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주 4일
오늘의 양식
Antipas 2018-08-30 , 조회 (105)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아침의 누림
히 9:14 더욱이 영원하신 영을 통하여 흠이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의 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도록 우리의 양심을 얼마나 정결하게 하겠습니까?
요일 1:9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신약의 믿는 이들인 우리는 주님의 정결하게 하심을 누린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신약을 단지 읽고 이해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우리는 주님의 정결하게 함과 관련된 것의 분명하고 자세한 그림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레위기14장의 예표들이 필요하다. 예표들에서 우리는 나병에 걸린 우리를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육체 되심으로 사람이 되신 것을 본다. 백향목으로 예표된 그분의 인성은 높고 존귀했다. 우슬초로 예표되신 그분은 사람의 모양이 되심으로 기꺼이 자신을 낮추셨다. 한 면으로 그분의 표준은 높았지만, 다른 한 면으로 그분의 신분은 아주 낮았다. 이것은 둘 다 진홍색 실을 산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두 마리의 새는 두 가지 다른 방면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즉 죽음을 당한 새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살아 있는 새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이 두 방면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나병, 우리의 죄에서 정결하게 되지 못할 것이다.(레위기 라이프 스타디, 43장, 427쪽)

오늘의 읽을 말씀
나는 고대의 이스라엘 자손이 두 마리의 새와 백향목과 우슬초, 살아 있는 물이 담긴 질그릇 안에서 새를 잡는 것과, 살아 있는 새와 백향목과 우슬초와 진홍색 실을 함께 죽은 새의 피에 찍어 정결하게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일곱 번 뿌리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했다고 믿지 않는다. …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예표들을 이해한다. 이제 우리는 정결하게 되기 위해 여러 방면을 가지신 그리스도, 많은 과정을 거치신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볼 수 있다. 그분께서 흘리신 피는 우리 위에 뿌려졌고, 이러한 피 뿌림은 죄인들인 우리를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와 연결한다.

주님의 구속, 그분의 존귀하고 높고 겸허한 인성, 그분의 부활과 승천과 영광스럽게되심 모두가 이 예표에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백향목이 그리스도의 존귀하고 높은 인성을 예표하고, 우슬초가 그분의 겸허한 인성을 예표한다는 것을 보았다. 물론 죽음을 당한 새는 그분의 구속을 상징한다. 그분의 부활과 승천과 영광스럽게 되심은 무엇으로 상징되는가? 그분의 부활은 또 다른 새, 즉 살아 있는 새로 상징된다. 이 두 새들은 그리스도의 두 방면, 곧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한 면에서 죽음을 당한 새로 상징되신 그리스도는 죽음을 당하셨고, 또 다른 면에서 살아 있는 새로 상징되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는 부활로 말미암아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되셨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살아 있는 새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으로 상징된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왕권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셨다. 그리스도는 육체 되심으로 자신을 낮추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수치를 당하셨으며, 그분의 왕권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셨다. 그러므로 이 한 가지 예표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본다.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는 높고도 동시에 겸허한 그분의 인성, 그분의 구속, 그분의 부활과 승천과 영광스럽게 되심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살아 있는 새는 들판에 놓아주어야 한다.”(레 14:7) 이것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정결하게 된 죄인들을 죽고 부활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분의 승천도 체험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것이며, 우리는 다만 그것들을 체험하고 누려야 한다. 죽음을 당한 새,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죽었다. 이제 살아 있는 새,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날아오르며 승천한다.우리는 자유롭게 되었으며, 어떤 방해도 없다.
위의 예표를 상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성경 전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이것이 합당한 신학이며 성경적인 신학이다. 성경적인 신학은 레위기 13장과 14장에 나오는 나병과 많은 관련이 있다. 만일 이 신학이 우리의 나병과 관련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것이다. 그분은 다만 하나님이실 뿐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실 것이며, 우리는 나병 환자일 뿐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 이 예표에서 우리는 주님의 구속과 그분의 부활 안에 있는 구원의 능력을 본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받았고, 지금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분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오른다.(레위기 라이프 스타디, 43장, 427-428쪽, 42장, 422-423쪽)
추가로 읽을 말씀: 레위기 라이프 스타디, 4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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