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노예 2013-09-27 , 조회 (24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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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아침의 누림
계 4:3 앉아 계신 분의 모양은 벽옥과 홍보석과 같았으며, 그 보좌 주위에 있는 무지개의 모양은 녹보석과 같았습니다.
21:11 그 성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성의 빛은 가장 귀한 보석과 같은데, 벽옥과 같고 수정처럼 맑았습니다.
변화의 목표는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와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변화되어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을 이룬다는 의미는 우리가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와 점차적으로 같은 형상을 이루어 그분과 같아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할 때 주님은 그분의 존재와 그분께서 성취하신 것의 요소를 우리에게 주입하시고 우리 안에 분배하신다. 결국 우리는 그분의 생명의 능력과 그분의 생명의 본질을 통해 점점 신진대사적인 변화를 거쳐 그분의 생명의 형상을 갖게 된다. 또한 우리의 생각이 새롭게 됨으로써 점차적으로 그분의 형상으로 변형된다.
오늘의 읽을 말씀
카네이션의 씨앗은 생명의 본질에 의해 생명의 능력을 통하여 성장할 때 특정한 모양을 갖게 된다. 신성한 생명도 그와 같다. 신성한 생명은 본질과 능력과 모양을 가지고 있다. 신성한 생명의 모양은 그리스도의 형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의 본질에 의해 그분의 생명의 능력을 통하여 성장할 때, 우리는 점차적으로 그리스도의 형상, 즉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된다.
하나님은 그분의 맏아들을 기반과 본과 요소와 수단으로 하여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고 계시며, 이렇게 산출된 많은 아들들은 하나님의 맏아들을 믿고 그분과 하나로 연결된 많은 믿는 이들이다. 그들은 생명과 본성에서 그분과 정확히 똑같고, 그분과 같이 그들도 인성과 신성을 모두 소유한다. 그들은 영원토록 영원하신 삼일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그분의 증가와 표현이 된다.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표현의 축소판이고, 영원 안에 있을 새 예루살렘은 이러한 표현의 궁극적인 나타남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정하신 것은 단지 우리를 거룩하고 영적이고 승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분의 아들과 완전히 똑같은 형상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영원 과거에 정하신 우리의 운명이다.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은 변화의 최종 결과이다. 이것은 우리의 내적인 본질과 본성뿐 아니라 우리의 외적인 모습을 바꾸는 것까지 포함하는데, 그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럽게 된 형상과 걸맞게 되게 하는 것이다. 그분은 원형이시고 우리는 대량 재생산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벽옥처럼 보이신다. 또한 21장 18절에서 요한은 그 성의 성벽이 벽옥으로 되었다고 말한다. 이 두 구절은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처럼 보인다는 것을 말한다. 그 성은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단체적인 표현을 갖는 것은 사람의 창조에서 암시되었다. 창세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의 자격에 이르도록 예정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분의 미리 정하심에 따라 창조된 이 사람을, 어느 날 그분의 단체적인 표현이 되게 할 목적으로,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네 시대, 곧 족장 시대와 율법 시대와 은혜 시대와 왕국 시대가 끝날 때 우리를 맏아들과 같은 형상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일이 완성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살아 있는 단체적인 한 실체가 될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단체적인 표현인 모든 아들들의 총체이다. 그것은 구약과 신약의 모든 시대 안에서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사랑스런 모든 성도들의 구성체이다. 그들은 이 거룩한 성, 즉 신성한 아들의 자격의 총체의 구성 성분이 되어,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 가리키는 것처럼, 하나님을 단체적으로 표현함으로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이룰 것이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은 창세기 1장 26절, 곧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신 것의 성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