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이기는 생명
하나님의 영원한 뜻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살기를 결코 원치 않으셨다. 하나님은 영원 안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사는 생활을 하도록 정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단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영원한 뜻 안에서 그분의 생명 안에서 생활하기를 원하신다. 에덴동산에서 사람은 이것을 보지 못했거나 어쩌면 보았지만 받아들이기를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어느 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위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고 부활하여 성령으로 강림하사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영접할 수 있는 분이 되셨으며 그분을 믿는 사람은 한분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더욱 우리가 죄짓는 생활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영접하여 이기는 생활을 하기를 원하신다.
이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잘못된 관념
◎ 자기의 힘을 의지해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함
의심할 것 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믿을 때 다 하나님의 생명을 얻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 안에서 우리의 생명이 되며, 어떻게 우리 안에서 사시는 가에 대하여 정확한 인식이 없다. 정확한 인식이 없으므로 많은 잘못된 관념이 생긴다. 그리스도인이 거듭난 후에 일종의 새로운 경향이 있는데, 즉 이전에는 원치 않았는데 오늘은 하고 싶고 이전에는 원했던 것을 오늘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람의 잘못된 관념은 첫째로 자신이 노력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며, 결심하여 다시는 범죄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미덕을 살아 내려는 것이다.
새 생명은 하나님의 새 율법이며 이 새 율법은 곧 새로운 요구가 있다. 내가 이 새 율법을 따라 행하려면 힘을 내야만 이룰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요구는 결코 우리 자신을 의지해서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사람의 생명이 있을 뿐이며 이 생명은 천연적이고 세속적이므로 새 율법의 요구를 이를 수 없다. 옛 생명은 새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내가 물고기 한 마리를 여기에 두고 그에게 새로운 요구를 했다 하자. 설사 당신이 물고기에게 새로운 욕망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그에게 공중을 날고 싶다는 욕망을 준다 해도 그는 공중을 날 방법이 없다. 원인은 물고기의 생명 안에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비록 날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도 이와 같다. 새 생명은 그에게 새로운 욕망과 새로운 경향을 주었지만 옛 생명은 새로운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그러므로 로마서 7장의 그리스도인이 있게 된다. 로마서 7장의 그리스도인은 계속해서 자신의 힘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그리스도인이다. 자기의 힘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이루려고 하는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본 것이 없는 것이다. 자신의 옛 생명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도 없다.
◎ 하나님께서 나에게 능력을 주셔서 이기게 하시기를 구함
또 다른 한 무리의 사람은 그에게 이미 새 생명, 새 표준, 새 요구, 새 소망이 있지만 자신이 너무 연약하고 생활에 실패가 너무 많아서 이길 수 없으므로 응당 하나님이 그에게 능력을 주시고 그를 도와서 죄를 이기게 해달라고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께 그에게 새로운 능력과 새로운 생활을 주시길 구한다. 이러한 사람은 더 많이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그에게 더 많은 능력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만일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신다면 많은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충분히 잘할 수 있으며 자기가 하나님의 요구를 살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은 뜻을 세우는 것이 틀린 것을 아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힘을 의지해 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 주시기를 구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힘으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힘으로는 언제나 가능하다고 생각하므로 그는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하며 심지어 금식하며 문을 닫고 기도하거나 속세를 떠나 산이나 바다에 가서 기도한다. 그는 많이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들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이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많은 다른 기도는 들으시는 것 같은데 그의 죄를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는 듣지 않으시는 것 같다. 희한하게도 어떤 종류의 죄악에 대해서 그는 계속하여 이길 수가 없다. 문을 닫고 기도할 때는 범죄할 수 없으므로 이긴것 같이 생각하지만 기도를 마친 후에 방문을 나서면 시험과 사탄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그는 또 실패한다.
◎ 하나님의 주심과 미덕을 구함
많은 사람이 수차례의 실패를 통하여 어떤 종류의 죄를 자주 범하며 왜 실패하는지를 알게 된다. 나는 여러분 중에 많은 사람이 아직도 자신이 자주 범하는 죄를 찾아내지 못했을까 두렵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당신보다 나아서 그들은 이미 자주 범하는 죄를 찾아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말이 너무 많고 너무 빠르다는 것을 알며, 어떤 사람은 자기의 생각이 더러워서 남에게 보여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태도가 너무 딱딱해서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아프게 하는 온유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며, 어떤 사람은 자기가 자주 화를 내는 것을 알며,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교만을 안다. 많은 사람이 이미 자기가 자주 범하는 죄를 알고 나서 그들의 죄와 상반된 미덕을 찾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교만하다면 그는 곧 겸손을 추구하며 어떤 사람이 질투가 있다면 그는 낮은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며, 어떤 사람이 성질이 급하다면 그는 인내를 구하며, 어떤 사람이 생각이 더러우면 그는 청결한 마음을 구한다. 그들이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와 반대되는 미덕을 구한다. 일에 있어서도 매우 기이해서 당신이 인내를 구할 때, 당신은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지만 단지 인내라는 조그만 구멍이 있을 뿐이라고 여기며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늘로부터 한 덩어리의 인내를 내려 주시기를 구한다. 그러나 이 인내는 결국 오지 않으며 당신이 어떻게 구해도 오지 않는다. 당신은 계속하여 주님에게 당신에게 부족한 미덕을 달라고 구하며 당신의 구함대로 주님이 당신에게 주시기를 매우 바라지만 주님은 당신이 요구하는 것을 결코 당신에게 주시지 않는다.
나는 오늘 결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인의 잘못된 관념을 더 이상 제기할 생각이 없다. 다만 이상의 세 가지를 제기할 뿐인데 다른 일도 원칙은 같다. 내가 이러한 것들을 제기하는 목적은,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인에게 통하지 않는 길이며 결코 성경의 길이 아님을 보여 주는데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생활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만일 당신이 이러한 원칙을 따라 생활한다면 당신은 계속 실패할 것이다. 하나님이 새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단지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욕망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욕망과 새로운 요구를 만족케 할 새 생명과 새 능력을 주신 것이다. 새로운 욕망과 새로운 요구는 새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이 욕망과 요구를 만족시킬 새 생명의 공급의 근원도 새 생명인 것이다. 우리는 거듭날 때 새로운 욕망과 새로운 지식을 얻어서 정욕과 죄를 처리하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능력을 얻어 새 생명 안의 모든 요구에 부응하기를 원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우리 생명과 만족이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과 새 능력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다. 오늘 그리스도는 내 안에 거하신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여 무엇을 하시는가?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여 우리의 생명이 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신다. 주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신다고 하셨다(요 14:18). 그러나 로마서 7장의 그 고뇌하는 사람은 고아(孤兒)이다. 로마서 7장은 고아 장(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람은 새로운 요구와 새로운 욕망이 있지만 자신이 부응하지는 못한다. 마치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려고 하지만 음식이 없고, 날씨가 추워서 옷을 입으려 하지만 옷이 없는 고아와 같이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의지해서 뜻을 세워도 얻지 못한다. 주님은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다고 말한다. 오늘 저녁에 내가 전하려는 한분 그리스도는 단지 당신을 위해 목숨을 버려 피흘린 그리스도나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계속하여 당신 안에서 당신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이김이 되기를 원하신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연약하고 자주 넘어진다고 생각하므로 하나님께 자기를 강하게 해주시길 구한다. 그들은 큰 능력이 있어야만 죄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능력이 있어도 죄를 이길 수 없을지 모른다. 그들은 자주 죄에 의해 패배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죄를 짓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그들이 죄를 짓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 새 생명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은 당신의 옛 사람을 부축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더 큰 능력으로 죄를 이기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지 않는다. … 우리가 마땅히 강하게 죄를 이겨야 하지만 문제는 사람의 생명이며 사람의 생명은 죄를 이길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사람의 생명으로 죄를 이기기를 원치 않으시며 또한 영원히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의 옛 생명을 부축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과 능력이 되며 또한 우리의 이김이 되기를 원하신다.
어떻게 이기는 생명을 얻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이기는 생명을 얻게 하시는가? 그분은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어 우리의 이김으로 삼는다.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빌 1:21상)라고 말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의지해 산다거나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해 산다거나 혹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의지해 산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신 것은 우리를 도와서 죄를 이기게 하는 것이라고 크게 잘못 생각한다. 우리는 죄를 이겨야 하지만 그리스도가 우리의 능력에 더해져서 죄를 이기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방법은 당신을 한쪽에 제쳐두고 그리스도가 당신을 대신해 이기게 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고,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해 사신다. 객관적인 대신함은 십자가에 있으며 주관적인 대신함은 우리 안에 있다. 그리스도가 나에게 능력을 주시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해 사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 살지 않고 단지 십자가의 대신 죽으심만 있다면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부축하므로 우리를 강하게 하여 죄를 이기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한쪽에 제쳐두고 그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대신해 살며 우리를 대신해 죄를 이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내게 사는 것이 ‘곧’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