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7일 / 홍콩
여러분이 나를 봤을 때 기쁜 것같이 나도 여러분을 보니 기쁘군요. 제 기쁨이 더 큰지, 여러분의 기쁨이 더 큰지 모르겠네요.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아시다시피 제가 중풍이 온 것은 4월 24일이었고, 한국에서 65일을, 홍콩에서 77일 동안 휴식을 취했고, 그다음 미국으로 가 9월초부터 10월초까지 머물렀습니다. 제가 막 토론토에서 돌아왔을 때, 몸은 좀 나아졌지만, 지금은 아직 회복하는 과정가운데 있습니다. 먼저는 여러분의 기도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군요. 저는 이번 일을 통해 저의 몸은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 속했다는 것은 깊이 느꼈습니다. 저의 몸은 저의 몸이 아니라 주님의 몸입니다. 절강성의 이 형제님께서 (전화통화로) “기억하십시오, 형제님의 육신은 형제님의 것이 아닙니다. 몸의 것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저를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몸은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오늘 오후 여러분을 모시고 관념을 하나 바꾸고자 합니다. 메시지를 들으려 하지 마십시오. 오늘 저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먼저 몇 가지를 말하고 싶은데 첫 번째는 먼저 이번 주말 우리가 모인 이 집회의 성격이 어떠한지 정확히 교통하고 싶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정확히 알 때 실망도 없을 것입니다. 몇 개월 전 제가 홍콩에서 휴식을 취할 때, 어떤 형제님께서 기업가들과의 섞임을 가져야 한다고 교통하셨는데, 저도 이러한 섞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섞임이 무엇입니까, 섞임은 여러분 모두가 함께 고르게 조화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오후 제가 기뻐하는 것을 모두들 보셨겠지만, 저는 대부분의 형제자매님들을 모릅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저는 모르지만, 여러분의 구원받은 간증이나, 복음을 전한 간증 등을 듣기를 원합니다.
예전에 리형제님께서 네 가지 계층에 복음을 전해야한다고 하셨는데, 첫 번째 계층은 어린아이들이고, 두 번째는 청소년이며, 세 번째는 지역사회이고, 네 번째는 각계각층입니다. 사회 안에는 상업계, 학계, 군사계, 정계 등 많은 계층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계층에 모두 복음을 전했지만, 네 번째 계층에는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어린아이들, 청소년들,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했지만, 각계의 복음은 어떻게 전해야할지 몰라, 리 형제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이미 이십 몇 년, 삼십년이 되었지만,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단 한 분야, 의사나 간호사 등 의학계만이 대만에서 매년 함께 모이고 있습니다.
그 모임은 다만 함께 모여 제가 방금 얘기한 것처럼 메시지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주로 이 분야에 종사하는 형제자매님들, 즉 의사, 간호사, 의료계종사하시는 분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일 년에 한 번씩 모이고 있습니다. 그 시간에 주로 간증을 하고, 물론, 사역자 형제님들께서 오셔서 부담교통도 조금 합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간증을 함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어떻게 이 업계가 주님의 간증이 될 수 있는지 독려합니다. 누가가 의사였기 때문에, 그 섞임을 누가집회라고 부릅니다. 이 분야 이외에는 다른 섞임은 없습니다.
우리가 몇 개월 전에 말했지만, 사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가들인데 그들은 그들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같이 어떤 규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직장인들은 월급을 받고, 카드만 찍으면(출퇴근카드) 되기 때문에 기업가들의 스트레스가 직장인들보다 훨씬 큰데, 전문직 인재인 의사나, 변호사도 그렇습니다.
유일하게 기업가들이 매일 사업에 관해 고민하고, 많은 문제들을 걱정합니다. 다른 것들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아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분명히 말해서 이 집회는 저의 집회가 아니고, 이일도 저의 일이 아닙니다. 제가 올해는 있지만, 내년엔 없을 수도 있고, 심지어, 이번 주말동안 오늘은 있지만, 내일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부담을 매우 지지하고 그래서, 그 부담을 위해 이곳에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요임무는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번 주말 정말 기회를 붙잡아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책임이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책임을 져야 합니까, 방금 우리 집회가 시작될 때 제가 홍콩의 허형제님께 여는 교통을 부탁드렸는데, 그렇다고 허형제님의 책임도 아니고 홍콩의 책임도 아닙니다.
그래서 섞임이 계속 되기 위해 주로 국내에 계신 형제자매님께 요 며칠 동안 함께 동역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 혹은 내일 모두들 지역에 따라 조를 나누셨을 텐데, 저는 그 나눈 조안에 그 지역이나, 도시, 혹은 성안에서 연락망을 책임질 지체가 세워지길 권면합니다. 특별히 부담이 있으시다면 세워지셔야 합니다. 여러분 각 조에 세워지신 분들이 이번 주일 전에 한번 다 같이 모이시고, 그중에서도 연락망을 총 책임지실 분을 세우십시오. 그렇게 세워진 총 책임형제님이 가서 실행할 때 홍콩교회에서도 도울 것입니다.
만일 내년 홍콩 이 지역이 필요하다면 와도 좋습니다. 만일 내년 미국이 필요하다면 역시 좋습니다. 만일 대만이 필요하다면 역시 좋습니다. 여러분이 어디를 원하든 모두 좋습니다. 동남아의 형제자매님들이 오셨는데, 여러분이 동남아를 원하시면 역시 좋습니다. 교통만 하십시오. 어쨌든 여러분은 사장이고, 저희는 알바생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대신하여 일하겠습니다. 만일 이곳이 편하다면 다시 이곳에 오셔도 좋습니다. 저는 이미 이곳 책임형제님과 교통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는 주인의 위치도, 책임자의 위치도 아니며, 장소 제공자일 뿐입니다. 이것이 여형제님의 부담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저의 부담이 아니며, 정확히 말해서 주님의 부담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하고 싶은 교통의 첫 번째 입니다.
그럼 두 번째 교통으로 넘어갑시다. 여러분은 모두 일하시는 분들이신데, 그 전에 먼저 교통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이곳에서 해서는 안 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이곳에서 장사하지 마십시오. 명함을 교환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곳에서 장사하셔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업을 하기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그렇고 봉사하시는 장로형제님들도 그렇고, 저 또한 이곳에 봉사자형제님들을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이시간은 모두가 섞이는 시간입니다. 첫 번째, 이곳에서 장사하지 마시고, 일에 관한 말도 하지 마십시오. 두 번째, 재정적인 부담을 가지지 마십시오. “여러분 모두 기업가이니, 우리 이곳에 집회소를 세우고, 저기로 확장하고...” 이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세 번째, 여러분 모두 각지교회에서 봉사하고 계신데, 각지 교회의 생양교건, 집회, 집회 생활 등은 모두 각 지역에서 책임질 일입니다. 여기에서는 그런 교통들을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세 가지 해서는 안 될 일들입니다.
그럼 세 가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첫 번째는 기도입니다. 저는 저의 이 부담이 이 교통가운데 우리에게 산출되고, 자라고, 혹은 만들어져 아주 많은 기도그룹들이 생기길 원합니다. 예를 들어 한 달후에도 제가 특별히 세우지 않아도 형제님들이 오히려 그러한 부담으로 매일매일 기도하고 매일매일 기도해야 하는데, 꼭 한 곳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도, 전화로도 가능합니다. 저는 자매님들도 기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정말 필요한 일입니다. 여러분, 무슨 일이든 돈으로 할 수 있지만, 영에 속한 일들은 돈으로는 할 수 없고, 다만 기도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만원(한국돈170만원정도)을 준다면 뭐든 하려면 할 수있지만, 여러분이 사람을 구원시키려 할 때 그가 주님을 믿는 것은 기도만이 이룰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지만, 기도를 하면 할수록 정말 모든 것에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공허합니다. 어떻게 그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습니까? 한사람이 주님을 믿지 않다가 믿게 된다면 얼마나 기적이고 기적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몇 개월 전 제가 홍콩에 있을 때 한 형제님이 어떻게 믿지 않다가 믿게 되느냐며, 그것은 정말 기적이라고 말할 때 실재를 만졌습니다. 이 형제님은 어릴 때부터 진화론, 무신론 등 이러한 사상들을 가진 형제님이었습니다. 사람은, 정말이지 하나님을 만나면 변합니다!
첫 번째 형제님들, 정말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모두 바쁘고 시간이 돈이라는 것을 저도 압니다. 하지만 기도는 그 어떤 것보다 효력이 있습니다. 저 자신을 포함하여 여러분들에게 말하자면, 혼자 하는 기도는 오래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저의 자매가 지금 여기 앉아있는데, 많은 때 저의 자매가 저를 일깨워 줄때 기도하곤 하는데, 그럴 때 비로소 둘이 기도를 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때 우리가 돌보는 사람들이 변화할 때가 있는데, 어떻게 변화된 것입니까, 바로 기도가 변화시킨 것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 기도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두 번째는 간증하는 것입니다. 진형제님께서 사역의 말씀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간증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지금 주의 회복 안에 일 년에 일곱 번 있는 사역의 말씀은 정말 좋습니다. 여러분 모두 일 년의 일곱 번의 집회에서 좋은 말씀을 듣기 위해 와서 듣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정말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그러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간증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섞임에서 여러분에게 하나의 규범이나 구조를 권면합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매일 영에 속한 공급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영에 속한 공급은 휴대전화로도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매일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그것들을 공급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매일 보내고 받다 보면 어떤 분들은 매일 기도할것이고, 또한 매주 간증을 할 것입니다. 그러한 간증은 실제로 이번에 여러 가지 있었는데, 이 집회가 시작되고 이미 열 몇 개의 간증들이 모아졌습니다 .
제가 여러분께 교통하고 싶은 것은 이 이틀 동안 어떤 좋은 메시지를 들으려 하지 마십시오. 전에 특별집회 때는 모두 하나의 개요에 큰제목 123, 큰 중점, 두 번째 중점 세 번째 중점, 첫 번째 작은 단락, 두 번째 작은 단락, 세 번째 작은 단락 등으로 나뉘었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개요는 어디 있냐고 물으시는데 개요는 필요 없습니다. 개요는 좋은 점이 있지만, 매번 각 사람에게 개요를 주면 여러분은 그 개요를 가져갈 것이고, 어떤 형제님이 이번에 어떤 메시지였냐고 물으면, 여러분은 어떤 형제님이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고 어떻고를 교통하셨다고 말하고 바로 그 개요를 탁자 밑에 놓을 것입니다. 이것이 좋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돌아가 누군가 여러분에게 물었을 때 여러분이 정말 이번에는 우리가 함께 우리 주위의 그런 복음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훨씬 더 좋을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간증은 많아도 나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매주 이러한 간증들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께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구원받은 지 5년 이내이신 분계십니까? 손들어 주세요. 너무 적군요! 다음 섞임 때는 여러분이 복음친구들을 꼭 데려오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이 집회가 믿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이나 복음친구들은 우리에게 모두 가장 좋은 소식들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십니다.
세 번째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세 번째는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형제님의 부담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부담을 가지고 왔겠습니까? 그것은 리 형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계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맡아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가 무엇입니까? 물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추구하고,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고, 돈이 조금 있다면 헌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이 모든 것들은 어느 한 방면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주변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 저는 매우 기쁩니다. 저는 봉사자 형제님들에게 말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봉사자 형제님들은 이러한 부담을 안고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부담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누군가에게 이러한 부담을 전하라고 여러분을 부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테두리 안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 가지 해선 안 될 것과 세 가지 해야 할 것들을 먼저 말한 것은 이것이 이 집회의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이 이틀, 삼일동안 간증을 한다면 모두 서로에 대해 알게 될 것입니다. 내일 저녁 배를 타서도 여전히 간증을 한다면 또한 서로를 알게 될 것입니다. 먼저는 기도하고, 두 번째로 간증이 되고, 세 번째로 복음을 전하십시오. 주 예수님! 긍휼을 베푸시어, 이러한 일들이 온전케 되게 하소서!
그럼 좋습니다. 부담을 말하겠습니다. 부담을 가지고 왔으니, 부담을 말하겠습니다. 저의 부담이 무엇입니까? 매우 간단합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면 너무나도 가련합니다.
허드슨테일러가 중국으로 와 복음을 전할 때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항주의 첸탕 강에서 한밤중에 어부가 배를 젓는 것을 보고 있는데, 그 강의 맞은편에서 풍덩하고 어떤 사람이 물속에 떨어져 곧 익사할 듯이 보였습니다. 그는 사공에게, 저 사람이 곧 죽을 것 같으니, 빨리 가서 구해주자고 말했습니다. 이 사공은 오히려 너무나 태연하게 나에게 얼마를 줄 것입니까? 라고 말하였습니다. 허드슨테일러는 내가 얼마가 있든 당신에게 주겠다! 빨리 가서 저 사람을 구하자, 사람을 구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사공은 그와 흥정을 하다가 돈이 부족하다고 돈을 더 요구하였습니다. 결국 흥정을 마치고 사공이 뛰어들었지만, 그 떨어진 사람은 결국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그가 이 이야기를 영국인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여기 앉아있는 영국 사람들은 분명 중국인은 흉악하고 잔인하고 도덕이 없고, 어쩜 이렇게 비열하고 천하며 사람이 죽었는데 구하지도 않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을 해보십시오. 성경에 주 예수님은 사람의 영이 육신보다 중요하지 아니하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사람의 몸이 오늘 죽게 되었을 때, 여러분들이 이렇게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정죄하는데, 그럼 사람의 영과 혼이 죽으면 그것은 또 어떻습니까?” 모두 말이 없었습니다. 그가 말하고 나서 눈을 감았고 중국인들이 나란히 다섯 명씩 줄을 지어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지옥이 있는 그곳을 향하여 계속 앞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렬은 영원히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죽지만, 저기서는 또 다시 태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앞으로만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는 천개의 목숨이 있는데 그 생명들을 모두 주님께 드리겠다.” 라고 허드슨 테일러는 말하였습니다.
복음은 하나의 지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의 부담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변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방금 그 찬송가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여러분은 흩어진 사람들을 가련하게 여겨야 하고, 그런 흑암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가련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찬송가 가사에서 아침의 빛이라고 말하는데, 아침의 빛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누가복음 1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은(78하반절-79절) “....이로써 돋는 해가 높은 곳에서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라고 말합니다. 복음이 임하는 곳에 주님의 신약도 따라 옵니다. 신약이 온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바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쁜 소식이고, 어두움은 물러가며, 슬픔도 사라지고, 그 시대의 사람들은 구주가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4장에 이르러 누가복음은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려고 나왔는데 예수님께서 나오실 때 갈릴리, 즉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으로 가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사야서에서 그는 주의 영이 그에게 임했으니, 가난한자와 연약한자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사실 사업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매우 가난하고 매우 공허합니다. 이주 전에 어떤 사람과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36살에 시골에서 자라, 북경대를 졸업하고 정말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상장기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회사가 상장될 때, 그는 매우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전에는 필사적으로 이 목표에 도달하려고 했지만, 막상 이 목표에 도달하니,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이후에 그는 여행을 떠났고, 삼사개월 정도 전 세계를 여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인도 고승을 찾아가고, 티베트의 사라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자 하여 도를 구하러 왔다 갔다 했지만, 구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주 전쯤 그는 그의 부인과 함께 침례를 받았고, 너무나 기뻐하였습니다. 그가 간증하길, “나는 기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모든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실 전능하신 분이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36살, 그는 가난한 자였습니다. 외면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내면이 가난하고 마음이 공허하였던 자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주 예수님도 없습니다. 있지 말아야 할 술 담배나, 죄악은 온몸에 다 있습니다.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있지 말아야 할 것은 한가득 입니다. 주 예수님이 오실 때 그는 구주이시고, 그가 복음 전하며, 사람에게 하나님의 희년을 전합니다. 그렇다면 희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재산들을, 가난하게 되어 다 팔고 몸도 노예가 됩니다. 한 사람이 복음이 없을 때 그는 바로 노예입니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부자는 사실 없습니다. 모두가 돈의 노예입니다. 돈의 노예만 있을 뿐 부자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절대 돈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다만 묶일 것이고, 그 묶임 당함은 바로 노예입니다. 복음이 왔을 때, 이런 모든 사람들은 해방되었습니다.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마치시며, 이것은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사람의 희년이라고 말합니다. 이 복음이 어디에 전해지든 그곳에 희년이 있고 우리는 해방을 받아 우리의 유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유업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유업은 바로 주 예수님, 곧 하나님이 우리의 유업입니다. 복음의 네 가지 중점으로 첫 번째, 주 예수님은 그분의 땅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미얀마나 아랍국가 등으로 가려고 하지 말고, 자기가 머무는 그 곳에서 전해야 합니다. 그 이후에 주 예수님이 그분의 땅으로 오셨을 때, 그 땅의 사람들은 그분을 거절하였습니다. 어떤 사업하는 사람들은 어느 날 이런 사업에서 내가 해방되어 전시간 훈련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꿈일 뿐입니다. 단지 멀리멀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고, 이런 관념은 승려가 되려고 하는 관념과 같습니다.
세상의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고 복잡하니, “공양이나 드리러가자.” 라고 하듯이 전시간 훈련이나 받으러 가자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주 예수님은 그분의 땅으로 오셨습니다. 두 번째, 그분은 큰 집회를 하지 않으셨고, 주위의 비천한자들과, 집에 있는 친척들, 친구들이 있는 그곳에서 복음전하셨습니다. 진정한 복음은 바로 자기의 테두리 안에서 하나하나 전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매우 중요한 것은 주님의 영이 나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전한다면 주님의 영은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기도할수록 스스로도 주님의 영이 내게 임했고, 운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저는 올해 조만간 기업가들의 섞임이 세워질 것을 믿으며, 주님의 영이 이곳에 있고, 또한 우리에게 임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할 대상이 누구입니까? 바로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부유하고 넉넉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입니까? 바로 여러분 주변에 있는 돈 많은 부자들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투시경으로 본다면 마음 안에는 전부 공허하고, 썩어있는 것들 뿐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복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담입니다! 이번 주말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간증을 하기 원합니다. 이제부터 많은 간증들을 하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제가 전형제님께도 말했지만, 우리 여기에 무림고수들이 매우 많고, 여러분 모두가 무림고수들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영을 해방하여 여기모인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무슨 말이든 다 해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삼일을 해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형제님?(앤드류 형제님)의 개인 간증
먼저 제가 하는 간증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2004년 12월 31일 병을 얻었는데, 그때 저는 방에 혼자 있었습니다. 저는 여태껏 스스로를 가련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그들은 모두 홍콩으로 헌신하러 갔는데, 그때는 헌신의 바람이 불 때였기 때문에 다들 헌신하러 갔을 때 저는 방안에 혼자 있었고, 매우 외로웠습니다.
이때 저는 56세였고, 제비뽑기도 뽑히지 않는 내가 암에 걸렸고, 저의 그 암은 생활습관의 잘못이 아닌,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유전이었을 것입니다. 왜 내가 이렇게 됐을까 하고 스스로를 가련하게 여겼습니다. 그때, 정말 주님은 나와 함께 계셨고, 바로 나의 방에서 주님은 나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세어보았는데 일곱 가지 감사한 항목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주님께서 나를 낳으시고 호흡하게 하셨으며, 사람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인도나, 라사(티베트)가 아닌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나게 하신 것도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태어날 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것도 감사했습니다. 두 번째 가장 감사한 것은 제가 16세에 주님을 믿었고, 물론 기독교집안에서 자랐지만, 교회를 떠나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저까지 형제자매가 총 7명인데, 전부 교회 안에서 자랐고, 지금은 저만 이곳에 남게 되었습니다. 저만 오늘날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저의 친구들 중 성공하여 이름을 날린 사람들도 많아, 중학교 동창회에서도 많이들 축하해 줍니다. 그들은 그들의 이름을 날렸지만, 저는 주님을 믿었습니다. 말하자면 눈물이 흐릅니다. 주님을 믿은 것, 주님을 만난 것은 내 인생에 가장 보람 있는 일입니다. 이번에 한국에 있을 때, 그들은 중풍이 올 때 쉽게 우울해진다고 말하며, 심리치료사를 찾아주었고, 그는 저에 대해서 캐내려고 하였으며, 걱정이 있냐고 물었고, 저는 걱정이 없다고 말하였는데 또 그가 그럼 왜 웃지 않느냐고 물었고, 저는 당신이 나에게 웃을 일을 만들어주면 웃지만, 없다면 웃을 이유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저의 인생에 대해 만족하냐고 물었고, 저는 매우 만족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만일 다시 제가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저는 다시 이 인생을 살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믿게 되고 만나게 된 것은 제 인생의 가장 감사한 일입니다
16세에 한 형제님이 말씀을 잘 읽어보라고 권면하셨고, 저는 진지하게 열심히 읽었습니다. 읽고 나서 정말 변화됨을 느꼈습니다. 전에는 아버지, 어머니의 하나님이었다면, 지금은 정말 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저는 정말 모든 것을 잘해내고 싶었고, 그래서 모든 힘을 다해 스스로의 양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잘하려면 할수록 잘할 수 없고, 양심을 만족시키려 노력하면 할수록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 종일 자신을 참소했었지만, 말씀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구원의 기쁨을 맛보았고,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 소년 때의 우의”라고 말하는데 정말 주님이 저를 너무 사랑하신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주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거창하게 말로 표현할수 없었습니다. 연약하여 넘어지는 것은 누구나 다 있지만, 저는 주님의 보호하심으로 계속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모든 일에 주님을 첫째위치에 놓고 또 최대한 주님을 첫째위치에 두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제가 주님을 박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고, 주님도 저를 절대 서운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거래는 매우 좋은 거래입니다. 저는 다만 약간의 헌신을 하였지만, 주님은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구원받고 지금까지, 정말 구원의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첫번째, 여러분 스스로 구원받은것을 가장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두번째는 다른 사람이 주님을 믿는것을 볼때도 기뻐해야합니다. 한사람이 주님을 얻을때의 기쁨은 정말 대단한 기쁨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이 고봉의 진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고봉의 진리를 전달하려 온것이 아니라, 저의 간증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됐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유혜민 형제님 페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