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양식 5주 2일 2013 봄장로집회
오늘의 양식
주님의 노예 2013-06-23 , 조회 (18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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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누림

 

3:3 모세가 말하였다. “내가 돌이켜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가시나무 떨기가 어째서 타 버리지 않는 것일까?”

33:16 땅과 그 안에 충만한 것에서 나는 가장 좋은 것과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 거주하신 분의 은총으로 복을 받기 바랍니다.

 

가시나무 떨기가 불은 붙었으나 타지 않는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거룩함의 영광이 우리 안에서 불타야 하나, 우리는 소진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만일 하나님의 종이 소진된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데 자기 자신의 힘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연료로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오직 그분 자신을 연료로 쓰실 것이다. 우리는 단지 우리 안에서 불타는 신성한 불을 가진 가시나무 떨기가 되는 것이다.

나는 모세가 결코 불타는 가시나무 떨기의 광경을 잊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그 이상에 대한 기억이 그 안에서 생생하여, 그의 타고난 힘이나 능력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에게 계속 상기시켰을 것이다. 불타는 가시나무 떨기의 표징을 통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수단인 그릇, 곧 통로라는 것을 새겨주셨다. 우리가 단지 하나님의 나타남을 위한 가시나무 떨기가 되기를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나는 한 가지 공과를 배우고 있는데, 이것은 타고난 생명을 연료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내 안에서 불타시도록 허락함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불타는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기록은 하나님의 부름받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고 증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가시나무 떨기 외에는 아무 것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이 기록이 결코 잊히지 않을 정도로 우리에게 깊이 새겨지길 바란다. 자신 안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단지 가시나무 떨기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귀히 여기시며, 우리 안에서부터 불꽃이신 그분 자신을 나타내기를 갈망하신다. 우리는 타고난 사람에 따른 우리의 어떠함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음으로써 그분의 불탐을 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의 타고난 사람과 함께 그 기력과 힘과 능력은 반드시 끝나고 생각에서 지워져야 한다. 가시나무 떨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여러분은 비록 자신을 능력 있는 사람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결국 자신이 단지 쓸모없는 가시나무 떨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를 방문하시고, 우리와 함께 머무시며, 우리 위에서 불타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비록 신성한 불이 우리 안에서와 우리 위에서 불타오를지라도 우리 자신은 불타 없어지지 않는다.

오늘날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 영이신 아들께서 우리 위에 불로 임하셨다. 주 예수님은 언젠가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오순절날 그 영은 불의 혀들과 같은 형태로 오셨다. 이 거룩한 불, 이 신성한 불탐이 우리를 사로잡았으며, 지금 우리는 삼일 하나님으로 불타는 가시나무 떨기의 일부이다. 삼일 하나님은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교회 안에서와 위에서 불타고 계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속된 인성 안에서 불타고 계시는 삼일 하나님이다. 이것이 신성한 경륜이다.

만일 여러분이 교회생활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며 교회생활에 관해 좋게 말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을 하나님의 축복 아래 두게 될 것이다. 나는 교회생활 안에 있어온 이래로, 교회에 관해 부정적으로 말하면서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었던 사람을 한명도 보지 못했다. 교회가 가련하다거나 수준이 낮다거나 죽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이렇게 말할수록 우리는 자신을 더욱더 저주 아래 두게 된다. 그러나 교회에 관해 긍정적으로 말하고, 교회가 사랑스러우며,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선포했던 사람들은 축복을 받았다. 이것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다. 이것은 많은 성도들의 체험에 의해 입증될 수 있는 증거이다.

부활의 하나님께서 가시나무 떨기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은 오늘날 하나님의 거처인 단체적인 가시나무 떨기가 존재하는 것이 전적으로 부활 안에 있는 문제라는 것을 가리킨다. 거룩한 분께서 우리를 방문하여 우리 가운데 거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부활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부활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백성인 우리는 부활 안에 있다. ……위대한 나는 이다이신 부활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는 그분을 누린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가시나무 떨기이며, 단체적으로 우리 모두는 부활의 하나님으로 불타는 단체적인 가시나무 떨기이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생활에 대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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