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6일
7차집회개요
라일락 2013-12-28 , 조회 (28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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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누림

 

1:14 말씀께서 육체가 되시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니, 은혜와 실재가 충만하였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에게서 온 독생자의 영광이었다.

14: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나의 말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서로 거처를 정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집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아버지의 집은 삼일 하나님께서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 자신을 믿는 이들 안에 일해 넣으심으로 그들과 완전히 연합되시어, 그들을 그분의 거처와 표현을 위한 유기체로 건축하시는 문제이다. 아버지의 집은 또한 믿는 이들의 거처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집이라는 표징은 삼일 하나님과 그분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사람들이 연합하여 산출한 상호 거처, 곧 하나님과 그분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사람들 모두를 위한 거처를 가리키는 것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첫 번째 이야기는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이 되신다는 원칙을 계시한다. 다시 말하면 그 원칙은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이 상징하듯이 죽음에서 생명을 산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는 것의 목적을 계시한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시는 방법은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이끄시고 우리를 하나님 안으로 이끄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거처들이 되게 하고 하나님을 우리의 거처가 되게 하는 것이다. , 하나님을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여 하나님과 우리, 우리와 하나님을 상호 거처가 되게 하는 것이다.

전체 성경에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고 말하는 것, 즉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주로 요한의 글(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이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154절은 내 안에 거하십시오. 그러면 나도 여러분 안에 거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상호 거함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일이었다. 그리스도는 육체가 되시어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오셨고, 그분은 사람과 함께 하나님께로 되돌아가셨다.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사람에게 오셨다. 그리스도는 하나의 선물, 곧 사람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가셨다. 그분은 육체가 되심으로써 하나님과 함께 오셨고, 죽음과 부활에 의해 사람과 함께 가셨다. 주님의 오심은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오셨고, 주님의 가심은 사람을 하나님 안으로 건축하심으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신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오심과 가심에 의해 사람을 하나님의 거처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람의 거처가 되게 하신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이 상호 거처가 된다. 그리고 요한의 글의 완결에는 한 건축물, 곧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되어 건축된 새 예루살렘이 나온다.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성취하신, 인성과 하나님의 연합인 건축이다.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저택을 건축하고 계신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 영에 의해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분은 유기체인 교회, 그분의 몸이자 아버지의 집인 교회를 건축하고 계신다. 이 집은 삼일 하나님과 그분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사람들이 연합하여 이루어진다.

신약에 있는 교회는 아버지의 집의 둘째 단계이다. 이 집의 첫째 단계는 육체 되신 하나님, 곧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다. 둘째 단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믿는 이들, 곧 많은 아들들이 함께 교회로 건축되는 단계이다. 결국 아버지의 집의 두 번째 단계인 이 교회는 장차 올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신약에 있는 아버지의 집의 마지막 단계이자 궁극적인 완결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첫째 단계나 셋째 단계 안에 있지 않고 둘째 단계 안에 있다. 우리는 둘째 단계 안에 있는 사람들로서 셋째 단계로 가는 노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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