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노예 2013-05-29 , 조회 (21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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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누림
사 57:15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영이 통회하고 겸비한 자와 함께 거하리니 이는 겸비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66:1-2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영이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또한 우리는 온유하고 정숙한 영이 필요하다. 베드로전서 3장 4절은 우리 마음에 숨겨진 사람이 온유하고 정숙한 영이라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은 우리가 온유한 영으로 타락한 형제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4장 2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그가 매를 가지고 그들에게 가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온유한 영으로 가기를 원하는지를 물어 보았다.
신약은 온유라는 미덕을 자주 언급한다. 마태복음 5장 5절에서 주님은 “온유한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에 근거하여 우리는 신약에서 온유하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볼 수 있다. 세상의 방식은 어떤 소유물이나 유업을 얻기 위해 싸우고 분투하며 다른 사람들을 패배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유업으로 얻고자 한다면 온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온유하다는 것은 세상의 반대에 저항하지 않고, 그것을 기꺼이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온유해야 하며 다른 이들과 싸워서는 안 된다. 온유는 자신을 위하여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온유하며 정숙한 영이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어떤 것을 위해 싸운다면 정숙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정숙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을 위하여 싸우지 않고, 자신을 위하여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통회하며 겸비한 영은 상한 영과 매우 유사하다. 이사야서 57장 15절과 66장 2절은 모두 동일한 것을 가리킨다. 그 구절들은 심지어 하늘조차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처가 아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통회하며 겸비한 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거하기를 갈망하신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만일 우리의 영이 통회하며 겸비하다면 우리는 상한 영을 가진 것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다. 이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심지어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
만일 우리의 영이 교만하고, 우리가 기꺼이 회개하며 자백하려고 하지 않으며, 스스로 완전하고 온전하며 결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의 체험에 따르면, 어떤 의미에서 주님의 임재가 우리를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회하는 영, 겸비하고 상한 영, 우리의 죄악을 자백하는 회개하는 영이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영 안에 있다면,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며, 우리와 함께 거하실 것이다. 이사야서 57장 15절과 66장 2절은 성도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놀라운 구절들이다.
하나님은 하늘이나 땅을 그분의 거처로 삼지 않으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분을 위해 건축한 물질적인 집인 성전도 그분의 안식처로 여기지 않으셨다. 구약에서 성막과 성전은 모두 다만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합의 상징이었으며,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그분의 참된 집으로 여기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과 연결되시어 그들과 한 실체가 되셨고, 이러한 한 실체가 하나님과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거하는 영적인 집이었다. 이사야서 66장 2절과 57장 15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얻기를 갈망하시는 거처는 하나님께서 그 안에 들어가실 수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우주 안에서 한 거처를 얻으시는 것인데, 이 거처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다. 이 거처 안에서 하나님은 사람 안으로 건축되시고 사람은 하나님 안으로 건축되어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이 서로에게 상호 거처가 될 수 있다. 신약에서 이 거처, 이 집은 교회인데, 교회는 믿는 이들의 영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이다. 이러한 우주적인 건축물, 곧 우주적인 집의 궁극적인 나타남은 새 예루살렘이다. 이 성에서 하나님은 사람 안에 계시면서 사람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시고,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그의 처소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