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노예 2013-10-31 , 조회 (29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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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누림
창 4:26 셋에게서도 아들이 태어났는데, 셋은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하였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롬 10 12-13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분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시고, 그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창세기 4장 26절에서 ‘부르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크게 부르다’, ‘외치다’, 즉 ‘들을 수 있게 외치다’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공허하다는 것…과 자신이 연약하며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호와 곧 영원하신 분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비록 그들은 공허하고 약한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풍성하고 강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부르던 분의 풍성과 능력 안으로 그들 자신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우리가 창세기 4장에서처럼 사람의 두 번째 타락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며 아벨처럼 하나님의 길을 따라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 부정적인 면에서 우리는 (가인처럼) 주제넘지 말아야 하고, 긍정적인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하나님의 길에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길을 따라 그렇게 해야 한다.
창세기 4장에서 우리는 특별히 의미 깊은 두 이름을 본다. 첫 번째는 ‘공허함’을 뜻하는 아벨이다. 타락한 결과, 인생은 공허해졌다. 오늘날의 사람들을 보라. 바쁘게 움직이지만 그들 안에는 텅 빈 공간이 있다. 그들의 깊은 속에는 공허한 느낌이 있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솔로몬 왕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라고 말한 의미이다. 하나님 없는 타락한 사람들인 우리는 사람의 두 번째 타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어떠함과 소유한 모든 것과 행하는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다만 공허할 뿐이다.
특별히 의미 깊은 두 번째 이름은 ‘연약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을 뜻하는 에노스이다. 타락한 후에 인생은 공허해졌을 뿐 아니라 부서지기 쉽고 죽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이 부서지기 쉽고 약하고 깨지기 쉽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부서지는지! 사람은 죽게 되어 있다. 아무도 자신이 일주일을 더 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아무도 내일을 모른다. 사람의 두 번째 타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인생의 공허함과 사람의 부서지기 쉬움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만일 이런 깨달음이 있다면 우리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길을 벗어날 만큼 주제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주제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살며 하나님의 길을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며 인생의 공허함과 사람의 부서지기 쉬움을 깨달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 주님! 저는 주제넘게 행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살고 당신의 길을 따라 당신을 경배하겠습니다. 주님, 제 인생은 공허합니다. 저는 깨지기 쉽고 죽어야 할 운명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공허하고 자신이 부서지기 쉬움을 볼 때 우리는 자연히 주님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인류의 제삼 대인 에노스의 때에 사람들은 자신이 약하고 깨지기 쉽고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히브리어로 ‘주님’이라는 단어는 여호와이다.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주로 창세기 1장에서 그분의 창조와 관련되어 사용된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주로 창세기 2장에서 사람과 관련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호와는 사람과 친근한 관계를 갖기 위해 사람에게 오시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따라서 창세기 4장 26절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을 부르지 않고, 그들과 매우 친근하신 분, 그들과 긴밀히 연결되신 분을 불렀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나는 ‘나는 …이다’이다(I am that I am)”,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그분은 과거에도 계셨고 현재에도 계시고 미래에도 영원토록 계신다. 그분은 영존하시는 분이시다. 사람들은 자신이 부서지기 쉽고 죽어야 할 운명임을 깨달을 때 영존하시는 분이신 여호와를 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