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주 6일
아침의 누림
계 1:12-13 나는 나에게 말한 그 음성을 알아보려고 몸을 돌이켰습니다. 몸을 돌이켰을 때에 일곱 금등잔대를 보았는데, 등잔대 사이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분께서 발까지 닿는 옷을 입으시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요한계시록 1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보살피고 보양하는 최고의 본이시다. 12절과 13절은 …그리스도께서 긴 옷을 입으신, 사람의 아들이 되심으로써 등잔대를 돌보고 계심을 보여 준다. 이 옷은 제사장의 겉옷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분은 또한 가슴에 금띠를 두르셨다. 이 띠는 긴 모양의 금이다. 띠와 금은 두 개의 분리된 것들이 아니다. …금띠는 한 덩이의 금이 띠가 된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그분의 인성 안에 계시며, 금띠는 그분의 신성을 상징한다. 이 금띠는 그분의 가슴에 있으며 가슴은 사랑을 상징한다.
오늘의 읽을 말씀
구약의 제사장들은 그들의 사역을 위해 허리에 띠를 둘렀다. 다니엘서 10장 5절에서 그리스도 또한 정금 띠를 허리에 두르셨다. 허리에 두르는 것은 일을 하기 위해 강화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들을 산출하는 그분의 신성한 일을 끝내셨다. 이제 그리스도는 자신이 산출하신 교회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계신다. 이것이 그분께서 가슴에 금띠를 두른 이유이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그분의 수고로 세우신 그분의 교회들을 돌보시는 대제사장이시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허리가 아닌, 사랑을 상징하는 그분의 가슴에 띠를 띠고 교회들을 돌보고 계신다. 나는 우리 모두가, 최근에 우리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금띠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그분의 힘이 된 것을 상징하는 표시이다. 그리스도의 힘은 전적으로 그분의 신성이다. 한 덩이의 금이 이제 띠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신성의 총체가 띠가 되었다. 금띠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힘이 된 것을 상징하며, 가슴은 금에 속한 이 힘이 그분의 사랑에 의해 발휘되고 유발되는 것을 상징한다. 그분의 신성한 힘은 그분의 사랑에 의해, 그분의 사랑과 함께 발휘되어 교회들을 보양한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아들로서’ 그분의 인성 안에서, 등잔대들인 교회들을 돌보시면서 소중히 보살피신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자신이 세우신 교회들을 돌보신다. 그분은 먼저 그분의 인성 안에서 교회들을 소중히 보살피시면서, 교회들을 행복하고 기쁘고 편안하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등잔대의 등잔을 손질하심으로 교회들을 보살피신다. 구약에 있는 대제사장은 매일 아침 등잔대의 등잔을 손질했다. 등잔대를 손질하는 것은 등잔대를 합당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등잔대의 등잔의 심지를 잘라 내심으로 등잔대를 돌보신다. 이것은 마치 구약의 예표에서 제사장들이 했던 일과 같다. 심지가 탈 때 그것은 새까맣게 된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와서 심지의 새까맣게 탄 부분을 잘라 주어야 한다. 이것이 심지를 잘라서 등잔불을 더 밝게 한다는 것의 의미이다. 심지의 검게 탄 부분, 곧 불똥은 우리의 육체와 타고난 사람과 자아와 옛 창조물과 같이 하나님의 목적에 맞지 않아 잘라낼 필요가 있는 것들을 상징한다. 모든 등잔대들은 유기적이다. 그것들은 살아 있는 등잔대들이다. 각 교회는 살아 있는 등잔대이기 때문에 많은 느낌을 갖고 있다. 새까맣게 탄 심지가 있는 교회는 편안한 느낌을 갖지 못할 것이다.
나는 오늘날 주님께서 그분의 회복 안에서 인성 안에 계신 대제사장이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히브리서 4장은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없는 분이 아니시며,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혹을 받으신 분이시지만, 죄는 없으시다고 말한다. 우리의 그리스도는 우리와 동일하시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모든 면에서 시험받으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쉽게 동정하실 수 있다. 이것은 그분께서 항상 그분의 인성 안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인성 안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항상 우리를 소중히 보살피심으로써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