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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집회개요
라일락 2017-04-24 , 조회 (23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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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누림

살전 2:2-4 우리는 심한 반대 속에서도 우리의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권유는 속임수나 더러움이나 간교함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아서 복음을 위임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할 때 사도들은 하나님을 체험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한 싸움 안에서 하나님을 그들의 담대함으로 누렸다. 그들은 자신 안에서가 아닌 하나님 안에서 담대했으며, 심지어 빌립보 사람들에게 무례한 대우를 받은 뒤에도 그러하였다. 고난과 박해가 그들을 패배시킬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삼일 하나님과의 유기적인 연결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전서 22절에 따르면, 그들은 심한 반대 속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말했다. 이것은 그들이 전파하는 동안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박해가 여전히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담대함 안에서 싸우며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오늘의 읽을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23절에서 속임수는 의도를, 더러움은 동기를, 간교함은 수단을 가리킨다. 셋 모두가 간교하게 속이는 마귀에게 속한 것이며, 마귀에 의한 것이다. 권유라는 말은 말함과 전파와 가르침과 교훈과 권면을 포함한다. 바울의 권유는 속임수나 더러움이나 간교함이 없었다. 사도들은 탐욕이 없었으며 누구에게도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들이 복음을 갖고 데살로니가에 온 것은 전적으로 정직하고 신실한 것이었다.

데살로니가전서 24절은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아서 복음을 위임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위임을 받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시험을 통과하여 그분께 인정을 받는 것에 근거한다. 사도들은 먼저 하나님께 시험받고 인정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 복음을 위임받았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것, 곧 그들의 복음 전파는 자신들에게 속한 것이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도들의 마음을 살피시고 검사하시고 시험하셨다.

데살로니가전서 25절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한 번도 아첨하는 말을 하거나 탐욕의 탈을 쓴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로 번역된 헬라어는 가면, 덮개를 의미한다. 탐욕의 탈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팔러 다니거나 말씀에 불순물을 섞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이익을 얻기 위해 경건을 가장하는 것이.

데살로니가전서 26절에서 바울은 계속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들로서 사람들의 존중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여러분에게서든 다른 사람들에게서든 사람들에게서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 일꾼들에게 실지적인 시험이다.

존중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또한 권위를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을 의미한다. 직역하면 무거울 수도 있었지만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즉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일에서 권위나 존엄이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그 일을 손상시킨다. 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그분의 존엄을 버리셨고, 사도는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는 것은 탐심처럼 악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더욱 교묘하다. 천사장의 타락은 영광을 추구하는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영광을 추구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다. 비록 그는 매우 높은 지위를 가진 인도하는 천사였지만 여전히 영광을 추구했다. 그것이 그가 타락하게 된 원인이었다. 신약에 의하면 누구든지 사람의 영광을 추구하는 이들은 사탄의 추종자들이다.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을 유혹하기 위해 사탄이 놓은 덫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 일꾼들에게 있어서, 영광을 추구하는 덫을 피하기를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우리가 주님께 얼마나 많이 사용되고 우리의 유용성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는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오는 영광을 구하느냐 구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우리가 영광을 추구한다면 주님의 손에서 우리의 유용성은 끝난 것이다. 자기를 위해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항상 사람의 유용성은 끝난 것이다. 자기를 위해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항상 사람의 유용성을 죽인다. 러므로 우리 모두는, 특히 청년들은 주님의 일에서 영광을 추구하지 않도록 경고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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