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양식 2012겨울훈련 다니엘 스가랴 11주 4일
오늘의 양식
주님의 노예 2013-04-16 , 조회 (19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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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누림

 

10:41-42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여, 마르다여, 그대가 많은 일로 염려하며 애쓰지만,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선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직 주님을 믿기 전에는 그의 모든 가치관의 순서가 거꾸로 되어있다. 그러나 사람이 일단 구원을 받으면 가치관이 변하게 된다. 그는 이전에 귀하게 여겼던 것을 더 이상 귀하게 여기지 않고, 이전에 멸시했던 것을 이제는 보배롭게 여긴다. 이것을 일컬어서 가치관의 변화라고 한다. 무릇 가치 판단에 변화가 없으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성경은 가치관의 변화에 대해 많이 말하고 있다. 가치관의 변화에 대한 이러한 말씀은 갓 구원받은 형제자매들에게 빛이 될 수 있으며,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보게 할 수 있다.

 

오늘의 읽을 말씀

시편 11822절은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라고 말한다. 유대인 건축자들은 이 돌을 거절했지만, 하나님은 이 돌을 귀중하게 보시고 그분의 구원의 건축을 위한 모퉁이 돌로 사용하셨다. 이 두 가지 가치 판단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 또한 반드시 갓 구원받은 형제자매들을 이렇게 가치관이 바뀔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이전에는 가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히브리서 1124절부터 26절까지는 쾌락과 고난에 대한 관념의 전환을 보여 준다. 모세는 여기에서 다른 한 가지를 보았는데, 그것은 이집트에 있는 모든 누림이 다만 죄의 쾌락이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당하는 것을 큰 재물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겼다. 모세는 죄의 쾌락을 누릴 수 있었는데, 이는 그가 바로의 딸의 아들이었으며, 온 땅에서 가장 부요하고 권세 있는 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바로의 딸의 아들이라는 칭함 받기를 거절했는데,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는 것을 이집트의 모든 보화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분명한 가치관의 변화가 있었다. 그는 어떠한 고난과 능욕도 다 받기를 원했는데, 이것은 그가 보이지 않는 보상이 크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빌립보서 37절과 8절은 그러나 나에게 유익이 되었던 것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또한 해로운 것으로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탁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울 역시 그의 가치관이 변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이전에 자신이 유익하게 여기던 것들을 지금은 그리스도 때문에 다 해로운 것으로 여겼다. 바울은 왜 유익하던 것을 버렸으며, 왜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길 수 있었는가? 그것은 바로 그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탁월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님과 왕으로 세우신 그리스도를 가장 귀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것을 버렸으며 또한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나는 가치관의 변화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레미야서 1519절의 말씀으로 결론을 맺고자 한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귀한 것과 천한 것을 분별하면 하나님의 입이 될 수 있다고 말해 준다. 만일 오늘 여러분과 내가 가치의 문제를 분별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고 사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귀한 것과 천한 것을 분별하여 그분의 입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가치관의 변화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가치관이 철저하게 변하고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주시기를 바란다.

베드로전서 27절에서 베드로는 그러므로 그분은 믿는 여러분에게는 보배이시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지만, 모퉁이의 머리 돌이 된 돌이시며라고 말한다. ‘보배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존귀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 돌로, 심지어 존귀를 얻은 모퉁이 돌로 선택하신 그리스도 자신이 믿는 이들에게 보배이시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 그분은 배척받고 멸시받은 돌이시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움은 상태의 문제일 뿐 아니라 위치의 문제이다. 그리스도께서 보배로우시다는 것은 그분께서 존귀를 얻으셨으며 존귀한 위치를 차지하셨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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