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하나님의 정하신 길 - 10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생활에는
늘 크고 작은 부흥이 있어야 함
만일 우리가 이 부흥의 법칙을 안다면, 우리는 우리 속이 침체될 때마다 서둘러 주님을 접촉해야 한다. 주님을 접촉하자마자 우리 속은 살아나고 부흥될 것이다. 며칠이 지나 또 낡아졌다고 느끼면 다시 단순히 주님을 접촉하고 그럴 때 우리 속은 신선해지고 또 한 번 부흥될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항상 부흥이 있고 큰 부흥과 작은 부흥이 있을 것이며, 심지어 하루 중에도 여러 번 부흥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수차례 부흥된 사람은 그의 영적인 생명의 진보가 빠를 것인데, 왜냐하면 그는 생명의 법칙에 따라 전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가리켜 큰 부흥, 작은 부흥이라고 하는가? 육신의 생명에 따라 말하면 일 년 사계절은 하나의 순환이다. 봄이 되면 항상 하나의 큰 시작이 있는데 이 큰 시작이 바로 큰 부흥이다. 일 년에는 365일이 있으며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가 작은 순환인데, 매일 아침마다 작은 시작, 즉 작은 부흥이 있다. 더 세세하게 말하면 매일 24시간 동안 세면과 휴식 등도 다 작은 부흥이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생존하고 자라고 건강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계속 반복되고 순환하는 크고 작은 많은 부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인 생명도 이와 같다. 만일 우리가 과거의 영적인 과정을 살펴본다면 우리의 영성 안에도 큰 부흥과 작은 부흥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구원을 받아 죽음에서 살아나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것은 큰 부흥이었다. 또 다른 예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완전히 주님께 헌신한 것도 또 하나의 큰 부흥이다. 우리가 이러한 큰 부흥을 체험할 때 우리는 땅에 있지만 하늘에 있는 것 같으며 구름을 타고 날 듯이 굉장히 흥분하고 기뻐한다. 이러한 느낌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리하여 다시 부흥이 올 때 이 부흥은 우리를 느낌에 좌우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완전히 믿음 안에 살게 한다. 우리가 자신의 느낌에서 나와서 믿음을 의지해 살 때 우리는 더 깊이 주님 안에 들어가는데, 이것 또한 큰 부흥이다. 보통 그리스도인은 적어도 세 번의 큰 부흥을 갖는다. 첫 번째는 구원 받는 것이고, 두 번째는 헌신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자신의 느낌에서 나와 믿음 안에 사는 것이다.
이러한 큰 부흥 외에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많은 작은 부흥이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갑자기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다는 전보를 받았다고 하자. 이 일 때문에 당신이 크게 눌림을 받을 수 있지만, 당신은 부흥의 법칙을 알기에 이 눌림이 그리스도를 접촉하고 그리스도를 앙망하며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체험하라는 신호임을 알 것이다. 당신이 이렇게 그리스도를 체험할 때 즉시 안에는 높여지고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작은 부흥이다. 또 예를 들어 회사 동료가 당신을 못살게 굴며 당신에게 비꼬는 말을 하여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이 속상한 느낌은 당신에게 다시 그리스도를 접촉하여 이 무거운 짐을 그분께 맡기고 이 일에 있어서 다시 한 번 그리스도를 누리라는 신호이다. 당신이 이렇게 그리스도를 누리면 즉시 또 한 번의 작은 부흥을 얻게 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아침에 한 번 부흥되고 점심때 또 한 번 부흥되며 저녁에 또 한 번 부흥된다. 하루에 부흥을 서너 번 갖게 된다.
이러한 외적인 환경에서의 이야기 외에도 우리 안의 마음의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어 원래 당신과 주님 사이에는 아주 좋은 교통과 누림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갑자기 교통할 수가 없고 안에 누림도 없으며 침체되는 것을 느꼈다고 하자. 이 침체는 마땅히 부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그리고 이 침체는 당신으로 자신의 약점을 보게 하고, 이 약점은 당신으로 그리스도의 속성을 알도록 이끌 것인데, 왜냐하면 이 약점은 그리스도의 속성에 대한 반사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것을 보면 즉시 자신의 약점에 따라 그리스도의 속성을 누릴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 속성이 당신이 누리게 되는 것이 부흥이다. 이와 같이 우리 속이 부흥되는 이야기는 하루 가운데 여러 번 있을 수 있다.
부흥의 법칙을 알면 쉽게 부흥됨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서 그가 약할 그때가 곧 강할 때라고 하였다. 바울은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고, 고통스러울 때 그리스도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알 뿐 아니라 이 영적 생명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부흥의 상태 안에 있을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도 마땅히 이 법칙을 알고 적용함으로써 자주 부흥을 체험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어려움을 만날 때 거듭 억눌리거나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어느 날 한 형제를 만나 그에게 왜 몇 개월 동안 집회에 오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그는 아마도 집에 아이들이 많고 아내는 병에 걸렸으며 경제사정도 좋지 않아 굉장히 힘들었는데, 이런 것들이 그에게 영향을 주어 집회에 가기가 싫었다고 하소연할 것이다. 당신은 이 하소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면으로 나는 그의 처지를 대단히 동정하지만, 다른 한 면으로는 그에게 잘했다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주님께 속한 사람이고, 바울 안에 살아 계셨던 그리스도가 그 안에 똑같이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내가 약할 그때가 곧 강할 때이기 때문입니다.”(10절)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왜 그는 이렇게 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가 만일 영적 생명의 법칙을 이해한다면 확실히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환경은 그에게 부흥이 다시 한 번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주님께서 허락하여 보내신 하나의 신호이다. 이 부흥은 그가 큰 소리로 울며 구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께서 부활이시고 큰 능력을 가진 분이시며 죽음을 정복하신 분이라는 것을 보는 것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는 다만 이것을 보고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는 심지어 사탄에게 “너는 고난을 더 많이 만들고 소란을 더 많이 일으켜도 된다. 나는 그리스도를 더 많이 누릴 것이다. 내가 억눌릴 때가 곧 해방될 때이고, 내가 약할 때가 곧 강할 때이며, 내가 고통을 받을 때가 곧 기뻐할 때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즉시 이 형제는 부흥된다. 비록 그의 가정생활이 여전히 극심하게 어려울지라도 그런 환경은 그가 집회에 오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가 집회에 올 때 정신이 맑아지고 영 안에서 해방되며 그의 온 존재는 높이 올려진다. 그는 집회에서 일어나서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께서 어려움 가운데 어떻게 그를 돌보시어 그와 함께 하셨는지를 간증할 것이다. 이것은 그가 주님을 만났고 그리스도를 누렸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실지로는 그가 다시 한 번 부흥된 것이다.
우리가 만일 부흥의 법칙을 안다면, 부흥되는 것은 참으로 간단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계속 억눌리고 침체되다가 참을 수 없을 때가 되면 비로소 주님 앞에 나아가서 주님께 필사적으로 구하다가 주님을 만지고 살아나는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만 이 법칙을 알고 모든 풍성을 가진 주님께서 이미 우리 안에 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매번 우리가 우리 속이 죽어 있거나 압력을 받아 침체되었다고 느끼거나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 다만 즉시 안으로 돌이켜서 이 크신 능력을 붙잡으면 즉시 부흥된다. 따라서 오직 이 부흥의 법칙을 알기만 하면 간단해진다. 이것은 마치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이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면 되는,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계속 약해지고 침체될 이유가 없음
오늘날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이시다. 당신은 침체되었는가? 그분은 올라가는 분이시다. 당신은 죽어 있는가? 그분은 부활이시다. 당신은 약한가? 그분은 강하시다. 당신은 어둠 가운데 있는가? 그분은 빛이시다. 당신 안에 있는 모든 약점은 그분의 특성에 대한 반사이다. 그분의 모든 속성은 당신의 모든 약점의 필요를 때맞추어 채워주신다. 그러므로 당신이 오늘 그리스도인이라면 계속 고통스러워할 이유가 없다. 당신이 고통스러울 때가 바로 기뻐할 때이다. 또한 당신은 오랫동안 약한 상태에 있을 이유가 없다. 당신이 약할 그때가 강해져야 할 때이다. 상징적으로 말해서 당신은 오늘 계속 배고플 이유가 없다. 만일 삼 년 동안 가뭄이 져서 식량이 부족하다면 당신이 배고파하는 것이 이유가 되지만, 오늘날 우리는 풍성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그분의 부활 안에서 이미 우리 안에 사시어 우리의 모든 공급이 되셨다. 이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배고플 수가 있는가? 우리는 참으로 탄식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배고프면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총괄해서 말하면, 우리는 집회에 와서 더 이상 죽어 있을 이유가 없고 살아 있지 않을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어 있을 그때가 바로 살게 될 때이기 때문이다. 마치 바울이 말한 것처럼 약할 그때가 강할 때이다. 바울이 말한 약함과 강함은 다 상징적인 표현이다. 약함은 고통, 어둠, 침체, 압력을 받음, 죽어 있음, 닫혀 있음 등 모든 부정적인 상태를 포함한다. 동일하게 강함은 즐거움, 밝음, 올라감, 해방됨, 살아 있음, 열려 있음 등 모든 긍정적인 상태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내가 약할 그때가 곧 강할 때이기 때문입니다.”(고후 12:10)의 원칙은 우리의 모든 다른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
어떻게 믿음을 의지해 살고, 어떻게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며, 어떻게 하나님을 먹고 마시며 누리고, 어떻게 주님과 교통하고 교통 안에 사는지에 관해서는 우리가 형제자매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했었지만, 이 부흥의 법칙에 관해서는 상당히 소홀히 했다. 오늘에야 주님은 우리를 인도하시어 영적 생명이 가져야할 생활 가운데 하나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것은 부흥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당신의 영적 생명에서 이 부흥이 많을수록 당신은 더 신선해지고 더 살아 있게 되며 더 강해지고 더 열리며 더 진보하게 된다.
반드시 부흥의 법칙을 알고 적용해야 함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영성이 아주 순조롭게 전진하고 있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부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 시기가 되면 당신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각 방면이 다 낡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당신이 다시 새롭게 되고 부흥되어야 한다는 하나의 신호이다. 예를 들면 말씀을 전할 때, 예전에는 이렇게 말하면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전과 같이 말하면 안 된다고 느낀다. 이것은 바로 당신이 말씀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다시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부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또 성경을 읽을 때 당신이 과거에는 이렇게 읽으면 참 좋고 만족이 있었지만, 오늘 다시 이렇게 읽으면 그냥 넘어갈 수 없고 안에 만족이 없다. 이 불만족 역시 성경을 읽는 일에 있어서 다시 부흥되고 새로운 시작을 가져야 한다는 하나의 신호이다.
우리의 내적인 이야기 외에도 주님은 외적으로 성령의 통제를 통해 우리에게 각종 환경을 주셔서 우리가 부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신다. 어쩌다 어떤 소식이 들려와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고, 한 마디의 오해가 당신에게 타격을 줄 수도 있다. 혹은 가정에서,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직장에서 어려움이 발생하는데, 이 모든 것은 당신에게 새로운 부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예전에 당신은 주님께서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수고하며 짐을 진 사람들이여, 다 나에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안식을 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었지만, 그것은 당신에게 하나의 교리에 불과했을 뿐 그것에 관한 어떤 체험도 없었다. 이제 성령은 환경을 만드시어 무거운 짐을 당신에게 지워 주시는데, 이러한 무거운 짐, 무거운 압력은 바로 당신이 다시 와서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동시에 이러한 무거운 짐과 무거운 압력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안식이시라는 사실이 당신에게 반사된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믿음을 의지해 이 안식할 수 있는 분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서 그분의 안식을 누려야 한다. 그럴 때 당신은 다시 부흥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환경이 오면 신속하게 안으로 돌이켜서 주님과 교통함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주님께 맡겨드리는 것이 옳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어려움을 주님께 드리는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성을 다시 부흥시키는 하나의 법칙의 문제 또한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에 부딪히면 계속 그 어려움 안에 머물고, 주님께 가서 주님을 접촉하고 주님을 체험하여 다시 부흥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부흥의 법칙을 모르는 것이다. 육신의 방면에서 우리는 부흥의 법칙을 알고 자연스럽게 이 법칙 안에 산다. 곧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이러한 먹고 마심을 통해 부흥된다. 그런데 영성의 방면에서 우리는 배고픈데도 먹지 않고 목마른데도 마시지 않으며 어려움을 만나도 주님 앞에 나아가서 주님과 접촉하지 않고, 오직 그 상태에 머물면서 계속 탄식하며 시간을 끄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막대한 손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이 부흥의 법칙을 참되게 보게 하시고 항상 이 법칙을 적용하게 하시기를 원한다. 우리는 부흥될수록 자신에게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부흥될수록 우리의 성분은 감소되고 그리스도의 성분은 증가하여 우리는 강해지고 자랄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어느 과정 안에 있거나 어느 환경 안에 있든지, 우리는 살아 있고 신선하며 부흥될 것이다.
마음을 열어서 다른 사람을 소생시킴
다른 한 면으로 우리는 여는 것을 배워야 한다. 부흥되고 살아났다면 닫지 말고 열어야 한다. 이렇게 열 때 우리와 성도들 사이의 흐름은 원활할 것이다. 우리는 생수를 안에서부터 밖으로 흘러나가게 할 수 있고, 생수를 다른 사람들에게서부터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오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많이 흘려보낼수록 더 많이 흘러들어올 것이고, 그 결과 우리 자신이 살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살게 된다.(교회봉사와 부흥의 법칙 5장-A)
기도의 부담, 성도들 소식
■ 기도의 부담
1. 북한 땅에 복음을 확산하도록
(4) 식량이 제 때에 공급되도록
2. 2018년 부산교회 봉사 방향을 위하여
(1) 진리 추구(회복역 성경)
(2) 활력그룹 실행(소그룹별 1개 이상 산출)
(3) 지역 실행 강화
3. 2018년 부산교회 소그룹별 목표를 위하여
(1) 아침 부흥 80% 도달
- 3월 둘째 주 : 78%
(2) 주중 복음실행 30% 도달
- 3월 둘째 주 : 8%
(3) 침례인수는 주일 평균인수의 30% 도달
- 3월 둘째 주 : 1%(현재 7명)
■ 성도들 소식
1. #1 - 결혼
박해은 형제님(하양숙 자매님)의 차남 박대영 형제와 하은비 자매(서울교회)의 결혼식이 3/31(토), 오후 3시 30분 아펠가모 선릉 4층(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322)에서 있습니다.
※ 전세버스 출발 : 3/31(토), 오전 8시 45분 구 남부경찰서 앞 (연락처 : 박해은 010-3725-6854)
2. #4 - 개업
조기수 형제(김효정 자매)가 슬기로운폰 가게 & 정수기렌탈샵(정관덕산길 26 정관지구대 맞은편)을 3/12(월), 개업했습니다.(051-728-3927)
3. #6 - 장례
이민자 자매님(박병관 형제님)의 부친 이현작 형제님의 장례를 3/15(목), 구포 한중프라임장례식장에서 무사히 치뤘습니다.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구
■ 2018년 FTTS 중년훈련생 및 성도들 이스라엘 탐방 안내
▷ 일시 : 10/30(화) ~ 11/8(목), 9박 10일
▷ 장소 : 이스라엘 전역
▷ 대상 : 중년 25기 훈련생과 가족, 중년훈련 졸업생, 그 외 갈망하는 성도(총 50명)
▷ 경비 : 3,500,000원(항공료와 환율, 그리고 현지사정으로 인하여 변동될 수 있습니다.)
▷ 9박 10일간의 탐방 일정 이외에 2주간 예루살렘에 더 머물면서 주님의 움직임에 참여하는 현지 체류훈련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2주 현지체류 훈련도 참여하기를 원하는 분은 추가 금액이 발생합니다. 추가 금액은 추후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 중년 훈련생들의 신청 인원에 따라 20명을 선착순으로 받습니다.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4/5(목)까지 신청금 500,000원을 입금 후 집사실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취소 시 신청금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 금주의 추구
① 구약 성경 읽기 : 신 12:1 ~ 신 30장
② RSG(신약 회복역) : 눅 8:22 ~ 눅 12:12
③ 라이프-스타디 : 누가복음 M9 ~ M10
④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