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 PSRP 2013겨울 훈련 창세기2 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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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노예 2014-03-11 , 조회 (53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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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1 여는 말씀

 

우리는 여름 훈련에서 시작했던 창세기 결정-연구를 계속 할 것이다. 1974년부터 이 형제님은 창세기 라이프-스터디를 해방하셨다. 거기서 말씀 안에 있는 깊은 진리를 제시했다. 생명을 사역하는 방식으로 성경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여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결정-연구는 다만 라이프-스터디의 요약이 아니다. 결정-연구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로 결정-연구는 말씀의 본질에 기초를 한다.

표면적인 문제들에 기초를 하지 않는다.

둘째로 결정-연구는 말씀의 내재적인 의미를 제시한다.

 

이번 훈련에서도 아브라함과 이삭에 관한 창세기 12장에서 24장까지를 다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말씀의 본질(the essence of the word) 안으로 들어가고, 말씀의 내재적인 의미를(the intrinsic significance of the word) 제시할 것이다.

 

메시지 1번 제목은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을 알고 체험함으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창세기 12장부터 50장까지의 내용을 소개한다. 이 메시지를 발전시키기 전에 아주 깊은 방식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통제하는 이상

통제하는 원칙

성경을 해석하는 근거

 

메시지 1에서는 초점에 집중할 것이다. 훈련은 우리 존재를 훈련하는 것을 요구한다. 마음을 주님께 돌이키고,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고, 주님께서 빛 비추시도록 열린 그릇이 되어야 한다.

 

통제하는 이상(governing vision).

성경에는 통제하는 이상이 있다. 그것은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선택받고 구속된 백성 안으로 일해 넣으셔서 그들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어 그들을 신성한 삼일성으로 그들의 온 존재를 적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다룰 창세기에 있는 통제하는 이상이다.

 

통제하는 원칙(governing principle).

이것은 창세기를 포함한 온 성경이 쓰여진 원칙이다. 창세기도 이 원칙에 따라 쓰여졌다. 그것은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구속된 사람들 안으로 일해 넣는 것이다.” 통제하는 이상이 통제하는 원칙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수백 년에 걸쳐 성경을 쓰셨다. 그분은 이 원칙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 넣으셨다. 성경은 이 원칙에 따라 쓰여졌다.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일해 넣는 것이다(the Triune God working Himself into us).

 

성경을 해석하는 근거(basics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word).

우리는 특별히 창세기를 해석하는 근거는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 존재 안으로 일해 넣는 것이라는 통제하는 이상이다. 이형제님은 장로 훈련 제 2권에서 이것을 분명히 하셨다. 주님의 회복의 모든 메시지는 이 이상에 따라, 이 원칙에 따라 통제받으면서 해석해야 한다.

 

 

.C.1 야곱의 인생은 하나님의 다루심을 대표하는 인생이며, 야곱의 하나님은 다루시는 하나님이시다.

니형제님께서 고령산 훈련에서 성도들에게 간증을 하라고 요청하였고, 그들이 말한 것을 분별력 있게 말했다. 어떤 형제가 말한 후에 니형제님은 다루심에 관한 값진 말씀을 주었다. 우리는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한 것이고, 우리가 성령의 징계와 동역하기 위한 것이다.

니형제님은 3종류의 다루심에 대하여 말씀하셨음

부분적인 다룸(fragmentary dealing)

근본적인 다룸(fundamental dealing)

보충적인 다룸(supplementary dealing)

 

부분적인 다룸(fragmentary dealing).

이것은 어떤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 영께서 우리를 만지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에서를 피해 도망가고, 잠자리에서 깨어보니 라헬대신 레아가 있었고, 라반 밑에서 20년간 있고, 삯이 10번 바뀌었고, 4아내와 많은 자녀가 있었다. 이것이 부분적인 다룸이다. 어떤 성도들은 부분적인 다룸을 가지고 이것이 겉 사람이 파쇄되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1967년 엘든 홀에서 키큰 형제가 마이크 앞에 나와 간증하였다. “우린 부서진 사람으로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때 우리 중에 파쇄된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는 어떤 균열도(dent) 없었을 것 같다. 야곱이 20년 동안 라반 아래 있는 것, 4명의 아내와 11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얼마나 많은 변화를 체험했는가? ZERO였다. 전혀 변화를 체험하지 못했다. 이것은 부분적인 다루심이다. 이것은 병의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다. 열이나 두 통을 치료하는 것과 같은 부분적인 다룸이다.

근본적인 다룸(fundamental dealing).

이것은 우리 존재를 깨뜨려 열게 하는 것이다. 이형제님은 이것은 우리를 완전히 부서뜨리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다룸이라고 했다. 여기서 씨름이 있다. 야곱은 파쇄되었다. 이것은 대 수술과 같다. 이것은 아주 깊이 만져지는 것이다.

보충적인 다룸(supplementary dealing).

이것은 수술 후의 후속적인 돌봄 같은 것이다. 나는 여기서 여러분 앞에 서 있을 뿐 아니라 주님의 얼굴 앞에 서있다. 노예로 섬기는 한 사람으로서 모든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중에, 온 땅의 주의 회복 안에 근본적인 다룸을 체험한 성도는 거의 없다.” 특별히 슬픈 것은 나이 많은 성도들이 부분적인 다룸만 있고 근본적인 다룸이 없을 때이다. 그 부분적인 다룸이 근본적인 다룸을 방해할 수 있다. 그럴 때 주님은 돌파할 수 없다. 결국 마지막에 돌파하신다. 그 때 교회는 어떤 유익도 받지 못한다. 어떻게 이것을 피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고난을 자처하는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하나님은 다루심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고 신학이 아니다. 모든 종류의 부분적인 다루심은 큰 충격과 돌파가 연속적으로 와야 한다. 자신감이 파쇄되어야 한다. 타고난 생명이 완전히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야 한다. 에베소서 3장에 따라 우리는 완전히 그분으로 조성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파쇄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기도하라. “주님, 당신 자신을 내 안에 일해 넣으십시오. 내가 성숙에 이르도록 자라게 해주십시오.” 야곱은 내 일생동안 자기를 목양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왕자가 되었다. 주의 회복 안에 어디에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있는가? 하나님의 단체적인 이스라엘이 있을 수 있는가? 성도들 개개인이 이스라엘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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