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의 과정 (창세기 결정연구3 #6 by. br RK)]
과.정.은 일련의 단계들이며 특별한 결과 산출물로 이끄는데,
하나님은 목표, 생명 안에서 성숙에 이르게 합니다.
타고난 생명을 바꾸는 변화는 마지막 성숙의 단계에 도달합니다.
바울은 충분히 성장한 성숙에 이르자고 합니다.
야곱의 성숙의 과정에서 내적인 체험들은,
라헬을 잃고 벤자민을 얻고, 요셉을 잃은 것,
야곱이 크게 변화는 되었지만
아직 신성한 생명으로 충만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요셉과 관련되어 선호가 있었고
이에 대해 아들들이 느낌이 아주 강해서 요셉을 죽이려 했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야곱이 이것으로 인해 많은 다루심을 받은 것에 인상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죽임을 당했구나! 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초기 충격 이후에 활동이 없는 생활을 살때
내적으로 고려해 보았습니다.
어떤 최종적인 결정을 하려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매번 야곱이 요셉을 생각할 때마다 깊은 속을 찢는 고통이 있었고,
그래서 수천 번 존재를 열고 하늘에 속한 비가 채울 수 있었습니다.
라헬과 관련된, 요셉과 관련된 많은 느낌들이 비워져야 했고
모든 부분에 도달할 때 까지 채우는 과정이 성숙의 과정입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점차 점차 존재 깊은 곳이
닫혀있는 부분이 없이 세세하게 열리고 그릇을 채우는 것입니다.
더구나 기근의 압력으로 타고난 애정을 만지셨습니다.
베냐민이 가야했고,
야곱이 준비가 되었고 말이 바뀌는 것이
환경에 대한 반응이 바뀐 것이었습니다.
"정히 그렇다면 이렇게 하여라(창43:11),
...만일 내가 자식들을 잃어야 한다면 잃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14)?"
주님 괜챦습니다...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생명이 성숙한 사람인 야곱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주님을 열광적으로 찬양했습니까?
아직 슬픔과 기쁨이 남아있는 것을 표현했습니까?
화를 냈습니까? 요셉이 어떻게 이집트를 간거야? 나에게 어떻게 한거냐?
그렇게 책망하고 탓할 수 없었고 느낌을 가질 수 조차 없었습니다.
마음은 무뎌졌지만 영은 부흥되었고,
혼과 영이 분리 되었습니다.
요셉과 야곱에게는 경건한 감정, 신성하고 인간적인 감정이 있습니다.
존재의 깊이가 하나님께 열려야 하고 선호, 타고난 느낌을
모든 것을 비워내야 흘러넘칠 때까지 생명으로 채울 것이고,
축복과 신언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
성숙되는 것은,
우리를 바꾼 신성한 생명으로 가득채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목표를 변화를 넘어서 성숙에 이르도록 높여야 합니다.
전진합시다. 이끌리도록 자원해야 합니다.
생애를 마치기 훨씬 전에 성숙하여 주님께 유용하기 원합니다!
리형제님과 자매님은 수십년 전에 사도이후에
모든 세계에 걸쳐 모든 사역자들이 도달하지 못한 성숙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초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원수에게 속임당하지 말고
생명 안에서 진정한 성숙은 우리 가운데 현존합니다.
나이든 성도들이 생명 안에서 성숙하지 못한것이 슬픕니다.
60~80세가 가장 유용할 때라고 합니다.
계속 계속 해서 조금씩 신성한 분배아래 평범한 생활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많은 활동들이 있습니다.
야곱의 운명이 정해졌기 때문에 참된 의미에서 그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깨달았다면,
그저 어떤 체험도 없는 편한한 생활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숙은 적심과 확대가 있습니다.
무게와 강도의 압력을 통해 용량이 확장되는 문제입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져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을 구원하며 과정을 지연시킬 수 도 있겠고,
장자권을 신뢰하고 주님을 누리고, 제사장과 왕을 실행하고,
사랑 안에서 주님을 추구하고, 매일 헌신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갈 수록 더 어려워지고 (손실이 더 커진다는 것),
더 쉬워진다는 것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넘치는 공급이 있다는 것)
혼의 고통에서 구원받고 주님과 함께 즐거움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생명이 성숙한 한 사람을 보겠지만,
그 사람이 수년에 걸쳐 남이 모르게 매일 받아 온,
축적된 성령의 징계는 볼 수 없습니다.
수년에 걸쳐 은밀하게 받아온 어떤 일이 일어난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외적인 정보에 따라 기도하다가 직감이 예민해지고 몸 안에서
어떤 비밀한 느낌을 감지하여 은밀하게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몸 안에 기도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라헬을 잃는 것은 한가지이고,
우리 속존재를 점유하고 있는 것을 잃는 것이 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하나님으로 대치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성숙에 이르려면 큰 손실을 당해야 합니까?
이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공급"하시는 것은 오직 현재 시간,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장래, 미래를 상상 합니다. 손실을 상상합니다.
장래를 위해서는 공급이 없습니다. 미래에서 돌아와서
지금을 살아야 합니다.
그 손실이 발생할 때 이미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반드시 그 손실이 있어야 하지만, 장래를, 상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잃을 때가 되었을 때, 성숙에 이를 때가 되면 공급이 거기 있을 것입니다.
공급이 있을 것이고 손실이 있을 것입니다.
손실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숙되기 위해 야곱은 먼저 그의 마음의 보물인 요셉을
잃어버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지점까지 자라야 합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 사람들입니다.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를 인격과 생명으로 취해서
그리스도안에서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될 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한 새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이것을 위해 열망을 갖기 원합니다.
이것을 대해서 겁을 먹지 말기 바랍니다.
조만간 도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될 것이라면 빨리 되는게 어떻겠습니까?
나중에 되는 것보다 빨리 되는게 어떻습니까?
누군가가 된다면, 어디선가 된다면
내가되고, 여기서는 안되겠습니까?
주님께 열어드립시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게 하셔서
우리를 성숙에 과정에 이끌도록 합시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