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주 5일
아침의 누림
히 4:14-16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계시니, 우리가 시인한 것을 굳게 붙잡도록 합시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없으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혹을 받으신 분이시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신약에서 히브리서는 특별히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우리의 길과 실재와 생명이신 하나님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분은 믿는 이들을 지성소 안으로, 곧 하나님과의 교통 안으로 이끄신다. 또 신약에서 마태복음은 특별히 왕이신 그리스도의 방면을 다루고 있다. 마태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임마누엘로서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사람에게 가져오셨음을 보여 준다. 기이한 것은 히브리서는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마태복음은 왕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만, 이 두 권이 다 건축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서에는 성의 건축이 있고, 마태복음에는 교회의 건축이 있다. 사실상 성의 건축과 교회의 건축은 같은 일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신 것은 하나님의 건축을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왕이신 것도 하나님의 건축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는 제사장이신 주 예수님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지만, 여기에 언급된 내용은 주 예수님께서 살렘 왕인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제사장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제사장이신 주님은 또한 왕이시다. 마찬가지로 마태복음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지만,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는 암시가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는 그분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목양하고 섬기려고 오셨다. 이러한 예들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신 것에 대해 말해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제사장 직분의 교통과 왕의 직분의 권위, 이 두 가지가 모두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건축을 위해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왕의 직분과 제사장 직분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할 뿐 아니라, 구속받은 우리도 이 두 방면의 직분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구속받은 사람들이 ‘왕들인 제사장 체계’라는 것을 계시한다. ‘왕들인’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왕의 위치와 권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제사장 체계’라는 말은 우리에게 생명의 교통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5장 10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들로 삼으시고 땅에서 왕으로서 다스릴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연결되었고, 왕의 직분과 제사장 직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축에 대한 하나님의 필요에 부합될 수 있다.
결론으로서 요한계시록 22장의 그림을 보기로 하자. 새 예루살렘에서는 생명수의 강이 보좌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보좌는 권위의 문제이고, 생명수의 흐름은 교통의 문제이다. 물의 흐름은 교통을 상징하고, 이 흐름은 권위와 관계있다. 이것이 새 예루살렘의 건축의 근원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보좌로부터 흘러나온 생명수가 서로 안에 자유롭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여러분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쉽게 흘러가지 못한다. 이처럼 흐름이 멈추어 버린다. 생명수는 반드시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우리로부터 흘러나가지 못하게 하는 장벽에 부딪치는 것 같다. 교회가 건축되려면 우리 모두가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생명수의 흐름에 의해서만 산출될 수 있다.
우리 각 사람이 왕인 제사장이 되어 보좌로부터 흐르는 생명의 흐름을 갖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우리 각 사람이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 이 둘의 표현이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우리가 제사장들과 왕들로 태어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함으로써 이 위치를 취하여, 실지로 제사장 직분을 맡고 또 머리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한다. 그때 주님의 머리의 권위와 함께 생명의 교통이 교회를 건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