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주 2일
오늘의 양식
라일락 2017-07-29 , 조회 (13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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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누림

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그리고 말씀의 사역을 꾸준히 계속할 것입니다.

요일 5:14-15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앞에서 갖는 담대함은 바로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구한다면 그분께서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들으신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구하며 청한 것을 그분에게서 받은 것도 압니다.

 

기도하는 것은 주님의 움직임을 위하여 주님께서 일하시도록 주님께 간청할 뿐 아니라, 우리의 영이 훈련되고 강화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들이 실행했던 것처럼, 말씀의 사역을 수행하기 전에 먼저 기도해야 한다. 그러한 기도가 없다면, 말씀의 사역에 활력이 없고 능력이 없을 것이다.

성경은 먼저 쓰였고, 그런 다음 번역되었으며, 마지막으로 해석되고 설명되었다. 우리의 옛 방식에 따르면,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수 년 동안 성경을 강해하는 메시지들을 들어왔으나, 우리가 사람들을 접촉할 때 여전히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내가 PSRP(기도로 읽기, 연구하기, 암송하기, 신언하기)를 실행하는 대만 성도들의 본을 따를 필요가 있다고 교통한 이유이다. 이 모든 것에는 시간이 요구된다. 기도로 읽는 것은 가볍게 행해질 수 없다. 기도로 읽은 다음에 우리는 한 단어 한 단어, 한 용어 한 용어, 한 구절 한 구절씩 진리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읽을 말씀

진리로 조성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로 읽고 그런 다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요한복음 11절과 14절과 같은 구절들을 기도로 읽는 것은 좋은 기초를 놓아준다. 그런 후 우리는 <라이프 스타디>의 도움으로 이 구절들의 중요한 요점들을 연구할 수 있다. 이러한 도움으로 우리는 은혜와 실재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한 단어 한 단어, 한 용어 한 용어, 한 구절 한 구절씩 진리를 연구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우리가 기도로 읽고 연구한 것을 암송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인 연구에 더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종류의 연구는 큰 집회에서 실행될 수 없다. 그것은 여섯 명 이상 열 명 미만의 활력 그룹 집회에서 상호적으로 행해질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암송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신언해야 한다. 우리가 암송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연구한 것이고, 우리가 연구한 것은 우리가 기도로 읽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기도로 읽지 않거나, 연구하지 않거나, 암송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신언할 수 없다. 나는 주일날 집회에서 사람들이 신언하는 것을 격려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 길이 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의 결정 연구에서 해방된 개요의 요점을 기도로 읽고 연구하고 암송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신언하게 될 것이다. 누가 신언할 수 없는가? 개요를 기도로 읽지 않고, 연구하지 않고, 암송하지 않는 이들이다. 만일 우리가 PSR(기도로 읽기, 연구하기, 암송하기)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실행한다면, 우리는 주일날 교회 집회에서 분명히 신언하게 될 것이다.

PSRP의 실행은 우리가 만든 새로운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성경에, 사도행전 8장에 있었다. 빌립이 내시에게 응답하고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전파한 방식은 빌립이 내시가 말한 이사야서 53장의 그 부분을 연구했으며, 그 부분을 기억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렇게 때문에 빌립은 일종의 신언으로써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전할 수 있었다. 만일 그가 거룩한 말씀의 그 부분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부분에 따라서 그리스도를 복음으로서 전할 수 있었겠는가? 빌립의 전파는 자신에게 익숙한 거룩한 말씀으로 한, 참된 신언이었다.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은 주님을 위해 말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지체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PSRP를 실행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우리는 기도로 읽고, 연구하고, 우리가 연구한 요점들을 암송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우리가 기도로 읽은 것과 연구한 것과 암송한 것이 자연적으로 우리의 신언이 될 것이다.

모든 집회에는 실재의 공급이 있어야 한다. 실재의 공급이 부족할 때마다, 언제나 누군가가 최선을 다해 이 부족함을 보충하여, 말씀의 공급을 강화하고 결론의 말씀을 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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