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 2일 주님의 영광스럽게 되심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하나를 위해,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주님께서 하신 기도
오늘의 양식
주님의 노예 2014-06-02 , 조회 (43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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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누림

 

12:49-50 나는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왔습니다. 이 불이 이미 붙었다면, 내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나에게는 받아야 할 침례가 있는데, 그것이 성취되기까지 내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이 해방되는 것은 땅에 불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 불은 영적 생명의 충격력, 곧 해방된 주님의 신성한 생명에서 나온 충격력이다. 땅에 불을 던지는 것은 이 땅의 사람들을 태우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침례 받으셨을 때, 그분의 신성의 영광이 해방되었다. 그분께서 부활하신 때로부터 불이 이 땅에서 타오르고 있다. 이 불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끝까지 번졌다. 오늘날 이 불은 온 땅에서, 미국, 러시아, 루마니아, 폴란드, 브라질,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타오르고 있다.

 

오늘의 읽을 말씀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자-어린양이심을 본다. 그분은 사탄을 패배시키시는 사자이시며, 우리를 구속하시는 어린양이시다. 요한계시록 56절은 또 내가 보니, 보좌와 네 생물 한가운데에, 그리고 장로들 한가운데에 갓 죽음을 당하신 것 같은 한 어린양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 어린양은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셨는데, 이것은 온 땅에 보내어지신 하나님의 일곱 영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일곱 눈, 일곱 영은 불꽃같다.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의 일곱 영을 보좌 앞에서 불타는 일곱 개의 등불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태우는 불이시다. 우리 모두는 이 불로 태워졌다. 우리는 이 불에 의해 함께 모였고, 이제 이 불이 다른 많은 사람을 불태워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이 해방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해 부활 안에서 아버지에 의해 신성한 영광으로 영광스럽게 되신 것이다.

요한복음 739절 하반절은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많은 성경 독자들은 영광스럽게 되다라는 말 대신 부활하셨다라는 말이 사용되어 예수님께서 아직 부활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라고 한다면, 이 구절을 이해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아직 부활하지 않으셨기 때문에라고 말하지 않고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 영광스럽게 된 것부활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주님께서 부활하실 때 영광스럽게 되셨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426절에서 주님은 자신에 관하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분을 영광 안으로 이끈 그분의 부활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신 것, 즉 영광스럽게 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 생활 중에, 아버지께서 그분을 영광스럽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으며 아버지는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기도의 주제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의해 영광스럽게 되심이다. 사도행전 313절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넘겨주었고, 또 여러분은 빌라도가 그분을 석방해 주기로 결정하였을 때에도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거절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그리스도의 기도에 대한 아버지의 응답이었다. 주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그분을 영광스럽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셨고, 아버지는 그분을 부활시키심으로 그분께 응답하셨다.

신약의 사상에 따르면, 부활은 생명의 해방이며, 이러한 생명의 해방은 영광스럽게 되는 문제이다.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바로 전에 아버지께서 그분을 부활시키시기를 기도하지 않으셨고, 아버지께서 그분을 영광스럽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셨다. 우리가 지적했듯이, 아버지는 주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써, 영광스럽게 됨에 관한 이 기도에 응답하셨다. 그러므로 영광스럽게 됨은 부활과 동의어이다. 그러나 영광스럽게 됨이 부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활이 영광스럽게 됨을 위한 것이다. 부활은 원인이고, 영광스럽게 됨은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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