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문과 순금 길 개요
7차집회개요
라일락 2014-05-13 , 조회 (28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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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3

진주 문과 순금 길

 

성경: 21:18, 2:14, 3:10, 2:20, 고전 15:31, 벧후 1:4

 

.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은 열두 진주이다-21:21.

A. 진주는 죽음의 물 속에 있는 조개에서 산출된다. 조개 안에 작은 모래알이 들어와 상처를 주게 되면, 조개는 모래알 주위에 생명의 즙을 분비하여 그것을 귀한 진주로 만든다.

B. 이것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물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상처를 받으시고 그분의 생명을 우리에게 분비하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표현을 건축하기 위해 우리를 귀한 진주로 만드시는 것을 묘사한다.

C. 거룩한 성의 열두 문이 열두 진주라는 것은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분비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는 것이 그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것을 의미한다.

D. 모래알이 조개 속의 상처 안에 남아 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의 거처, 처소, 거주지, 안식처, 유일한 보호 장소이다.

1.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남아 있고 머문다면, 결코 성질을 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죄에 대해, 우리의 성질에 대해, 세상에 대해, 사탄에 대해 승리를 거둘 수 있다.

2. 모래알이 조개의 상처에서 떨어져 있으면, 그 조개의 생명즙의 분비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는 것이다. 이 그림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분비하는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갇혀 있다는 것과, 이러한 분비가 그분의 부활 생명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3. 우리가 그분의 상처 안에, 곧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 안에 남아 있기만 하면, 그분의 생명이 반응하게 되고, 이러한 반응이 바로 그분의 부활 생명의 분비이다. 그분의 부활의 분비는 그분의 부활의 실재이신 생명 주시는 영 안에 있다.

4.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큰 사랑 때문에, 우리가 입힌 그분의 상처(그분의 죽음)는 우리의 감옥이 되었다. 우리가 주님의 죽음 안에 머물며 그분의 생명을 분비하는 부활을 누리는 중에, 더욱더 새 예루살렘 안에 들어가고 새 예루살렘이 된다.

E. 진주는 구속하고 생명을 해방하는 그분의 죽음과 생명을 분배하는 그분의 부활, 이 두 방면을 가진 그리스도의 분비의 산출물을 상징한다.

1. 두 종류의 분비(분배)는 추구하는 믿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도록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의 죽음을 주관적으로 매일 체험하고, 하나님의 맏아들과 같은 형상을 이루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영(부활의 실재)의 넘치는 공급에 의해 그리스도의 부활을 주관적으로 매일 체험할 것을 요구한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에 의해서만 그분의 죽음을 체험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에 의해서, 우리는 우리의 가련한 자아를 십자가에 계속 둘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얻는다.

3. 그리스도의 죽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만 체험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에 의해서만 우리에게 실재가 될 수 있다.

4.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 곧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재이신 그 영이신 그리스도를 계속 접촉함으로 십자가에 머물 수 있다.

F. 아가(雅歌)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추구하는 이가 십자가 안에 머물기를, 그분의 죽음 안에 머물기를,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에 지속적으로 머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묘사해 준다.

1. 십자가의 죽음 안에 머무는 것은 험한 길을 따라 첩첩산중의 바위틈들과 높은 낭떠러지의 은밀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이다.

2. 그리스도는 그분의 연인을 자아 성찰이라는 낮은 상태에서부터 일어나 벗어나도록 힘을 주고 격려하시기 위해, 그녀에게 그분의 부활 능력을 보여 주심으로 그녀에게 힘을 주시고, 그분의 부활의 번성하는 풍성에 의해 그녀를 격려하신다.

3.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아닌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연인들인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부인함으로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한다.

4.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에 의해서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와 하나 됨으로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룰 수 있게 된다.

5. 부활의 실재는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인데, 이 그리스도는 완결되신 영으로서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거하시고 거듭난 영과 연합되셨다. 바로 이러한 연합된 영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자아에서부터 구출되고 하나님의 새 창조물 안의 새사람으로 변화되기 위해 십자가와 하나 될 수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을 건축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 거룩한 성의 길은 성 자체와 같이 신성한 본성을 상징하는 순금이다-21:18, 21, 벧후 1:4.

A. 금은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성이 순금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새 예루살렘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에 속하며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을 그 요소로 갖고 있음을 상징한다.

B. 생명수의 강이 순금으로 된, 그 성의 길 가운데로흐르고 있다는 것은 신성한 생명이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백성의 일상생활을 위한 유일한 길인 신성한 본성 안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 신성한 생명이 흐르는 곳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다니는 거룩한 길인 신성한 본성이 있다. 또한 신성한 본성의 거룩한 길이 있는 곳에는 신성한 생명이 흐르고 있다.

2. 신성한 생명과 거룩한 길인 신성한 본성은 항상 함께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수의 강은 이 신성한 길을 따라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고, 이 생명의 길 안에 행함으로써 우리는 그 강을 누린다.

C. 신성한 본성은 하나님의 존재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사랑이시며, 빛이시다. 영은 하나님의 인격의 본성을 가리키고,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을 가리키며, 빛은 하나님의 표현의 본성을 가리킨다.

1. 신성한 본성에 동참할 때, 우리는 영과 사랑과 빛이신 하나님을 누린다.

2. 아침에 주님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는 그 영이신 주님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고 사랑의 사람이 될 것이다. 더욱이 우리가 무엇을 말하든 그것은 빛일 것이고, 무엇을 행하든 그것은 수정처럼 투명할 것이다.

D.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은 나누어질 수 없다. 신성한 본성은 신성한 생명의 실질이고 신성한 생명 안에 있다.

E.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하나님-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소유하고 있고 하나님의 종()에 속한다.

F. 신성한 본성에 동참한 사람은 신성한 본성을 누리고 신성한 본성에 참여한 사람이다.

1.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누리는 것이다. 신성한 본성에 동참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의 풍성과 요소와 조성 성분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 우리가 신성한 본성에 동참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신성한 본성이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에 의해 살아야 한다.

G. 우리는 마태복음 2820, 요한복음 657, 738절과 39, 1028절과 29, 1419절과 20, 23, 155, 1613절부터 15절까지, 고린도후서 129, 에베소서 320절에 있는 약속들과 같이, 하나님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들을 통해서 신성한 본성을 누린다.

H.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바로 세상에서 정욕으로 부패되는데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벗어나고 동참하고, 동참하고 벗어나는 이러한 순환 안에서 살아야 한다.

I. 우리가 하나님을 누리고 그분의 존재의 풍성에 동참한다면, 우리는 신성한 본성으로 조성되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과 똑같이 될 것이고, 우리의 온 존재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분을 표현할 것이다.

J. 우리가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며 하나님의 온 존재를 누리는 동안에, 신성한 본성의 풍성은 완전히 발전될 것이고,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넉넉히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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