대해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어 살아 있는 소망을 갖도록 하셨으며”라고 말한다. …그분의 믿는 이들인 우리는 그분과 함께 부활했다.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신성한 생명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여 우리를 생명과 본성에서 그분과 동일한 그분의 재생산이 되게 하셨다. 그분은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알이셨다. 그분은 부활 안에서 자라 나오셨을 때 많은 밀알들을 산출하셨다. 많은 밀알들은 그분의 재생산 혹은 그분의 증가이며, 이 재생산은 그분의 번식이다. 그분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증가하셨고 번식하셨다. 이러한 번식은 교회를 산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분의 재생산인 교회를 산출하셨다.
오늘의 읽을 말씀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에서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믿는 이들에게 주신 말씀 안에, 이 영광에 관한 구체적이고 단체적인 세 가지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14장 2절에 있는 아버지의 집(교회)과, 15장 1절부터 5절까지에 있는 포도나무의 가지들(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들)과, 16장 21절에 있는 새로 태어난 한 단체의 사람(새사람)이다. 이 세 가지 모두 교회를 가리키며, 교회가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에 의하여 산출된 영광스러운 증가임을 보여 준다. 이 영광스러운 증가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영광스럽게 되신다. 하나님 아버지도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되심으로 말미암아 영광스럽게 되시는데, 이것은 바로 교회를 통하여 충만히 표현되시는 것이다.
히브리어 ‘메시아’와 동일한 단어인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받으신 분’을 의미한다. 로마서는 사복음서에 계시되었을 때는 개인적이셨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도행전에 계시되어 있는 단체적인 그리스도가 되실 수 있었는지, 즉 모든 믿는 이가 어떻게 단체적으로 그리스도 자신을 구성하는지를 설명한다. 바울은 성경 안에 있는 사실들과 성령 안에서 체험한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약 경륜은 죄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과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조성함으로써 그분을 표현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로마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을 전반적으로 설명해 줄 뿐만 아니라 또 상세하게 설명해 주면서 하나님의 목표에 대한 완전한 정의를 제시한다.
우리가 새로운 출생, 곧 신성한 출생을 가진 것으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자. 이 새로운 출생 안에는 약점들이 없다. 오직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이 있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형태 짓고 그분과 같은 형상이 되게 하는 신성한 법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형태를 짓는 것은 생명의 자람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은 생명의 법이 오직 생명이 자라는 만큼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법은 죄로부터 우리를 통제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생명의 법이 죄의 영역 안에 있지 않고 죄와 세상과 육체와 자아가 없는 신성한 생명의 영역 안에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자랄 때 이 법은 주로 우리를 통제하거나 바로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맏아들의 형상으로 형태 짓고 그분과 같은 형상이 되게 하기 위해 작용한다. 결국 생명의 법의 기능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성숙한 아들들이 될 것이며, 하나님은 그분의 우주적이고 단체적인 표현을 얻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표는 그분 자신의 단체적인 표현을 얻는 것이었다. 이 목표에 따라 사람은 그분의 증거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이 점에서 아담이 하나님을 실망시켰으므로, 예수님께서 아담의 위치와 기능을 취하기 위해 둘째 사람으로서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아 있는 인격이 하나님의 표현과 형상과 증거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의 증거, 즉 예수님의 표현이다. 성경이 첫 번째 장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성경의 마지막 두 장에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건축물인 새 예루살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