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노예 2013-04-09 , 조회 (213)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아침의 누림
슥 3:9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4:10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
계 5:6 또 내가 보니, …갓 죽음을 당하신 것 같은 한 어린양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 어린양은 …일곱 눈을 가지셨는데, 이것은 온 땅에 보내어지신 하나님의 일곱 영입니다.
스가랴서 4장 10절에서 여호와의 눈인 ‘이 일곱’은 3장 9절에 나오는 돌에 있는 일곱 눈이다. 돌의 일곱 눈은 여호와의 일곱 눈이며, 또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일곱 눈이다. 따라서 돌과 여호와와 어린양은 하나이다. 그리스도는 구속하는 어린양과 건축하는 돌이시고, 또한 여호와이시다. 그리스도의 일곱 눈은 하나님의 일곱 영인데, 이것은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구분되실지라도 분리되지 않으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의 눈이 본질적으로 그 사람과 하나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와 하나이시다. 그리스도의 일곱 눈의 기능은 우주에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고 그리스도의 온 존재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 안으로 옮겨 붓고 주입하기 위해서 관찰하고 찾는 것이다.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고, 이 영은 또한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이시다. 이 영은 생명의 영이시다. 따라서 일곱 영의 기능은 하나님의 영원한 처소인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신성한 생명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일곱 등잔은 어린양이시자 돌이신 그리스도의 일곱 눈이다. 스가랴서 3장은 건축하는 돌이신 그리스도께 일곱 눈이 있다고 말하며, 요한계시록 5장은 구속하는 어린양께 일곱 눈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린양이 돌이며 돌이 어린양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어린양은 구속을 위해 있고, 돌은 건축을 위해 있다. 구속과 건축을 위해 그리스도는 일곱 눈을 갖고 계신다.
등잔대인 교회에는 일곱 등잔이 있는데, 이 일곱 등잔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여기에 더하여 잠언 20장 27절은 “사람의 영은 여호와의 등이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는 두 개의 등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영과 우리 사람의 영이다. 우리의 작은 등 안에 더 강한 등이 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우리의 영은 깨진 등이었다. 우리가 회개한 후 이 등은 회복되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매일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빛이 증가한다. 거듭남으로 이 등은 또한 그 안에 들어온 새로운 등을 갖게 되는데, 곧 하나님의 영이다. 이 두 개의 등으로 인하여 우리 안에는 더 밝은 비춤이 있다. 이 둘은 하나가 되었다. 왜냐하면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한 영”이기 때문이다.
잠언 20장 27절은 계속해서 사람의 영이 사람의 깊은 속을 살핀다고 말한다. 다비역의 각주는 ‘혼의 모든 방들’을 살핀다고 말한다. …영은 여러분의 감정과 생각과 의지의 방을 살피고 있다. 비록 우리 모두가 우리 안에 순금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우리 혼의 속 부분들은 열려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감정을 열기를 두려워한다. 우리가 기도 중에 어떤 부분에 이를 때, 우리는 기꺼이 그분께 어떤 방을 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을 닫아 버린다. 우리는 신실하게 모든 집회에 참석하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안에 닫힌 문이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심지어 주님을 사랑하고 여러 부분에 대가를 지불했을지라도, 여전히 주님께 그 문을 열지 못하겠다고 주님께 말한다.
우리의 영이 거듭나는 것은 간단하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주님을 받아들이면, 이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 혼의 변화는 쉽지 않다. 변화를 위해서는 주님의 등이 우리 속의 모든 방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주님께 내적인 모든 방을 열어 드리는 사람들은 지극히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