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양식 6주 3일 2013 봄장로집회 생명의 사역
오늘의 양식
주님의 노예 2013-06-23 , 조회 (21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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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누림

 

요일 5:14-16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앞에서 갖는 담대함은 바로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구한다면 그분께서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들으신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구하며 청한 것을 그분에게서 받은 것도 압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것을 보거든 그분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가 그 형제, 곧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것입니다.

 

요한일서 515절에서 아는 것은 우리가 신성한 생명을 받아들인 후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의 이름 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안에서 그분과 하나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신성한 출생을 통해 신성한 생명을 받아들인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할 수 있으며, 우리의 기도 안에서 그분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주님과 하나이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 안에서 기도한다. 이것에 의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간구하는 것은 자신 안에서 생각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구하며 청한 것을 그분에게서 받은 것도 안다.

 

오늘의 읽을 말씀

요한일서 516절에서 요한은 이 단락의 요점에 이른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것을 보거든 그분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가 그 형제, 곧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것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죄가 있는데, 나는 그것에 관하여 그분께 청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에서 에 이르는에 대한 헬라어는 을 향하는을 뜻한다. 여기에서 요한은 만일 어떤 사람이 주님 안에서 자신과 가까운 어떤 형제가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위해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구하다라는 단어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통 안에 거할 때 드리는 기도를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의심할 바 없이 구하는사람은 형제가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것을 본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가 생명을 줄 것입니다.”라는 말에서 그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 구절에 있는 두 번째 가 누구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어떤 성경 번역자들은 두 번째 가 주님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여 대문자를 사용한다. 사실 두 구절 모두에서 는 동일한 사람을 가리킨다. 즉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본 사람이 그를 위해 구하는 사람이다.

구하십시오의 주어와 생명을 줄 것입니다의 주어는 동일한 사람이다. 이것은 구하는 사람이 죄를 지은 형제에게 생명을 주리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구하는 사람 자신이 생명을 갖고 있어서 스스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그렇게 구하는 사람이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과 하나이며 주님과의 한 영 안에서 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는 영께서 죄를 지은 형제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서 생명을 분배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주거나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신성한 생명 안에 거하고, 신성한 생명 안에서 살고 행하며 처신해야 한다. 야고보서 514절부터 16절까지의 기도는 치료를 위한 기도이며, 여기서의 기도는 생명을 분배하기 위한 기도이다.

여기의 요점은 만일 우리가 요한일서 516절에 기록된 대로 형제를 위해 기도하려면 주님과 하나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해야 하며 주님과의 한 영 안에서 구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과 완전히 하나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 주시는 영께서 우리가 기도하는 형제에게 생명을 분배하실 수 있도록 하는 수단과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생명의 분배는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은 실재이고 실지적이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로부터 혹은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이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통로가 되는 체험은 깊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영원한 생명이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도록 하는 통로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주님 안에 깊이 들어가야 하며 주님의 마음 안에 있음으로써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런 정도까지 주님 안에 들어갔다면, 우리는 우리와 가까운, 죄를 지은 그 형제에 대해 주님께서 어떤 뜻을 갖고 계시는지를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형제의 상황에 대한 주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그를 위해 어떻게 기도할지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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