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누림
행 2:4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통 안에 꾸준히 머물며, 떡을 떼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꾸준히 계속하였다.
요일 1:4-5 우리가 이것을 쓰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듣고서 여러분에게 전해 주는 메시지는 바로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분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3절에서 교통은 개인적인 이익을 버리고 어떤 공통된 목적을 위하여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교통을 갖는 것, 사도들과의 교통 안에 있는 것, 사도들과의 교통 안에서 삼일 하나님과 교통을 갖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이익을 제쳐 놓고서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도들과 삼일 하나님께 연결되는 것이다. …우리가 삼일 하나님에 대한 사도들의 누림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도들과 모든 믿는 이에게 공통된 그분의 신성한 목적을 위해 사도들과 삼일 하나님께 연결되는 것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신성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의 실재이다. 수세기 동안 주님은 교통의 부족으로 인해 좌절 당하셨다.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서 주 예수님은 “그렇다. 내가 속히 가겠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오시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믿는 이들이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이며 자기 의견을 고집하고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다스리는 유일한 것은 신성한 교통이다. 우리는 이 교통 안에서 제한받는다. 신성한 교통 안에 제한받는 것에 대해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 안에 보존되고 사역의 일은 계속 전진하게 된다. 교통에서 벗어날 때 모든 것이 끝난다. 모든 것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교통이다. 교통하기를 배운다면 우리는 특별히 주님의 일에서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생명의 교통은 다만 신성한 생명의 흐름이다.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체험하는 합당한 길은 우리 안에 이러한 흐름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교통 안에 있는지, 그리스도에 의해 살고 있는지,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있는지를 아는 길은 다만 우리 안에 흐름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에게 흐름이 없거나 흐름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께 부르짖어야 하고 그분께 열어 드려야 한다.
신성한 생명의 흐름이 있을 때 우리는 기쁨을 갖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이 가득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들은 항상 기쁨이 충만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때로 우리는 매우 기쁨이 충만하여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또는 “아멘”이라고 외치지 않으면 터져 버릴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안에 신성한 생명의 흐름과 끓어오름이 충만하기 때문에 조용한 대신 외치고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딘다. 여러분이 안에 흐르고 있는 것을 표현하면 할수록 생명의 교통이 여러분 안에 더 많이 흐른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흐름과 빛 비춤을 주의한다면 그 밖에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집회에 참석하고 성도들과 교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활동이 사실상 흐름과 빛 비춤의 결과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동시에 이 모든 실행은 더 많은 흐름과 빛을 체험하게 하는 도구이자 수단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의해 살고 그리스도 안에 살며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취하는 비결은 내적인 흐름과 내적인 빛 비춤을 항상 주의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기본적인 사항이다.
여러분에게 내적인 흐름과 빛 비춤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분명한 표시이므로,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에 의해 다루심을 받아야 한다.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성도들이 매일 이 문제를 주의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살아 있고 빛나며 흐름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겠는가! 그러면 우리가 집회에 올 때마다 각 사람이 그들의 존재 안에 흐르며 빛나는 무언가를 지니고 올 것이다. 생명의 교통과 생명의 빛을 누리는 것이 우리의 매일매일 그리고 순간순간의 체험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