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 10주 6일 아벨, 에노스, 에녹
오늘의 양식
주님의 노예 2013-10-31 , 조회 (31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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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누림





히 11:5-6 에녹은 믿음으로,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옮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옮겨 가셨으므로, 그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에녹은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다는 증거를 지녔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과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는 사람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과 6절은 에녹이 들림받기 전에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음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또한 그분께서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분은 존재하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보상해 주시는 분이시다. 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보상을 주시는가? 하나님은 사람이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살며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를 갈망하시기 때문이다. …에녹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은 그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셨다. 에녹은 하나님을 추구했고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하나님은 그에게 보상해 주셨다.





오늘의 읽을 말씀

하나님은 에녹에게 무슨 보상을 주셨는가? 하나님은 그에게 가장 높은 단계의 생명, 곧 죽음에서 벗어남을 주셨다. …그것은 어떠한 보상이었던가! …주님은 보상해 주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그분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에녹은 이것을 믿었고 실행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다’이심을 믿었고 하나님을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었다.

에녹은 육십오 세 때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에는 예언적인 의미가 있다. 그 뜻은 ‘그가 죽을 때 그것이 온다.’이다. 그것은 홍수에 대한 예언이었다. 에녹은 자기 아들을 므두셀라라 부름으로써 장차 올 홍수의 심판을 예언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으며 그분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신성한 뜻으로 영감을 받아, 장차 경건하지 않은 모든 세대에 임할 심판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유다가 기록한 예언이 이중으로 성취된다고 믿는다. 에녹은 홍수의 심판이 주님께서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오셔서 경건하지 않은 이들에게 심판을 집행하는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홍수에 대한 에녹의 예언은 그가 육십오 세에 한 것이다. 그 후로 에녹은 밤낮으로 예언이 성취될 것을 기대했으며 그 기대로 인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었다. 비록 그 세대의 모든 사람들과 그들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경건하지 않았지만 에녹 자신은 감히 경건하지 않은 자들처럼 될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것을 바라보며 거룩하게 하나님과 동행했다. 에녹은 이런 기대를 삼백 년 동안이나 간직했다. 그러나 심판은 그 시대에 임하지 않았다. 그것은 므두셀라가 태어난 후 구백육십구 년이 될 때까지도 임하지 않았다.

홍수는 므두셀라가 죽은 그 해에 임했다.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 때 라멕을 낳았다. 라멕은 백팔십이 세 때 노아를 낳았고, 노아가 육백 세 때 대홍수가 임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숫자를 전부 함께 더하면 구백육십구 해가 되고, 이것은 므두셀라가 죽었을 때의 연수이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데려가신 것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한 순간은 땅 위에 있었다가 다음 순간에 하늘에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에녹은 오르락내리락하며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으며 갈 지(之)자 모양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지도 않았다. 에녹은 하늘에 닿을 때까지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며 위로 올라갔다. 에녹이 삼백육십오 세가 되어 거의 하늘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의 자녀야, 내가 여기에 있다. 이리 오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에녹은 데려감을 당한 것이다. …에녹은 삼백 년 동안, 곧 십만 일 이상을 밤낮 하나님과 동행했다. 에녹은 매일매일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전날보다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갔다.

우리는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주님의 이름을 부름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전진해야 한다. …주님을 부를 때 우리는 살아나게 된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는 것은 항상 우리를 죽인다. 그것은 또한 우리를 부활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먼저 우리를 죽인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다시 우리를 부활시키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림으로 매우 살아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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