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누림
창 6:7-9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창조한 사람을 이 지면에서 쓸어버리겠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 앞에 은총을 입었다. 노아의 계보는 이러하다. 노아는 그 세대 가운데 의롭고 나무랄데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나님은 창세기에 묘사된 타락을 배경으로 하여 그분이 타락한 인류에게 행하신 일에 관한 적극적인 그림을 보여 주신다. 창세기가 기록된 주된 목적은 타락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 주려는 것이다. 타락은 우리로 하여금 하얀 그림을 잘 볼 수 있도록 돕는 검은 배경이다.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사람의 첫 번째 타락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위해 행하신 일을 보았다. 창세기 4장에서 우리는 사람의 두 번째 타락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위해 행하신 더 전진된 일을 보았다. …우리는 사람의 세 번째 타락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볼 것이다.
노아가 어그러지고 비뚤어지고 음란한 세대 가운데 살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은혜는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생명 공급과 우리의 힘과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이다. 그러한 은혜로 말미암아 노아는 육체를 이길 수 있었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오늘의 읽을 말씀
창세기 1장에서 처음 사람을 보실 때 하나님은 사람으로 인해 즐거우셨고 기뻐하셨다. 창세기 6장에서 또다시 사람을 보셨을 때 하나님은 사람이 악해졌고 극도로 부패했음을 보시고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다. 창세기 1장과 얼마나 다른지! 원래 사람은 그처럼 높은 위치에 있었으나 3장이 시작될 때부터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여러분은 “잊어버리자.”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어찌 되겠는가?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 아니신가? 영원한 하나님이 변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일시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그분께는 회전함으로 생기는 그림자가 없다. 그분께서 한번 결정하시면 그 결정은 영원토록 지속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한 계획을 잊으셨다면 대적은 그분을 비웃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패배시키기 위해 사람을 창조했지만, 나를 패배시키는 대신 내가 하나님을 패배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패배하실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하는가? 그 대답은 창세기 6장 8절에서 발견되며, 원칙상 이 대답은 수세기에 걸쳐 동일했다. 그 대답은 바로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 앞에 은총을 입었다.”이다.
이 구절은 창세기에 있는 가장 위대한 구절 중 하나이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기뻐했지만,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 그것은 상황을 변하게 했으며 시대를 바꾸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패배하지 않으셨다! 외적인 패배 가운데에,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사람을 통한 승리가 있었다. 그것은 전환점이었다. 성경에 있는 역사를 읽어볼 때 우리는 매 시대마다 사탄이 상황을 극도로 파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시대를 전환한 한 사람 또는 몇 명의 사람들이 항상 있었음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억해 보라. 비록 그들이 밑바닥까지 타락하고 타락했지만 그때 대적을 심히 놀라게 한 다니엘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다니엘서 1장 8절은 “그러나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라고 말한다. 다니엘서에 ‘그러나 다니엘은’이 있고, 창세기 6장 8절에도 ‘그러나 노아는’이 있다. 인간 타락의 밑바닥에 항상 ‘그러나’가 있다.
노아의 생활을 관찰해 볼 때 우리는 그의 생활이 다만 하나님과 동행하거나 방주를 짓는 문제가 아님을 볼 것이다.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요점은 하나님께서 시대를 바꾸기 위해 노아를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대적으로 인해 상황은 밑바닥까지 내려갔으며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다. 소망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다. 노아의 생활은 시대를 바꾼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