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누림
눅 16:13 그 어느 집 하인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쪽을 미워하고 저쪽을 사랑하거나, 이쪽을 받들고 저쪽을 멸시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마몬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히 13:5 여러분의 삶의 방식은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고,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직접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결코 너를 버려두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3절에서 ‘섬기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노예로 섬기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주님은 그분을 섬기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며, 그분께 충성을 다하고, 그분께 우리 자신 전체를 드리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암시하셨다. 우리가 재물의 사로잡고 강탈하는 손에서 해방될 때, 우리는 주님을 전적이고도 완전히 섬길 수 있다. 여기에서 주님은 그분을 섬기려면 유혹하고 속이는 불의의 재물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누가복음 16장 13절은 재물이 하나님과 경쟁하며 하나님과 겨루고 있음을 보여 준다. 재물은 하나님과 경쟁하기 때문에 악하다. 우리 편에서,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나 재물 중 어느 한 편을 섬긴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오늘의 읽을 말씀
마태복음 6장 24절은 “그 누구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쪽을 미워하고 저쪽을 사랑하거나, 혹 이쪽을 받들고 저쪽을 멸시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마몬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마몬’은 아람어로 부나 재물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마몬은 하나님과 대립되는데, 이것은 부나 재물이 하나님의 백성을 강탈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대적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행정 아래에 있다면, 우리는 돈이나 물질적인 소유물을 능히 다스릴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를 통치하거나 점령하거나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그것들을 정복하며 다스릴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부활의 문제를 다룬다. 그런 다음 16장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매주 첫날에 헌금을 모으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매주 첫날은 부활을 의미한다. 이는 그날이 부활의 날이기 때문이다.
헌금을 매주 첫날에 드린다는 사실은 믿는 이들이 타고난 생명이 아닌 부활 안에서 재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부요한 세상적인 사람은 고액의 수표를 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돈을 기부할 때 종종 그들 자신의 이름을 내거나 자신이 한 일을 광고한다. 이것은 부활 안에서 드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돈이나 물질적인 것들을 드릴 때 부활 안에 있어야 한다. 이렇게 드리는 것은 우리가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행정 아래 있으며 물질적인 부에 점유되는 것을 이겼음을 가리킨다. 그 결과 하나님의 행정이 우리 가운데서 수행될 길을 갖게 될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게 되면, 그의 온 마음, 심지어 그의 온 존재가 그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것에 빠져 사로잡히게 된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교회가 승리하여 영광이 가득한 날이 오게 될 것인가, 아니면 하락하여 비통한 날들이 오게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들인가에 달려 있다.
주 예수님은 영 안에서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많은 사람이 영 안에서 가난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탐낸다. 사람들은 재물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재물을 탐내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아직 재물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에서 부자가 되고 싶고 돈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찔렀다고 말한다. 이 말은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도 재물의 세력 아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늘 나는 열분 모두가 참으로 재물의 세력에서 온전히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 한 걸음씩 전진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죄를 미워하듯이 재물을 미워해야 한다. …우리의 태도는 “은과 금은 나에게 없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을 주겠으니,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십시오.”라고 말한 사도 베드로와 같아야 한다. 초기 교회에는 은과 금이 없었고, 오직 주 예수님의 이름만 있었다. 오늘 우리는 최초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