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노예 2013-05-20 , 조회 (23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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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누림
빌 3:10-11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과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알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부활에 이르고자 합니다.
타고난 능력과 역량은 처리를 받은 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파쇄되고 죽음에 넘겨지는 것은 최종 단계가 아니다. 참된 십자가의 죽음은 항상 부활을 가져온다. 나사렛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셨지만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창세기 35장 이후에 야곱은 완전히 처리를 받고 끝났으며 성숙한 이스라엘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처리는 항상 부활에 이르게 한다. 사람의 역량이 십자가에 의해 더 처리될수록, 그 사람은 더 유능해진다. 사람의 총명이 십자가에 의해 더 처리받을수록 그 사람은 더 총명해진다. 더욱이 이러한 역량과 총명은 부활 안에 있는 것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타고난 능력과 부활한 능력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본래 가진 능력과 파쇄당한 능력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일곱 가지 관점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먼저 타고난 능력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첫째, 타고난 모든 능력은 이기적이고, 타고난 능력의 책략들과 방법들은 자아를 위한다. 둘째, 타고난 모든 능력은 육체와 기질의 요소들로 섞여 있어서,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화를 내게 된다. 셋째, 타고난 모든 능력은 교활함과 술책을 수반한다. 넷째, 타고난 모든 능력은 교만을 포함하고 자기 스스로 역량이 있다고 느끼게 하며, 그 결과 자랑하고 우월감을 갖는다. 다섯째, 타고난 모든 능력은 성령의 통제 아래 있지 않고, 어떤 일을 하든지 극히 대담하다. 여섯째, 타고난 모든 능력은 하나님의 뜻을 관심하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의 뜻대로 행한다. 일곱째, 타고난 능력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오직 자아만을 의지한다.
부활한 능력은 정반대이다. 첫째, 파쇄되고 부활한 모든 능력은 자아를 위하지 않고, 자아의 어떤 요소도 갖지 않는다. 둘째, 부활한 모든 능력에는 육체가 전혀 없다. 셋째, 부활한 능력은 결코 책략을 꾸미지 않는다. 넷째, 부활한 능력은 본질적으로 교만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다. 다섯째, 부활한 능력은 성령의 통제를 받으며 자신의 원함대로 감히 행하지 못한다. 여섯째, 부활한 능력은 하나님의 뜻을 위한다. 일곱째, 부활한 능력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참으로 능력과 역량이 있어도 자신을 따라서 감히 행동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일은 부활 안에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끝낸다. 십자가의 체험은 항상 부활의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가져온다. 이러한 체험은 사역을 산출하고 형성한다. 이 체험은 고린도후서 4장 7절부터 12절까지에 더 묘사되어 있다.
바울의 말은 우리가 종결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끝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이 일에서 철저히 조성되려면 얼마만큼의 체험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내시기 위해 십자가를 통하여 일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내시고 우리의 영성과 영적 성취조차도 끝내시기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 우리는 영적인 성취를 대단히 신뢰할지 모르지만 그것조차도 끝나야 한다.
뛰어난 부활에 이른다는 것은 우리의 온 존재가 점차적으로, 계속적으로 부활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죽은 영을 부활시키셨다. 그런 다음 그분은 우리 영에서부터 계속하여 우리의 혼과 우리의 죽을 몸을 부활시키시고, 결국 우리의 온 존재-영, 혼, 몸-가 그분의 생명에 의해, 그분의 생명으로 우리의 옛 존재에서 완전히 부활하도록 하실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이며, 상으로서 주어지는 뛰어난 부활에 이를 때까지 해야 할 경주이다. 그러므로 뛰어난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목표와 목적지이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룸으로써, 곧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함으로써만 이 목표에 이를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옛 창조물에서부터 새 창조물이 되는 과정을 거쳐, 부활 안에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