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누림
고전 1:9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통 안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엡 4:25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된 것을 벗어 버리고, 각자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가 서로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통의 실재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론 위치적으로 우리 모두는 교통 안에 있다. 그러나 매일의 생활 가운데 교통의 실재 안에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우리가 이름뿐인 교통은 가졌지만 실지적인 교통은 갖지 못했을 수 있다. 나는 이 교통을 훈련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하루 종일 매시간 이 교통을 완벽하게 유지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실지적으로 이 교통 안에 있지않다면 우리는 그 영 밖에, 삼일 하나님 밖에, 신성한 생명 밖에 있는 것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죄 가운데 거하고 죄 안에서 죽어 있던 죄인이었다. 우리는 생명의 교통에 참여하지 못했다. 어느 날 누군가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전했고 우리는 주 예수님을 믿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신성한 교통 안으로 이끌렸다. 신성한 교통에 대한 처음 체험에는 매우 두드러진 두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누군가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혼자서 직접 주님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먼저 복음을 들었고 그다음에 믿었다. 둘째, 소식을 전한 사람, 혹은 복음을 전파한 사람과 소식을 받아들이고 구원받은 사람 사이에는 거의 예외 없이 깊은 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우리와 주님과의 수직적인 교통은 우리와 다른 이들과의 수평적인 교통에 영향을 받는다. 만약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합당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수직적으로 주님과도 좋은 교통을 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신성한 교통은 한 교통이기 때문이다. 매일 우리는 수직적으로, 수평적으로 이 신성한 교통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 중 대부분은 매일 수직적인 방면에서 먼저 교통을 시작하고 그다음에 수평적인 교통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우리의 경험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지 않다. …만약 저녁에 아내나 남편, 혹은 룸메이트와 말다툼을 했다면 아침에 주님과 수직적인 교통을 시작하기가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우리는 영적으로 건강하기 위해 반드시 수직적인 방면과 수평적인 방면에서 다 교통을 유지해야 한다.
에베소서 4장 25절에서 …‘이웃’이라는 단어는 형제자매들을 의미한다. 신성한 교통 안에 유지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다른 믿는 이들과 합당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자주 우리는 믿는 이들과 수평적으로 교통하지 않을 때 주님과의 수직적인 교통도 가질 수 없음을 체험한다.
합당한 생활을 하고 승리하는 성도는 하루 종일 수직적으로, 또 수평적으로 신성한 교통 안에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과 더 많이 교통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성도들과 더 많이 교통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 인해 주님께 감사해야 하며 이들과 교통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형제자매들은 심지어 매일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실지적인 문제까지 서로 철저하게 교통해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읽었던 메시지나 기타 영적 활동에 대해서만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교통하면 된다고 느낄지 모른다. 물론 이것도 교통의 한 방면이다. 하지만 교통은 많은 실지적인 문제도 다루어야 한다. 나는 우리 가운데 가장 크게 부족한 것이 교통임을 보게 되었다. 교통하는 습관이 부족한 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교통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교통할 때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교통에서 멀어진다면 혹은 다른 믿는 이들과의 교통을 멈춘다면 주님은 멀리 떨어져 계시게 된다.
우리는 가능한 많이 우리의 동료 믿는 이들과 교통을 가지려고 해야 한다. 이러한 신성한 교통은 우리를 교정할 뿐 아니라, 또한 우리를 빚어주고 심지어 우리를 재조성한다. 이러한 교통은 신성한 조성 성분을 우리의 영적 존재 안으로 가져와 우리 존재 안에 변화를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