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 양식 2013 봄장로 집회 1주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서 생활함 개요 및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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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노예 2013-05-19 , 조회 (31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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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서 생활함

 

성경: 요일 1:2-7, 9

 

.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교통의 수직적인 방면과 수평적인 방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A. 교통은 신성한 생명을 받아 소유하고 있는 모든 믿는 이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흐름이다. 이것은 새 예루살렘 안에 있는 생명수의 강의 흐름으로 묘사된다.

B. 요한일서 12절과 3, 6절과 7절은 신성한 생명의 교통에는 수직적인 방면과 수평적인 방면 두 가지가 있음을 계시한다.

1. 요한일서 12절과 3절은 “(이 생명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난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는 보았으며, 이제 증언하며 여러분에게 전해 줍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교통을 갖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통은 아버지와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a. 교통의 수직적인 방면은 우리와 삼일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리키며, 교통의 수평적인 방면은 우리 믿는 이들 서로 간의 교통을 가리킨다.

b. 사도들의 체험은 처음에는 수직적이었지만, 사도들이 신성한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을 때 신성한 교통의 수평적인 방면을 체험하게 되었다.

2. 요한일서 16절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을 갖는다고 말하면서 어둠 가운데 행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통의 수직적인 방면이다.

3. 요한일서 17절은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안에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안에서 행하면, 우리는 서로 교통을 갖게 되고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통의 수평적인 방면이다.

C. 우리는 신성한 교통의 수직적인 방면과 수평적인 방면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1. 우리가 주님과 합당한 교통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의 동료 믿는 이들과 교통을 갖기가 어렵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동료 믿는 이들과 합당한 교통을 갖지 못한다면 주님과 교통을 갖기가 어렵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신성한 교통은 한 교통이기 때문이다.

2. 우리가 실지적으로 이 교통 안에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영 밖에, 삼일 하나님 밖에, 신성한 생명 밖에 있는 것이다.

3. 우리는 가능한 많이 우리의 동료 믿는 이들과 교통을 가지려고 해야 한다. 이러한 신성한 교통은 우리를 교정할 뿐 아니라, 또한 우리를 빚어주고 심지어 우리를 재조성한다. 이러한 교통은 신성한 조성성분을 우리의 영적 존재 안으로 가져와 우리 존재 안에 변화를 일으킨다.

4. 교통은 또한 개인적인 이익을 버리고 어떤 공통된 목적을 위하여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신성한 교통 안에서 사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이익을 제쳐 놓고서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도들과 삼일 하나님께 연결되는 것이다.

D. 신성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의 실재이다.

1. 주님께서 아직 다시 오지 않으신 이유는 믿는 이들이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이며 자기 의견을 고집하고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신성한 교통 안에 제한받는 것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 안에 보존되고 사역의 일은 계속 전진하게 된다. 모든 것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교통이다.

E. 생명의 교통, 곧 생명의 내적인 흐름은 기쁨을 가져오고, 또한 생명의 빛의 내적인 비춤, 곧 내적인 다스림을 가져온다.

. 우리는 두 영에 의해 신성한 교통의 두 방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A. 우리는 신성한 영, 곧 성령에 의해 신성한 교통의 수직적인 방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1. 그 영 자신이 교통이신데, 이것은 교통이 그 영의 흐름,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류가 다만 전기 자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전류는 움직이는 전기이다.

2. 마찬가지로, 고린도후서 1314절에 언급된 성령의 교통은 움직이시는 그 영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가 누린 그리스도 자신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맛본 하나님 자신이며, 그 영의 교통은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는 그 영 자신이다.

B. 우리는 사람의 영에 의해 신성한 교통의 수평적인 방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1. 우리가 서로서로 수평적으로 참된 교통을 갖고자 한다면, 우리의 영을 훈련해야 한다.

2. 우리가 우리의 영을 훈련한다면 결코 세상적인 방식으로 말하거나, 성도들이나 교회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실수나 실패에 관해 험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영을 훈련할 때 우리의 대화의 본성이 바뀔 것인데, 이것은 우리의 영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C. 수평적인 교통은 수직적인 교통과 함께 짜인다. 이렇게 함께 짜인 교통이 참된 교통이다.

1. 우리가 우리의 영을 훈련함으로써 진정으로 서로 교통할 때,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을 접촉하게 된다. 이것은 교통의 수직적인 방면과 수평적인 방면이 서로 얼마나 긴밀히 연관되는지를 보여 준다.

2. 우리가 성도들과 갖는 수평적인 교통은 우리를 주님과의 수직적인 교통 안으로 이끌어 준다. 그다음 우리가 주님과 갖는 수직적인 교통은 우리를 성도들과의 수평적인 교통 안으로 이끌어 준다.

D. 신성한 교통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모든 것이다.

1. 전류가 전기 자체이듯이, 신성한 생명의 교통, 곧 신성한 생명의 흐름은 신성한 생명 자체이다.

2.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신성한 생명의 교통의 생활이다.

3. 사도들은 믿는 이들과 교통하기를 원했는데, 이것은 수평적인 교통이다. 그런 다음 사도들은 그들의 교통이 삼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수직적인 교통이다.

4. 우리는 수직적으로 주님과 계속 교통해야 하며, 동시에 수평적으로 서로와 계속 교통해야 한다.

5. 결국 이러한 신성한 교통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짜이신다. 이렇게 함께 짜이는 것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다.

6. 우리는 교통이 사라질 때 하나님도 사라지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교통으로서 우리에게 오신다.

. 우리의 교통은 십자가를 통해 깊어진다.

A. 온 우주 안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모든 장애물을 없애 주는 오직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십자가이다.

B. 한국복음서원 찬송가 5336절은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로 인해 교통 깊어져 성령 역사 인해 새로워지네”. 그 영과 십자가가 없다면 우리는 참된 교통을 가질 수 없다.

C. 한국복음서원 찬송가 227장의 첫 행은 먼저 피로 씻고서 관유로 적셔지네라고 말한다.

1. 피는 십자가의 확실한 표징이고, 관유는 모든 것을 포함한 복합되신 영의 예표이다.

2. 이 두 가지 요소는 레위기 146절부터 10절까지와 14절부터 18절까지에 언급된다. 이 부분의 말씀에서 우리는 더러운 죄인을 상징하는 나병 환자가 먼저는 피에 의해 정결하게 되어야 하고, 그런 다음 그 피의 기반 위에 기름, 곧 관유가 발라진다는 것을 본다.

a. 피와 관유는 나병 환자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라진다. 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상징하고, 손은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일들을 하는 것을 상징하며, 발은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취하는 것을 상징한다.

b. 영적으로 말해서, 나병은 잘못 듣는 것과 잘못 일하는 것과 잘못 행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우리는 나병 환자이기 때문에, 먼저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피로 정결하게 되어야 하고, 그런 다음 그 피에 근거하여 바르는 기름이 필요하다.

c.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결하게 하는 피에 근거한 그 영의 신성한 교통에 의해 정결하게 된다.

D. 신성한 교통은 삼일 하나님을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인 우리 안으로 분배하는 것으로서, 우리와 하나님을 하나로 만들어 준다. 교통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공동 참여를 의미하고, 이러한 공동 참여는 하나를 산출한다.

1. 사실상 교통은 바로 하나(oneness)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통을 나누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을 나누고 있을 때에, 이러한 교통이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2. 온 우주 안에는 큰 하나가 있는데, 이 큰 하나가 신성한 교통이다.

3. 주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이시듯이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기를 갈망하신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은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기도하셨다. 교회의 하나는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하나의 일부이다.

4. 결국 교회와 신성한 삼일성은 교통 안에서 하나이다.

E. 우리가 철저히 신성한 교통 안에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를 체험해야 한다.

1. 우리 안에는 다른 형제를 향해 어떤 장애물이 있기 때문에, 우리와 그 형제의 교통은 그다지 철저하지 못하다. 우리 안에 신성한 교통의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성도들을 만나기를 피할 수도 있다.

2. 우리의 체험 안에 십자가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교통은 철저하지 못하고 우리 안에는 장애물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3. 한국복음서원 찬송가 464장은 죽음 없이는 생명이 없네라고 말한다. 이것은 십자가 없이는 그리스도도 없네를 의미하며,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없이는 성령이 없네, 성령이 없이는 교통이 없네를 의미한다.

4. 마태복음 1624절에서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자기 십자가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우리 각 사람을 십자가로 끝내도록, 우리 각 사람을 위한 십자가의 특별한 몫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5. 사실상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아를 부인하고, 자아를 죽음에 넘기고, 항상 자아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적용하는 것이다.

6. 우리가 수평적인 교통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 무감각한 것을 의미한다. 이럴 때 우리는 결코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있다.

7. 우리는 신성한 교통에 대한 체험을 깊어지게 하기 위해 십자가를 체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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