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누림
고후 1:9 결국은 죽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 단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요 20:31 그러나 이러한 일들을 기록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여러분이 믿도록 하려는 것이고, 또 여러분이 믿어 그분의 이름 안에서 생명을 얻도록 하려는 것이다.
죽음의 체험은 우리를 부활의 체험으로 안내한다. 부활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십자가의 일은 자아를 끝내고 우리로 하여금 부활 안에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한다. 십자가의 체험은 항상 부활의 하나님을 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한 체험은 사역을 산출하고 형성한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4장 7절부터 12절까지에서 더욱더 묘사되었다.
고린도전서 끝 부분에서 바울은 부활을 말한다. 고린도후서 시작에서 바울은 성도들을 부활의 문제로 돌아가게 한다. …이것은 사역과 관련된다. 사역은 우리의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의 문제이다. 이 서신에서 나타난 사역과 생활은 모두 부활의 생명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오늘의 읽을 말씀
요한의 사역은 보수하는 사역이다. 베드로는 주님께 부름을 받을 때에 고기를 잡고 있었지만, 요한은 부름을 받을 때에 그물을 깁고 있었다. 베드로는 많은 사람을 낚는 어부의 일을 했다. 그러나 요한은 그의 사역이 생명으로 보수하는 사역이기 때문에 영적인 그물을 기웠다. 오직 생명만이 영적인 그물에 난 모든 구멍을 수선하여 보수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그리스도인들의 그물에 너무나 많은 구멍들이 있다. 그것들을 보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명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생명의 문제에 대해 거듭거듭 부담을 갖고 있는 이유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에게 “생명이란 한 단어 밖에는 아는 것이 없느냐?”라고 말하면서 비웃는다. 그렇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오직 생명 밖에 모른다. 우리는 다른 것들이 필요하지 않기에 다른 것들을 알지 못한다. 생명이 우리의 유일한 필요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에게는 생명이 필요하다. 다른 것들은 구멍을 크게 할지 모르지만 생명은 모든 구멍을 수선해 줄 것이다. 우리에게는 요한의 사역이 필요하다. 성경에서 마지막 사역이자 성경을 결론짓는 사역인 요한의 사역은 생명의 보수하는 사역이다.
영원한 생명을 가진 우리는 이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로부터 다른 사람들 안으로 흘러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생명을 공급하기를 배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다른 방법을 찾지 말라. 어느 방법도 생명을 공급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여러분은 자신에게도 생명이 부족한데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느냐고 하며 이의를 제기할지 모른다. 여러분은 정말로 생명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죄를 범한 사람에게 가서 훈계하거나 책망하지 말라. 제삼자에게도 가지 말라. 여러분 자신이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 “주님, 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그 형제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는 생명의 공급이 필요합니다. 그는 생명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저도 그렇습니다. 주님, 저 또한 생명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먼저 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더 많은 생명이 저에게 필요합니다. 저는 더 많은 생명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형제나 자매가 죄를 범할 때에, 그것은 그 형제나 자매에게 생명이 부족하다는 강한 표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를 돕기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이 생명을 갖고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넘치는 여분의 생명을 갖고 있는가? 우리에게 넘치는 여분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풍성한 공급을 얻을 때까지 기도하고 금식하며 주님을 앙망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주님에게서 받은 이 공급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 줄 수 있다. 이것이 기독교가 하락한 이 시대에, 교회생활 안에서 전진할 수 있는 길이다.
요한은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공급해야 하는 이 생명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분은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우리의 필요는 주 예수님의 더 큰 몫을 갖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공급할 넘치는 여분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넘치는 여분은 지식이나 교리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