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8
몸 안에서 희생하는 생활을 하며 몸의 성장을 위해 몸에게 생명을 공급함
성경: 빌 2:17, 롬 12:1, 요일 5:16상, 고후 4:12, 엡 4:13-16, 골 2:19
Ⅰ. 몸 안에서 우리는 희생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롬 12:1.
A. 포도나무는 희생하시는 그리스도, 곧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그리스도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새 포도주를 산출하셨다.
1. 그리스도는 포도주 생산자로서, 그분 자신을 희생하시어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산출하신다. 포도나무로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위한 기쁨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쁨을 산출하신다.
2, 주님의 주권 아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
a. 그러한 상황 중에서 우리가 주님을 접촉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포도주를 산출하는 포도나무로, 곧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으로서 체험할 것이다.
b. 그리스도를 포도나무로 체험한 결과로 우리는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무언가를 산출하는 포도나무가 된다.
3. 우리가 포도나무로 예표되신 그리스도를 접촉하고 그분의 희생하는 생명을 체험한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활력을 주시어 희생하는 생활을 살면서 다른 이들과 주님을 기쁘게 만드는 포도주를 산출하게 하실 것이다.
a. 우리는 자신 안에서 희생하는 생활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은 타고난 생명, 이기적인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을 접촉하고 그분의 희생하는 생명을 체험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활력을 주시고 우리를 강화시키시어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하게 하실 것이다.
b.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희생하는 생명을 체험할수록, 더욱더 활력을 얻어 우리 자신을 희생하여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이다.
B. 포도주를 산출하는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새 포도주이신 그리스도로 충만해짐으로써 우리는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전제(奠祭)가 되어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다.
1. 전제는 그리스도 자신을 예표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 되어 하나님의 만족과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쏟아 부어질 때까지 새 포도주이신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적시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2. 전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되시고 우리가 희생하는 생활을 하신 그리스도와 똑같이 되는 정도까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Ⅱ. 우리는 몸 안에서 희생하는 생활을 할 때, 몸에게 생명을 공급한다-요일 5:16상, 롬 8:2, 6, 10-11, 엡 4:16.
A.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몸 안에 있고, 몸을 통해 있으며, 몸을 위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은 몸 안에 있어야 하고, 몸을 통해 있어야 하며, 몸을 위해야 한다.
B. 몸은 지체들의 상호 공급에 의해 건축된다. 하나님은 각각의 모든 지체를 통해 몸에게 생명을 전달하신다.
C.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만을 몸에게 공급할 수 있다. 우리의 사역의 분량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분량으로 결정된다.
1. 몸 안에서 유용한, 유일한 한 가지는 우리 안에 넣어지신 그리스도이며, 오직 이러한 그리스도만이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있다.
2. 우리가 몸에게 공급하는 것은 그리스도이고 몸이 받아들이는 것도 그리스도인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몸 안에서 모든 것이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3. 우리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것은 자동적으로 몸이 받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의 것이 바로 몸의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것을 전해주기 위해 분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D. 십자가가 있는 곳에 생명의 사역이 있다. 몸에게 생명을 공급하는데 사용되는 길은, 주님과 함께하는 우리 삶의 정상적인 과정에서 십자가가 우리 안에서 활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1. “죽음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합니다.”라는 것은 몸의 변치 않는 원칙이다.
2. 하나님께서 우리가 십자가를 거쳐 통과하도록 하신 것은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몸 안에 생명의 증가를 가져온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은밀한 가운데 통과한 것은 몸에서 생명을 공급하기에 충분하다.
3. 몸은 생명의 소통에 의해 공급을 받으며, 생명은 죽음이 우리 안에서 활동할 때에 몸에게 전달된다.
E. 우리는 바로 내적 실재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에게 생명을 공급한다. 성령은 참되고 실재적인 것만을 증언하실 것이다.
F. 생명의 사역을 통해 우리는 몸을 섬기며 몸의 성장에 기여한다. 우리가 주님에게서 받은 생명이 몸 안으로 흘러갈 때, 몸의 신장의 분량이 증가한다.
Ⅲ. 우리는 몸의 성장을 위해 몸에게 생명을 공급해야 한다-골 2:19, 엡 4:15-16.
A. 하나님의 의도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을 통로들로 사용하시어 그리스도의 생명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가고 지체들을 통해 몸의 분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B. 몸의 성장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에 달려 있다.
1. 몸은 머리를 붙듦으로써 공급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자라심으로 자란다.
2. 몸은 머리로부터 자라나는데, 이것은 모든 공급이 머리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C. 몸의 성장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라시는 것, 곧 하나님께서 더해지시고 증가하시는 것에 달려 있다.
1. 하나님은 주관적인 방식으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성장하게 하신다.
2.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더욱더 더해지실수록,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더 성장하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성장하게 하시는 방식이다.
3. 오직 하나님만이 성장하게 하실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고, 그분이 없다면 우리는 자랄 수 없다.
a.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더해지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장이다.
b.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장하게 하시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D. 몸의 성장이 몸의 건축이다.
1. 에베소서 4장 11절부터 16절까지는 신약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이것은 이 부분이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에 관한 비밀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의 몸의 성장은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서 증가하시는 것이며, 이러한 증가의 결과로 몸 스스로 몸을 건축하게 된다.
a. 그리스도께서 성도들 안에 들어오시어 그들 안에서 사실 때, 성도들 안에 계신 이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되신다.
b.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자라심으로 자라며, 그리스도의 몸은 이런 식으로 건축된다.
8주 1일
아침의 누림
삿 9: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롬 12:1 그러므로 형제님들, 내가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권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거룩하고 살아 있는 희생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합리적인 봉사입니다.
포도나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사사기 9장 13절에서 포도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라고 말한다. 한 면으로 포도나무는 희생하시는 그리스도, 곧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것이 중점은 아니다. 주된 의미는, 주님께서 그분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새 포도주를 산출하신 것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여러분은 그러한 그리스도를 체험했는가? 우리 중의 대부분이 이러한 체험을 조금은 가지고 있는 줄로 믿는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는 그것에 그다지 깊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때때로 주님의 주권 아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 그러한 상황 중에서 주님을 접촉할 때, 그때가 바로 우리가 포도주를 생산하는 포도나무이신 주님을 누릴 때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분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한다. 이 체험으로부터 우리는 포도나무가 된다. 즉 사람과 하나님을 모두 기쁘게 하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사람이 된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체험이 있을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그리스도께는 여러 방면이 있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풍성하시다. 주님은 밀알이시고 보리떡이실 뿐 아니라 모든 나무이시다. 첫째는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기쁨을 산출하는 나무이시다. 모든 형제자매들이 여러분을 기뻐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정도 이런 방면의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이다. 여러분은 포도주를 만드는 분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희생하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서,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그들에게 기쁨을 주도록 힘을 주고 계신다.
수년 전에 내가 대만의 타이베이시(臺北市)에 있었을 때, 많은 형제자매들이 영적 도움을 받기 위해 우리에게 와서 함께 머물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자매는 항상 원망하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목욕을 할 때에는 물이 충분히 뜨겁지 않다고 불평하고, 식사를 할 때는 음식이 너무나 식었다고 불평했다. 하루 종일 그녀는 “이건 왜 이렇지?”, “저건 왜 이렇지?”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 자매는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힘들게 만들었다. 아무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자매는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전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희생하시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는 법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 그녀 자신도 행복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그 자매에게는 포도주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 자매는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포도주를 생산하려고 자신을 희생하신, 포도주 생산자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한 일이 없었다.
여러분이 이런 방면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한다면 여러분은 마실 수 있는 포도주를 많이 갖게 되고, 또 그 포도주로 취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미칠 것이다. 여러분은 취해서 그리스도께 미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 저는 참 행복합니다. 정말로 행복합니다. 저는 이기주의가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제게는 다른 나라의 말입니다. 저는 날마다 그리스도라는 포도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가장 이기적인 사람들은 언제나 가장 비참하다. 그들은 항상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조금만 더 잘 대해주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그들은 항상 구걸하는 거지와 똑같다. 희생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어떻게 희생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희생할 힘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은 타고난 생명, 이기적인 생명이기 때문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만이 희생의 생명이다. 만일 여러분이 이러한 그리스도를 접촉하고 그분의 희생의 생명을 체험한다면, 그분은 여러분에게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희생하도록 활력을 주시고 여러분을 강화시켜 주실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여러분은 행복으로 취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에 의해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포도나무가 될 것이다. 여러분을 접촉하는 모든 사람이 여러분을 기뻐하게 될 것이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