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상 집회의 두 가지 부차적인 면
주의 상 집회에는 두 가지 주된 방면이 있는데, 첫째는 주의 만찬을 먹음으로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며, 둘째로는 주의 상에 참석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과 교통을 갖는 것이다. 이제 주의 상 집회의 두 가지 부차적인 면을 알아보자. 첫째는 주님의 죽으심을 전시하는 것(고전11:26)이다. 고린도 전서 11장 26절은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보여주는, 전시하는, 선언하는, 알리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만찬집회에서 주님의 인격을 기념하지만, 그분의 죽음은 알리고 선언한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을 온 우주와 귀신들과 천사들과 인류에게 선포한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기념하는 동안 떡과 잔의 두 가지가 상 위에서 분리되어 전시되는 것으로도 나타내어진다. 이것은 피가 몸에서 분리된 것이 상징하는 바 죽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의 전시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열 두 항목을 포함한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만유를 포함한 종결을 선언하고 알린다. - 천사의 생명(골1:20), 사람의 생명(갈2:20), 사단(히2:14, 요12:31), 죄(고후5:21, 롬8:3), 죄들(벧전2:24, 사53:6), 세상(갈6:14, 요12:31), 사망(히2:14), 육신(갈5:24), 옛사람(롬6:6), 자아(갈2:20), 그리고 만유 혹은 모든 피조물(골1:20)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죽음으로 모든 소극적인 것들이 끝났으며 그들의 종말이 공개적으로 드러났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이 소극적인 방면이다. 그러나 상은 또한 우리가 떡과 포도주로 상징된 주님을 우리 안에 영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적극적인 방면이다. 한 면으로 옛 창조는 끝났지만 다른 한 면으로 그분의 새 창조가 시작되었다. 이제 그분은 그분 자신을 우리와 연합하셨으며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산다. 할렐루야!
주의 상 집회의 두 번째 부차적인 면은 만찬집회가 우리의 소망을 표현하기 위해 있다는 것이다. 고린도 전서 11장 26절에 따르면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선포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이 오실 때까지 쉬지 않고 그분의 구속하는 죽음을 선포하여 그분을 기념하기 위해 주의 만찬을 먹는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일을 선포하지만, 우리 또한 영광스러운 소망을 갖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만족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에는 한 가지 소망이 있다. 어느 날 그분은 돌아오셔서 우리의 몸을 변형시킬 것이며(고전15:51-54), 우리는 이것을 기다리고 있다. 결국 우리의 몸은 그분이 오실 때 변형 될 것이며(빌3:21), 우리의 구속은 완성될 것이다(롬8:23). 특별히 「오실 때까지」라는 말은 오는 왕국을 가리킨다(마26:29). 주님은 우리에게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그분의 아버지의 왕국에서 새것으로 우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오는 왕국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행정의 문제이다.
주의 만찬에 관한 이 두 가지 부차적인 방면은 그리스도의 두 번 오심을 가리킨다. 그분의 첫 번째 오심 안에서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구속을 수행하기 위한 그분의 죽음을 소유한다. 이것이 그분의 첫 번째 오심의 목적이다.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은 그분이 왕국을 얻으신 후에 있을 것이며(단7:13-14, 눅19:12-27), 그때 그분은 이 왕국이 하나님의 우주적인 행정이 되도록 세우실 것이다. 이것이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의 목적이다. 첫 번째 오심 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교회를 산출했으며 교회는 그분의 두 번째 오심으로 왕국을 가져올 것이다. 주님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은 왕국을 가져오기 위한 교회의 존재를 선포하는 것과 동등하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주님의 죽으심을 그분의 다시 오심과 연결하는 고속도로와도 같다. 교회는 주님의 죽으심을 지속시키며 그분의 다시 오심을 가져온다.
[출처] 주님을 기념함(2)|작성자 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