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을 처리함으로 생명이 성장함
성경: 시 51:10하, 12, 17상, 잠 16:18-19, 사 57:15, 66:1-2, 벧전 3:4, 갈 6:1, 고전 4:21, 마 5:3, 눅 9:54-56
Ⅰ. 영을 처리하는 것은 영 자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통로를 처리하는 것이다-눅 9:54-56, 벧전 3:4.
A. 거듭난 영, 곧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은 순수하며 더럽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혼과 몸이 영을 둘러싸고 있는데, 혼과 몸은 모두 사탄의 악한 요소들과 혼합되었고 그 결과 더럽고 부패하게 되었다.
B. 그러므로 영이 나오면서 혼과 몸을 통과할 때, 영은 혼과 몸의 더러움과 부패함으로 인해 오염된다. 따라서 영이 나타나게 될 때에는 어떤 더러움과 부패함, 불순함, 부적당함, 기타 여러 가지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를 띠게 된다.
C. 우리는 영에 붙어 있는 것들의 특징들에 의해 영의 특징들을 판단한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면 우리의 영으로 하여금 그러한 종류의 특징들을 띠게 한다. 우리의 영이 해방될 때, 이 영은 바로 우리 인격의 맛과 특색을 표현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상태가 그 사람의 영의 상태를 결정한다.
D. 어떤 사람이 그의 혼 안에서 교만하다면 그의 영 또한 교만한 상태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이 육체 안에서 화를 낼 때 그의 영 또한 분노를 드러낸다.
E. 우리는 종종 염려하는 영, 질투하는 영, 반역적인 영, 거친 영, 비뚤어진 영, 자랑하는 영, 지배하는 영, 혹은 무례한 영 등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영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영이 혼과 몸을 통과할 때 혼과 몸의 바람직하지 않은 요소들이 영에 영향을 미쳐 더럽힌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영이 어떠한지를 보고서 그가 어떠한 것에 의해 더럽혀졌는지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의 영이 어떠한지를 보면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F. 우리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다면, 영 또한 해방될 때 순수하지 않다. 우리의 의도가 깨끗하지 않다면, 나오는 영 또한 깨끗하지 않다. 마음의 목적이 자기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 결과로 허세를 부리고 자랑하는 영이 나올 것이다. 경쟁하려는 동기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하고 분투하는 영을 만지게 할 것이다.
G. 우리는 행동하거나 말하려는 순간마다 우리가 지금 하려고 하는 것이 옳은지 틀린지, 선한지 악한지를 질문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내적인 의도가 깨끗한지, 우리의 동기가 순수한지, 우리의 목표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한 것인지를 반드시 분별해야 한다.
H. 우리는 자신의 행동 배후에 어떤 이기적인 목적은 없는지 혹은 어떤 자기중심적인 성향은 없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영을 처리하는 것이다.
I. 이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의 육체와 자아와 타고난 조성이 파쇄되게 하여 영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할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의 부정적인 모든 목적들, 바람직하지 않은 의도들, 불순한 성향들, 부적합한 의지, 혼합된 감정을 남김없이 처리해야 한다. 그럴 때 영이 나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올바르고 깨끗하고 순수한 상태로 나올 수 있다.
J. 영을 처리하는 실지적인 길은 혼합된 모든 것을 유죄 판결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 모든 것을 제거하며, 자진해서 십자가를 적용하여 우리의 육체, 우리의 자아, 우리의 타고난 조성, 우리 마음의 목적, 목표, 의도, 성향, 동기 등을 포함한 영의 통로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끝내야 한다.
K. 하나님은 자아를 처리하시고 끝내시기 위해 우리 환경에서 모든 상황과 모든 일을 안배하신다. 이러한 방식으로, 곧 성령의 징계에 의해 우리의 영의 상태가 높아지고 순수해진다.
L. 모든 형제자매들이 탁월하고 훌륭하고 순수하고 장중하고 숭고한 상태의 영을 갖고 있다면, 그들은 상호적으로 서로 공급할 것이며 교회는 풍성하게 될 것이다.
Ⅱ.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에 유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합당한 영을 가져야 한다.
A. 누가복음 9장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께, 그들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분을 거절한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을 불사르라고 명령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주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책망하시면서 “여러분의 영이 어떠한지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목숨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구하러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1. 제자들은 영이 잘못되었는데, 이것은 그들의 동기가 증오에 속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영은 사람들의 목숨을 멸망시키는 영이 아니라 구하는 영이다.
2. 워치만 니 형제님은 사람이 올바른 일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올바른 방식으로 올바른 영으로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3.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에 있어서 건설적이고 온전하게 하고 유용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하는 일이 올바르고, 우리의 방식이 올바르고, 우리의 영이 올발라야 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막 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가 어떠한 영을 갖고 있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B. 추구하는 성도는 영 안에서 가난하고 마음이 순수해야만 한다.
1. 영 안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우리가 겸손하여 자신이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함을 의미한다.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2. 영 안에서 가난한 것은 우리의 영이 비워지고 우리 존재의 깊은 부분이 그 무엇에 의해서도 점유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순수한 것은 동기의 문제이다. 마음이 순수한 것은 목적이 단일한 것,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단일한 목표만을 갖는 것이다.
C. 우리는 견고한 영을 가져야만 한다.
1. 견고한 영은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으며, 확고하고 변함없는 것으로서 끊임없이 서 있는 영이다.
2. 다윗은 회복되기 위해 회개하며 기도할 때, 주님께 자신 안에 그러한 영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3. 우리는 언제나 확고하고 지속적이고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는, 견고한 영이 필요하다. 이러한 영이 있을 때 우리는 결코 유혹을 받거나 꾐에 빠지거나 오도(誤導) 될 수 없다.
D. 회개한 믿는 이는 자원하는 영을 갖는다-“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영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 믿는 이로서 우리는 주님의 일들과 교회의 일들을 위해 자원하는 영을 항상 가져야 한다.
2. 주님의 권익에 속한 일들에서 자원하는 영을 갖는 것은 구원의 기쁨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우리는 주님과 함께하고자 하는, 자원하는 영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 주님께서 갈망하시는 것,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응답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자원하는 영을 갖게 될 것이다.
3. 우리가 하나님의 영 안에 있는 기쁨을 가질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쁘게 행할 것이다.
E. 시편 51편 17절 상반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제물이 상한 영이라고 말했다.
1. 상한 영은 회개하는 영, 곧 죄악된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매우 슬퍼하는 영이다. 다시 말하면 상한 영은 참으로 회개하는 영이다.
2. 상한 것은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온전하고 완전하며 완벽한 존재로 여기지 않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영이 회개하고 있을 때, 우리의 영은 상하고 통회하며 슬퍼한다.
F. 우리는 온유하고 정숙한 영을 가져야 한다.
1. 베드로전서 3장 4절은 우리 마음에 숨겨진 사람이 온유하고 정숙한 영이라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은 우리가 온유한 영으로서 타락한 형제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4장 2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그가 매를 가지고 그들에게 가리를 원하는지, 아니면 온유한 영으로 가기를 원하는지 물어 보았다.
2. “온유한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a. 온유하다는 것은 세상의 반대에 저항하지 않고, 그것을 기꺼이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방식은 어떤 소유물이나 유업을 얻기 위해 싸우고 분투하며 다른 사람들을 패배시키는 것이다.
b.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온유해야 하며 다른 이들과 싸워서는 안 된다. 온유는 자신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G. 하나님은 통회하며 겸비한 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거하기를 갈망하신다.
1. 만일 우리의 영이 통회하고 겸비하다면 우리는 상한 영을 가진 것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다. 이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심지어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
2.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영이 통회하고 겸비한 자와 함께 거하리니 이는 겸비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영이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4. 하나님께서 얻기를 갈망하시는 거처는 하나님께서 그 안에 들어가실 수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 곧 통회하고 겸비한 영을 가진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a. 하나님의 의도는 우주 안에서 한 거처를 얻으시는 것인데, 이 거처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다. 이 거처 안에서 하나님은 사람 안으로 건축되시고 사람은 하나님 안으로 건축되어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이 서로에게 상호 거처가 될 수 있다. 신약에서 이 거처, 이 집은 교회인데, 교회는 믿는 이들의 영 안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이다.
b. 이러한 우주적인 건축물, 곧 우주적인 집의 궁극적인 나타남은 새 예루살렘이다. 이 성에서 하나님은 사람 안에 계시면서 사람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시고,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그의 처소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