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노예 2013-08-25 , 조회 (33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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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아이가 되기 위해 체험해야 할 다섯 가지 중점
하나님의 경륜 안에는 어떤 방법들이 없다. 다만 유기적인 원칙들이 있다. 이것들을 적용할 때 우리는 다만 이상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체험할 길을 가지게 된다. 사내아이는 여자의 강한 부분이다. 사내아이는 반드시 강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강화되어야 한다. 바울은 분명히 사내아이의 일부로서 기능을 발휘했다. 그는 능력에 대해서 많이 말했다. 고전 1:18에서 “십자가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다”라고 했다. 24절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2:4에서는 “나의 말과 나의 선포는 그 영과 능력의 나타남이다”라고 했다. 5절에서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고 했다. 4:20에서 “하나님의 왕국은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했다. 5:4에서 “여러분이 영 안에 모일 때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우리 주 예수님의 능력으로”라고 말한다. 엡 3:7, 20은 “그분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운행하고 우리 안에 운행하는 능력”에 대해서 말한다. 골 1:29에서 “내 안에서 능력으로 운행하시는 분의 운행에 따라 분투한다.”고 했다. 그는 분명히 여자의 일부였다. 그런데 여자에게서 더 강한 부분이었다. 강화되는 이 부분에 있어서 또한 다섯 부분이 있다.
① 엡 1:19-22, 교회에게 전달된 사중 능력-부활의 능력, 승천의 능력, 굴복시키는 능력, 통일시키는 능력이다. 이 위대한 능력들은 교회를 향한다. 그리하여 교회의 모든 적들이 밟혀지는 것이다. 엡 6:10에서 우리는 전쟁을 위해서 주님 안에서 능력을 받고 그분의 강한 권능 안에서 굳세게 되는 것이다. 사내아이는 주님과의 유기적인 연결 안에서 강화되어 그분의 권능 안에서 굳세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엡 3:16에서 이 능력으로 강하게 하셔서 속사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빌 3:10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을 안다. 내가 한 가지를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능력의 역설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겉으로 볼 때 반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후 12:9에서 나의 능력은 약함 안에서 온전케 되었다. 이것은 주님이 바울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내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나의 능력은 약함 가운데서 온전케 된다.” 10절은 바울의 반응이다. “내가 약할 때 나는 강하다.” 14:4에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약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분과 함께 살 것이다. 많은 성도들이 남자와 여자가 다 똑같이 너무 강하다. 왜 이렇게 되는지 아는가? 왜냐하면 그들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이 능력을 모른다. 형제님들, 부드럽고 온유하고 이런 외향의 그런 낮아 보이는 자매에 대해 속지 말라. 그 속에는 강한 자아가 있다. 조금만 만져보면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은 아신다. 기도를 사랑하는 형제가 있었다. 그는 사랑스런 형제였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앞장서서 책임을 질 때 나는 “그는 이렇게 사랑스런 형제였는데, 주님, 그는 너무나 강합니다.”라고 주님께 말씀드렸다. 우리 혼의 능력으로는 자격을 갖지 못한다. 이것은 역설적이다. 오직 약화된 이들만이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유기적인 연결 안에 있는 이들만이 주님의 능력을 알게 된다. 형제들 중 몇 명은 일을 하고, 사역 안에서 여행도 하고, 그런 열망을 가질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에 아멘 한다. 그러나 그런 꿈은 꾸지 마라. 결국에는 이제 여기서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연결하는 비행기를 또 타고 갔다가, 이제 또 남쪽으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일어나서 말해야 하고 이제 거의 힘이 다 빠져 있을 때, 정말 서 있지 못할 때가 능력을 만질 때이다. 이 형제님이 술람미에 대해서 사역의 말씀을 전하실 때가 기억난다. 두 진영의 춤을 추는 것이 있었다. 더 약한 자들이 결국 이기는 이들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타고난 약함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타고난 약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타고난 약함 밑에는 바로 혼 생명, 자아의 능력이 있다. 그런데 사내아이는 그 문제에 있어서 완전히 만져지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안배하셔서 우리를 약화시키신다. 그분은 가시를 제거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이러한 일들이 계속해서 있게 하신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지만 응답을 하지 않으신다. 제거되도록 기도하는데 기도의 응답이 없다. “나의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나의 능력은 약함 가운데 온전케 된다. 나는 너를 약화시켜야 한다. 바울아!” 그때 바울이 말했다. “나는 나의 약함 가운데 자랑한다. 내가 약할 때 나는 강하다.”
② 그리스도의 요소로 적셔짐. 그리스도께서 이기는 씨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안에 거처를 정하시고 건축하실 필요가 있다. 요 14:30에서 이 세상의 주관자가 올 것인데 그는 내 안에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입지도, 어떤 기회도, 어떤 길도 없다. 우리 자신 안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 하나 될 때 그분 안에서 사탄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신다. 그분으로 적셔지고 그분과 하나 될 때 우리는 원수의 어떤 여지도 없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이다.
③ 생명의 성장과 성숙. 사내아이(man-child)는 남자아이(boy-child)가 아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남자아이(boy)를 창조하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내(man)를 창조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성숙에 이르도록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절박하다. 우리가 현충일 집회 때 교통했다. 내가 다시 말한다. 갓 졸업한 훈련생들이 생명의 체험의 세 번째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만일 향후 10년 동안 주님께서 여러분을 철저히 이 단계 안에서 목양하시도록 허락한다면, 30대 중반이 될 때 몸을 알기 시작할 것이다. 승천과 다스리는 것과 전쟁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사내아이가 되도록 자라야 한다.
④ 단체적인 인격. 사내아이는 몸의 실재 안에 산다. 그는 몸의 원칙을 지킨다. 그는 몸이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는 몸 안에 있는 상호 교통의 깊은 실재 안에 산다. 1974년에 이 형제님께서 아주 심각한 고통을 통과하신 후에 회복되셨다. 그리고 아나하임 교회에서 형제님의 체험에 대해서 교통하셨다. 주님께서 형제님에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기도를 갖도록 기도하십시오.” 이것은 나를 아주 만졌다. “기도를 갖도록 기도하십시오!” 이 형제님은 몸 안에 사셨다. 바울이 빌립보서 1장에서 말했듯이, 몸의 지체들의 간구로서 그 영의 공급을 가져오고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도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면 공급이 오지 않을 것이다. 2012년에 내가 병원에 있었다. 그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응급차가 왔고, 누가와 같은 릭 형제님이 옆에 계셨고, 격리조치 등등 일이 벌어졌다. 토요일 아침에 주님과 약간의 교통을 했다. 내가 몸을 공급했다고 믿었다.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몸이 나를 공급하는 것이다. 나는 몸 없이 살 수 없고 이길 수 없다. 그때 기도와 공급이 있었다. 사내아이는 단체적인 사람이다.
⑤ 원수와의 전쟁. 사내아이는 어떻게 싸우는지 안다. 계시록 12:11에서 내가 대명사에 인상을 받았다. ‘그들’이 비난자를 이겼다고 말한다. ‘그’가 아니고 ‘그들’이다. 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그들의 증언하는 말과 죽기까지 그들의 혼 생명을 사랑하지 않으므로 비난자를 이겼다고 말한다. 원수에게 어떤 것에 대해서도 사과할 필요가 없다. 잘못 비난한다면 피로 이기는 것이다. 여러분이 무언가 잘못해서 비난할 근거를 가지고 있다면 피로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 자백하고, 원수에게는 말해야 한다. 예수님의 승리하는 피가 있다. 그리고 여러분의 증언하는 말을 하는데 여러분의 체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다. “원수야 네가 나를 괴롭히느냐 내가 너에게 메시지를 전하겠다. 나사렛 예수님께서 너를 십자가에서 멸망시키셨다. 너 기어다니는 녀석아! 너 패배자야! 너는 그 남자에게 멸망당했다. 너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책망한다.” 우리의 태도는 혼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원수가 무엇을 할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원수는 우리가 무엇을 할지 두려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