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누림
출 4:13-14 …“주님, 부디 다른 사람을 보내셔서 말하게 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진노하시며 말씀하셨다. “레위 자손인 너의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나는 그가 말을 잘하는 줄 안다. …
25 그때 십보라가 부싯돌을 가져다가 자기 아들의 포피를 잘라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말하였다. “당신은 참으로 나에게 피의 신랑입니다.”
모세는 여전히 남성의 도움과 여성의 도움이 필요했다. 남성의 도움은 짝을 이루는 도움이다.이런 종류의 도움은 우리를 균형 잡아주고 제한하며 겸손하게 한다.
모세는 그의 형과 짝을 이룸으로써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들이 하도록 하는 것을 배웠다. 아론이 모세보다 더 언변이 탁월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아론이 한 모든 것을 모세 역시 할 수 있었지만, 모세는 제한을 받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교회생활 안에서 종종 주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할 수 밖에 없는 어떤 환경을 일으키신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우리가 기능을 발휘하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 어떤 형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그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 형제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하라. 이것은 여러분을 겸손하게 할 것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모세가 할 수 있는 일을 아론이 하게 하는 상황을 안배하셨다.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혼자하지 않기를 배워야 한다. 대신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게을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것은 짝을 이루는 관계에서 우리가 제한받고 균형 잡히고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제한은 우리에게 안전과 보호가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더 조화될수록 우리는 더 보호될 것이다.
출애굽기 4장 24절부터 26절까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십보라를 사용하여 모세를 ‘피의 신랑’이 되게 하신 것을 본다. …성경에서 남성은 객관적인 진리를 대표하는 반면 여성은 주관적인 체험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아론과 짝을 이루는 것은 외적이며 객관적이었으나, 십보라의 잘라냄은 내적이며 주관적이었다.
우리가 주님의 회복 안에서 주님께 유용하게 되려고 한다면 잘려진 표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체험한 잘려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반대로 잠잠히 그 표시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잘려졌다는 것을 말하게 하라. 출애굽기 4장에서 모세를 ‘피의 신랑’이라고 말한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십보라였다.
교회생활과 결혼생활에서 우리는 이러한 ‘피의 신랑’이 될 필요가 있다. 만일 어떤 형제가 참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면 주관적인 방식으로 잘려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잘려짐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때때로 나의 아내는 나의 먹는 것을 제한함으로 나를 자른다. 이렇게 자르는 것은 나를 건강하게 해 주고 식탐을 내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녀의 자르는 도움 때문에 나는 식사를 할 때 육신적으로 식탐을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잘라냄은 우리를 타고난 생명에 따라 생활하지 않도록 지켜준다. …기꺼이 잘려지기를 원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께 유용할 수 있다. …날마다, 심지어 매시간 우리는 타고난 생명이 할례를 받는 체험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죄가 많다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타고난 생명도 우리의 가족들이나 교회 안의 형제자매들에 의해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잘라냄은 하나님의 부름의 마지막 방면이다. 오직 우리는 잘려진 후에야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할 수 있다.
출애굽기 3장과 4장에 있는 하나님의 부름의 방면들과 신약의 기록을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모세가 체험한 모든 것을 바울도 역시 체험했음을 본다.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은 오늘날 우리의 체험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불타는 가시나무 떨기에 대한 이상, 즉 구속받은 사람들 안에서와 위에서 불타시는 삼일 하나님에 대한 이상을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성경에 있는 신성한 계시의 초점이다.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누구이시고 어떤 분이신지를 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마귀와 육체와 세상을 알아야 한다. 이어서 우리는 짝을 이루는 것과 잘려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자신의 타고난 생명이 할례를 받는 주관적인 체험을 기꺼이 갖고자 한다면, 우리는 부활 생명에 의해 살게 될 것이고,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주님의 손에 유용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할 수 있는 준비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부름의 각 방면이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에서 우리의 체험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