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훈련집회 ms 14. 믿음으로 삶-오늘날의 강을 건넌 이들이 되어 제단과 천막의 생활을 삶
-사역의 말씀
청명한빛 2014-03-20 , 조회 (462)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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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2. 믿음으로 삶 ―오늘날의 강을 건넌 이들이 되어 제단과 천막의 생활을 삶

Ⅰ. 믿는 이들 -

아브라함의 역사를 반복하는 아브라함의 단체적인 씨 (롬 4:11-12)

A.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변형된 씨로서 분배되시어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손과 아브라함의 씨 되게 하심 ? 갈 3:6-7, 9, 16, 29

B. 아브라함의 믿음에 의한 생활은 우리 가운데 반복되고 있음 ? 히 11:6

C.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은 아브라함의 생활과 역사의 수확임 - 롬 4:12

Ⅱ. 아브라함-첫 번째 히브리인

믿음으로 하나님을 접촉함

(창 14:13)

 

A. (의미)히브리’-‘넘어가다’. 특별히 강을 건너가는 것. 히브리인강을 건넌 사람 - 창 14:13

①율법▶은혜 ②옛 언약▶새 언약 ③구약의 의식▶신약의 실재 ④유대교▶교회

⑤땅▶하늘 ⑥바깥뜰▶지성소 ⑦혼▶영 ⑧초보▶성숙

B. 아브라함이 강을 건너 새로운 땅으로 들어간 것새 인류 안으로 들어간 것을 상징함

 

 

C. 가나안으로의 여행은 영광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좋은 땅으로 ‘옮기신 것이다’.

Ⅲ. 제단과 천막의 생활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취하고

교회를 우리 생활로 취하여

하나님의 옮겨 부으심을 받는 생활을 하고, 모든 것을 헌신하며,

그분의 임재를 지도로 취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함

(창 12:7-8, 13:3-4, 18, 롬 4:11-12)

A.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그분 자신을 아브라함에게 옮겨 부으심 - 행7:2

B. 우리는 거듭 주님께 나아가 간청해야 함

C. 하나님의 목표는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임.

D.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옮겨 부으심의 결과 (1) 하나님의 본질이 자신의 존재 안에 스며들며 주입되는 것 체험함.

E.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옮겨 부으심의 결과 (2)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됨.

F. 아브라함의 믿음-영광의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요소가 그의 존재 안에 옮겨 부어지고 주입된 것에 대한 반응이었음.

G.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옮겨 부으심의 결과 (3) 헌신하게 하여 제단을 쌓고 천막에서 살게 함

결과(4)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길을 안내하는 지도로 취했음.

H. 제단은 우리 온 존재와 모든 소유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한 것임.

제단을 쌓는 것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위해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시며, 우리의 삶의 의미는 하나님이심을 말함

Ⅳ. 세 장소 ? 세 제단을 쌓음

(세겜, 벧엘, 헤브론)

모는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좋은 땅을 대표함

A. 첫 번째 제단을 쌓은 곳 - 세겜모레의 상수리 나무가 있는 곳(창 12:6-7)

1. ‘세겜’ - ‘어깨’ 능력의 장소; 모레’-‘선생, 가르침’. 하나님을 그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땅으로, 하나님의 경륜의 건강한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땅으로 여행함.

2. 좋은 땅의 능력- 내적으로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흐르시는 삼일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새 예루살렘이 되고,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기 위한 것임.

B. 두 번째 제단을 쌓은 곳 - 서쪽에 벧엘이 보이고 동쪽으로 아이가 보이는 곳 (창 12:8)

1. ‘벧엘’은 ‘하나님의 집’을 뜻하고, ‘아이’는 ‘폐허더미’를 뜻함. 오직 벧엘만이 가치가 있음.

2. 황폐한 무더기는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포함되어 있고 그것이 처리되어야 몸의 생명을 살 수 있음

C. 세 번째 제단을 쌓은 곳 -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나무 근처(창 13:18)

1. ‘헤브론’은 ‘교통’, ‘교제’, ‘우정’을 뜻함. ‘마므레’는 도장을 찍으신 영께서 옮겨 부으시고, 주입하시어 우리를 적시시고 침투하기 위한 ‘힘’이나 풍성한 ‘기름짐’을 뜻함

2. 회복은 제단과 천막으로 돌아와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문제임

3. 헤브론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께서 그와 교통하실 수 있는 장소가 되었음

4. 우리가 하나님의 집을 보았다면 하나님과 교통하고 서로 교통하며 모든 일을 할 것임

5. 결과 ① 뒤로 물러난 믿는 이를 구출함 그리스도를 산출함마귀의 일을 멸하심

Ⅴ. 천막 안에 거하는 것

? 체류자의 삶의 증언

천막을 세우는 것?우리가

세 예루살렘에 속함을 표현하고 선포하는 것임

(창 12:1-3, 계 21:2-3)

A. 제단과 천막의 생활 ? 하나님의 증거 (나님의 표현)을 지님

1. 우리의 모든 소유물은 반드시 제단을 통과해야 함

2. 소유물이 우리를 지배해서는 안 됨

B. 하나님의 백성을 택하신 목적-그분의 증거거룩하고 큰 민족이 되게 하는 것

C. 아브라함이 세운 천막과 쌓은 제단은 이스라엘 자손이 세운 증거막과 쌓은 제단의 예시임

D. 아브라함의 천막은 궁극적인 천막인 새 예루살렘의 축소판

E. 우리는 교회 생활이라는 ‘천막’ 안에 살면서, 궁극적인 ‘회막’인 새 예루살렘을 기다림.

성경: 수 24:2-3, 행 7:2, 히 11:8-10, 창 12:1-3, 7-8, 13:3-4, 18

 

 

믿음에 관한 5가지 중점

 

1. 믿음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이다(Faith is to believe that God is. 히 11:5-6, 창 5:22-24). 이것은 ‘우리는 아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시고 우리는 아니다. 히브리서 11장 5-6절은 에녹에 관해 말하고, 에녹이 휴거되기 전에,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증거를 지녔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하나님이 이신 것을 믿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했고 그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데리고 가셨다. 결국 믿음이란 하나님은 이시고 우리는 아니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에서 유일한 분이시고 우리는 모든 것에서 아니라는 것이다. 그분은 모든 것에서 모든 것이시고, 우리는 ‘모든 것에서 아무 것도 아니다’는 것이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에게 하나님은 이셨고, ‘그는 아니다’는 것을 믿었다. 그의 영과 혼과 몸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완전히 아니었다. 결국 그는 휴거 되었다. 우리가 일찍 휴거되려면 하나님은 이시고, 우리는 아니라는 것을 믿을 때이다. 이것이 믿음으로 행한다는 뜻이다.

2. 믿음은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주목함으로 나온다(Looking away unto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히12:1-2). 오늘밤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자. 그분은 우릴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히브리서 12장 2절의 1번 각주에서 예수님은 믿음의 창시자이시다(각주 참조).

내가 불신자였을 때 어떻게 믿는 이가 되는지 궁금했다. 믿음을 던져줘서 받게 되는 것인가? 어떤 생각의 과정을 통해 갖게 되는 것인가? 우리 옛사람 안에는 믿는 능력이 없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 믿음을 갖지 못한다.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은 우리가 주님께 받은 보배로운 믿음이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주목하여 바라볼 때 생명주는 영이신 그분은 우리 안에 그분 자신과 그분의 믿음의 요소를 옮겨 부으신다. 이것은 놀랍다.

아브라함은 영광의 하나님으로 주입되고 옮겨 부어졌다. 그때 그 안에 반응이 있었다. 그것이 믿음이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 안에 주입된 것이다. 로마서 결정연구 98-99페이지에서 히브리서를 인용하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주목하라고 했다. 우린 예수님이 아닌 모든 것에서 그분을 주목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보지마라. 예수님이 아닌 모든 것에서 돌이키라. 많은 것들이 우리를 빗나가게 한다. 젊은이들이 훈련에 들어올 때 전시간 훈련이 얼마나 놀라울까 생각하고 온다. 그런데 훈련에 와서 낙심할 수 있다. 교회 생활도 똑같다. 여러분의 지방의 성도들을 볼 때 낙심할 수 있다. 여러분을 만족시키는 교회생활은 어디에 있는가? 믿음으로 행하는 것과 믿음으로 고난 받는 것은 모든 것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룸메이트를 보지 말라. 장로들을 보지 말라. 연장한 자매들을 보지 말라. 나를 보지 말라. 예수님을 주목하라. 오직 예수님만이 계시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계신다. 예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바라보지 말라.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며 어떤 다른 것도 신뢰하지 않는다. 오직 그분만이 계신다. 모든 아닌 것에서 예수님만을 주목하자. 이것이 믿음이다. 예수님은 믿음의 기원자요 창시자이다. 다만 그를 바라보자. 그분은 우리의 믿음의 기원이요 완성자이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경륜은 믿음 안에 있다고 말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질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실재화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그분의 계획이다. 이것은 주님의 회복 안의 일의 중심 이상이었다. 60년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이 회복에 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큰 꿈을 가지고 왔다. 그들이 온 후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여기에는 예수님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모든 것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예수님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 중점이다. 믿음은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생긴다. 믿음은 그분이 옮겨 부으심과 주입하심과 적셔주심에 대한 반응이다. 믿음은 아브라함에게 영광의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옮겨 부으심과 주입하심과 적셔지심에 대해 반응해서 산출된다.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거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주님을 따를 때 발을 질질 끌었다. 아브라함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 하나님께서 계속 그에게 나타나셨다. 계속 말씀하셨다.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좋은 땅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은 여러 번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믿음의 거인으로서 그분 자신을 아브라함 안으로 옮겨 부으셨다. 믿음은 그의 타고난 역량이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믿은 것은 신성한 옮겨 부으심에 대한 반응이었다. 오늘밤 우리는 이 집회에서 완전히 열려 있어야 한다. 하나님으로 주입되어야 한다. 믿음은 주관적인 하나님이 우리 존재 안에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 존재 안에 적용된 주관적인 하나님이 믿음이다. 믿음은 불가능이 없게 한다. 마태복음 17:20, 19:26에서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믿음에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 존재에 주관적인 하나님이 적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3. 믿음의 영(The same spirit of faith, 고후 4:13). 고린도 후서 4장 13절에서 우리도 동일한 믿음의 영을 가졌다고 말한다. 우리의 연합된 영이 믿음의 영이다. 주 예수님께서 신성한 영을 우리 안에 옮겨 부으실 때 그분은 생명 주시는 영으로 오신다. 그때 믿음으로 오신다. 우리의 영은 믿음의 집이다. 우리의 연합된 영은 믿음의 영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의 말씀을 믿기 원한다면 영을 사용해야 한다. 믿음의 영을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과 둘레이신 그분을 믿으려면 우리는 영을 사용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말해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의 영을 사용해야 한다.

4. 믿음은 사랑을 통해 운행함(Faith operates in love, 갈 5:6, 요 14:21). 우리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 믿음이 운행한다. “주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사랑은 우리를 주님의 나타나심 안으로 이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 자신을 나타낼 것입니다."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그분이 우릴 사랑하시어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것이다. 그분 자신이 나타나시는 것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분배하는 것이다. 그럴 때 믿음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으로 운행한다.

5.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온다(Faith comes out of hearing, and hearing through the word of Christ, 롬 10:17, 갈 3:5). 갈라디아서 3장 5절에서 믿음을 들음에 대해 말한다. 믿음을 듣는 것은 교회 집회에서 발생하고, 사역 집회에서 발생한다. 바로 지금 믿음은 듣는 것에서 온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집회 때마다 믿음의 들은 것을 누린다. 믿음을 들음은 교회 집회 안에 있다.

믿음을 들음이 함축하는 8가지 적용

① 말씀을 들음(hearing of the word)

② 주님에 대한 감상(appreciation of the Lord)

③ 주님의 이름을 부름(calling on the Lord's name)

④ 그 영의 공급을 받음(receiving the supply of the Spirit)

⑤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accepting of Christ)

⑥ 주 예수님과 연결되는 것(being joint to the Lord Jesus)

⑦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partaking of Christ)

⑧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enjoying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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