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15-기도의 의미와 목적
기도
함께평안 2015-02-17 , 조회 (37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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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장에서 우리는 또 한 가지 원칙을 보는데, 주님은 사람을 치료하지 않으시고 오직 부활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원칙은 사람의 연약함을 돕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이다. 그분은 나사로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치료하러 가지 않으시고 그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셨다. 그가 죽은 다음에 가서 그를 다시 살리셨다. 왜냐하면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다시 살리는 원칙은 사람이 가망이 없는 지경까지 이르러 끝나야만 그분께서 오셔서 사람에게 새로운 시작을 주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형제에게 어떤 연약함이 있어서 항상 실패한다. 그가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자신의 연약함과 실패의 느낌에 대해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저는 이 일에서 연약하여 일어설 수 없습니다. 저는 실패할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주님을 방해하는 기도이다. 당신은 연약한가? 물론 연약하지만 아직 연약하여 가망이 없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 당신은 실패했는가? 물론 실패했지만 아직 실패하여 모든 것이 끝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 반드시 당신이 연약하여 가망이 없고 실패하여 끝나 완전히 사지에 이르러야 주님께서 오셔서 당신을 위하여 일하시고 당신에게서 그분의 부활 능력을 표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주님께 가까이 갈 때 이런 연약함과 실패의 방해를 받을 필요가 없다. 연약함이든 실패이든 그냥 내버려 두라. 당신이 이것들을 알고 있다면 주님은 더 잘 알고 계신다. 그분께서 이틀을 더 머무시고 더 오래 기다리시더라도, 주님께서 당신을 사지에 두시고 완전히 끝나고 장사되어 악취가 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시고 완전히 실망하여 더 이상 어떤 희망이 없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시더라도 당신은 할 말이 없다. 주님께서 기다리라고 하시면 당신은 서둘러서는 안 된다. 그분께서 당신의 연약함을 그대로 두시고 당신을 실패 가운데 내버려 두신다면 당신에게는 방법이 없다. 당신이 간절히 구하여도 일어설 수 없고 강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안에서 모든 어려움을 손에서 내려놓는 공과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참으로 가망이 없는 지경에 이르러 완전히 끝났을 때 주님은 오실 것이다. 이것이 부활이며 이것이 구원이다.

다섯 번째 사례는 13장에 기록된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이다. 여기에서는 또 다른 원칙을 보여 주는데, 우리가 주님을 가까이 할 때 주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우리에게서 일하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베드로가 되어서 그의 발을 씻기려고 할 때 겸손하게 “내 발은 절대로 씻기시면 안 됩니다.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그대를 씻어주지 않는다면 그대에게는 나와 함께 나눌 몫이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주님, 내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 씻어주십시오.” 고 말했다. 이것이 우리의 상태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하시려고 하시는데 처음에 우리는 그분께 못하시게 하다가 나중에 그분께서 일하시게 허락해 드리지만, 그때는 더 많은 것을 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의견이다.

우리가 주님을 가까이 할 때 주님은 우리 존재에 몇 가지 일을 하신다. 어떤 것은 우리 존재 안에 일해 넣으시는 일이고 어떤 것은 우리에게서 제거하시는 일이다. 발을 씻기시는 예는 우리에게 있지 말아야 하는 것을 제거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완전히 순종하기를 배워야 한다. 주님께서 발을 씻어 주려고 하시면 그분께서 씻으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주님께서 손을 씻어 주지 않으려고 하시면 그렇게 하지 않으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주님은 그분께서 씻고자 하시는 것을 씻으신다. 주님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하시려는 것을 하신다. 우리는 아무 의견도 말하지 않고 아무 것도 주장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을 접촉하는 다섯 번째 원칙이며, 우리가 배워야할 다섯 번째 공과이다.

여섯 번째 사례는 21장에 기록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생계를 유지하는 것 때문에 세상으로 흘러 떠내려가서, 가장 연약하고 완전하게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을 잊어버렸을 때에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다는 것을 본다. 당시 제자들은 생계 문제 때문에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갔지만,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주님은 그들의 필요를 아시고 그들에게 물으셨다. “여러분에게 먹을 물고기가 좀 있습니까?” 주님은 그들이 고기잡이를 하는 것이 먹기 위한 것임을 아셨다. 그들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십시오. 그러면 잡힐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물을 던졌을 때, 생각지도 못하게 물고기를 백쉰세 마리나 잡았다. 그들이 육지에 올라보니 그곳에 숯불이 있었고, 그 위에는 이미 구워진 생선과 떡이 놓여 있었다.

그날 그들은 바다에서 잡아 올린 물고기를 눈으로 보면서 또 주님께서 육지에서 예비해 두신 물고기를 먹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또 그들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인 그들이 먹고 배부르기 위하여 세상으로 내려가 옛 일을 다시 시작하였으나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셔서 한 면으로는 기적을 행하셔서 그들이 바다에서 백쉰세 마리의 물고기를 잡게 해 주시고, 한 면으로는 또 육지에서 그들에게 구운 물고기를 먹이셨다. 그들은 한 면으로는 먹었고 한 면으로는 보았으며 또 한 면으로는 생각했는데, 그 맛은 분명히 시고 달고 쓰고 매운 각양의 맛이 다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접촉하는 일에서 한 가지 원칙은 바로 우리는 변할 수 있지만 주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기도의 의미와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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