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누림
계 21:12 그 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이 있었고, 열두 문이 있었습니다. 그 문들에는 열두 천사가 있었으며,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21 또 열두 문은 열두 진주로 되어 있었는데, 그 문들은 각각 하나의 진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의 길은 투명한 유리와 같은 순금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 금은 신성한 본성을 상징하고 보석은 그 영의 변화시키는 일에 의해 산출된 것을 상징한다. 진주의 의미는 그것이 산출되는 방법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진주는 죽음의 물 속에 있는 조개에서 산출된다. 조개 안에 작은 모래알이 들어와 상처를 주게 되면, 조개는 모래알 주위에 생명의 즙을 분비하여 그것을 귀한 진주로 만든다. 이것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물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상처를 받으시고 그분의 생명의 즙을 우리에게 분비하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표현을 건축하기 위해 우리를 귀한 진주로 만드시는 것을 묘사한다.
오늘의 읽을 말씀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거의 모든 것이 그분의 경륜의 한 방면을 예시(例示)해 준다. 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셨을 때 자연에서 발견되는 많은 것들을 비유로 사용하셨다. 빛과 밀과 양식과 심지어 진주를 산출하는 조개까지도 비유이다. 살아 계신 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죽음의 상황 안으로 들어오셨고 거기서 사셨다. 죽음의 물속에 사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은 우리들에 의해 상처를 받으셨다. 그분께 상처를 입힌 후 우리는 그분의 상처 가까이에 머물렀다. 이것은 우리가 회개했고 그분을 믿었고 그분을 영접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분의 상처에 머무는 동안 그분은 그분의 부활 생명의 생명 즙을 분비하시고, 이 생명 즙은 우리를 감싸며 결국 우리를 진주로 변화시킨다. 그리스도의 상처에 머무름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생명을 받아 거듭났다. 거듭난 후 그곳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우리는 또한 변화되고 진주가 된다.
거룩한 성의 열두 문이 열두 진주라는 것은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분비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는 것이 그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입구는 이스라엘로 대표되고 지키는 천사들이 바라보는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킨다. 그러므로 진주는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는가? 성벽을 넘었는가? 성벽은 너무 높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진주 문들을 통해, 즉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나누어 주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조성된 문들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다. 주님을 찬양하자! 우리는 모두 이런 방법으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우리는 자백했고 회개했으며 그분의 죽음을 소중히 여겼고 그분의 상처에 머무는 것을 누렸다. 그 즉시 우리는 우리를 거듭나게 했고 이제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는 생명즙을 받아들였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우리의 체험을 통해 우리는 진주 문들을 통과했고 지금은 성 안에 있다. 할렐루야!
문마다 하나의 진주라는 사실은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유일하고 한 번 만에 영원히 성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승리의 죽음과 생명을 나누어 주는 부활에 의해 한 번 만에 영원히 거듭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이 성의 열두 문에 새겨져 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며, 이것은 새 예루살렘의 문에 율법을 대표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율법은 거룩한 성의 모든 교통과 출입을 감시하고 관찰함으로써, 그러한 교통과 출입이 율법의 요구에 부합된다는 것을 보증한다. 이같이 성의 모든 교통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른 것이다.
우리가 진주 문을 통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은 율법에 따른 것이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회개하고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서 이렇게 말해야 했다. “오, 주 예수님, 당신은 저의 죄들을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저를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 주님, 저는 죄로 가득하고 큰 죄를 많이 범했으며 죽는 것 외에 아무 가치도 없음을 자백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를 위해 죽으셨다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런 종류의 회개와 자백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며 우리가 그 성에 들어가는 것을 합법적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